피해자들, 과태료·벌금 등 가해자 처벌 목소리
전문가들 “처벌조항 유명무실...건축법을 고쳐야”

한국에는 이웃과 관련한 속담이 유독 많다. 옛 어른들은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팔백 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라고 표현했다. 특히 혈연관계를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촌수를 파괴한 ‘이웃사촌’이라는 단어에는 ‘이웃’을 혈연관계만큼이나 중요시했던 삶의 방식과 정서가 담겨있다. 

하지만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아파트가 보편화되고 개인주의가 확산하면서 과거와 같은 소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오히려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주민들 간의 폭행·살인·방화와 같은 강력 사건 이어지며 층간소음은 피할 수 없는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분쟁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층간소음과 관련한 갈등을 현명하게 헤쳐나가기 위해 <뉴스포스트>는 층간소음의 원인과 대처법, 배상 기준, 해외 사례, 전문가 인터뷰 등 5편의 기획기사를 보도한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층간소음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며 가해자 처벌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경범죄 처벌법상 층간소음 처벌 조항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벌금조차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층간소음 가해자들에게 과태료를 내게 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층간소음 가해자들에게 과태료를 내게 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조항 있지만... 처별 현실적으로 어려워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층간소음 가해자들에게 과태료 제도로 법을 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현재 국내에는 층간소음 가해 행위에 대한 처벌이 없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과태료를 내게 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주장했다. 

층간소음을 규정하는 법안인 공동주택관리법을 보면 제20조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층간소음으로 인해 다른 입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라는 내용은 있지만, 벌금이나 과태료와 같은 처벌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층간소음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 21항에 따르면 (인근소란 등) 악기·라디오·텔레비전·전축·종·확성기·전동기 등의 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내거나 큰 소리로 떠들거나 노래를 불러 이웃을 시끄럽게 한 사람은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피해 사실을 입증해 처벌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법무법인 영우 장시운 변호사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지속적이고 강도가 높은 음향을 반복적으로 전송하는 것도 폭행에 해당한다는 판례는 있지만, 형법상 폭행죄에 해당할 정도로 이르기는 어렵다고 판단이 되고 있어 사실상 처벌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보여진다”라고 진단했다. 

법무법인 동하 윤세영 변호사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범죄라는 것은 그 범죄를 했다는 것을 상당 부분 입증해야 하는데, ‘윗집 사람이 어느 정도의 소음으로 피해자에게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입혔다’라는 부분은 입증하기 까다롭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경범죄 처벌법이 적용되려면 고의성이 인정돼야 하고 소음의 정확한 정도와 출처를 증명해야 하는데, 생활하며 발생하는 층간소음이 처벌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구조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뉴스포스트 편집)
(사진=뉴스포스트 편집)

 


‘가해자 위한 법’ 비판


문제는 층간소음을 발생시킨 이들을 처벌하는 법이 미비해 예방도 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층간소음을 기준 이상으로 항의할 시에는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지난 2013년 법원은 아파트 위층에 사는 박 모 씨가 아래층에 사는 김 모 씨 등을 상대로 낸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에서 “김 씨 등은 박 씨의 집에 들어가거나 박씨 집의 초인종을 누르거나 현관문을 두드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며 일부 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는 “김 씨가 박 씨의 집을 찾아오거나 현관을 두드리는 행위 등으로 박 씨 가족의 평온한 생활을 침해하고 있다”며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박 씨의 가처분 신청은 피보전권리가 인정되고 보전의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현행 층간소음법이 가해자들을 위한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층간소음 분쟁의 경우 소송을 통한 대응도 효율적인 대처법이 되기 어렵다. 장시운 변호사는 “실질적으로 층간소음의 경우 형사처벌은 잘 이뤄지지 않고, 적합하지도 않다”면서 “민사적으로 해결(손해배상청구)한다 해도 본인이 받는 스트레스에 비해 받을 배상이 매우 적다”라고 말했다. 


유명무실한 층간소음 중재 기관


이에 전문가들은 분쟁조정위원회나 환경분쟁조정 등 층간소음 중재 기관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해 왔던 것. 하지만 중재 기관을 통한 분쟁 해결은 절차가 복잡하고 강제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전국 147개의 분쟁조정위원회가 5년간 맡은 중재 건수는 35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5년간 분쟁조정위 당 0.24건의 분쟁이 접수된 셈이다. 35건 중 조정 건수는 7건으로, 조정률이 20%에 그쳤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분쟁조정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유명무실하며, 구색 맞추기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처벌 규정 강화를 통한 층간소음 분쟁 해결보다는 보다 근본적이고 실효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제언했다. 

윤세영 변호사는 “층간소음 가해 처벌 규정의 수위를 높인다고 하더라도 어떤 기준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등의 선을 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라며 “처별 규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건설의 고질적인 문제로 건설 시 건축법 허가를 엄격하게 하고, 소음을 완화할 수 있는 규정을 확실히 해야 근본적인 해결이 될 것 이다”라고 덧붙였다.  

장시운 변호사는 “처벌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비록 벌금이라는 가벼운 형이라고 하더라도 전과로 남는 것은 부담스러운 행위다”라며 “처벌 수위가 낮다고 해서 형사적 벌금을 높여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층간소음 갈등이 폭행과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유효하게 층간소음을 규제할 수 있는 실효적인 행정적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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