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층간소음 민원 61% 증가
방지 용품 매출 신장... ‘복수 도구’ 등장하기도 

한국에는 이웃과 관련한 속담이 유독 많다. 옛 어른들은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팔백 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라고 표현했다. 특히 혈연관계를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촌수를 파괴한 ‘이웃사촌’이라는 단어에는 ‘이웃’을 혈연관계만큼이나 중요시했던 삶의 방식과 정서가 담겨있다. 

하지만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아파트가 보편화되고 개인주의가 확산하면서 과거와 같은 소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오히려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주민들 간의 폭행·살인·방화와 같은 강력 사건 이어지며 층간소음은 피할 수 없는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분쟁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층간소음과 관련한 갈등을 현명하게 헤쳐나가기 위해 <뉴스포스트>는 층간소음의 원인과 대처법, 배상 기준, 해외 사례, 전문가 인터뷰 등 5편의 기획기사를 보도한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 서울 도봉구 빌라에 거주하는 이 모 씨는 최근 아랫집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랫집 주민은 저녁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그 이후에 나는 물소리에 불편을 겪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씨는 자신이 뉴스에서만 보던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됐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끼는 한편, 아랫집 생활패턴에 맞춰 생활해야 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다. 

# 서울 마포구의 30년 된 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 모 씨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 중이다. 얼마 전 새로 이사 온 윗집 신혼부부의 이른바 ‘발 망치’ 소리에 시달리고 있다. 발소리로 사람 구분이 가능해질 지경에 이르자, 김 씨는 주의를 요청하는 편지와 함께 실내화와 수제 쿠키를 선물했다. 한동안 잠잠했지만 2주 후 다시 시작된 발 망치 소리에 한 번 더 이야기를 꺼내면 이웃의 마음이 상할까 소음을 견디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 '집콕' 시간이 늘면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도 커지고 있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 '집콕' 시간이 늘면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도 커지고 있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코로나19 속 층간소음 분쟁 급증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생활 소음 공해인 ‘층간소음’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은 2000년 이후다. 이전에도 층간소음은 존재했으나 불만을 제기한 주민이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되며 크게 이슈화되진 않았다. 2000년 이후부터 주거지 선택에 있어 환경요인들이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하면서 층간소음에 대한 분쟁도 증가하게 됐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가정에 거주하는 시간이 늘면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가 급증했다. 

지난 15일 충북 음성의 한 빌라에서 층간소음에 항의하기 위해 흉기를 들고 위층 이웃집에 찾아간 A(50) 씨가 특수주거침입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지난해 3월에는 대전 동구에서는 층간소음 때문에 다투다 이웃을 흉기로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벽 하나를 둔 사이임에도 갈등이 풀리지 않고 장기화하면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층간소음을 호소하는 민원 전화는 총 4만 2,250건으로 2019년 2만 6,257건보다 61% 증가했다. 현장 방문 피해 사례를 요청하는 현장 진단 접수도 7,431건으로 약 46% 늘었다. 작년 1월 층간소음 접수는 1,920건 수준을 유지했지만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기 시작한 3월부터는 3,100건으로 증가했고 5월에서 7월은 모두 3,000건 이상 접수됐다. 

길어지는 ‘집콕 생활’에 층간소음을 줄여주는 매트와 귀마개 등의 수요가 늘었다. (사진=위메프)
길어지는 ‘집콕 생활’에 층간소음을 줄여주는 매트와 귀마개 등의 수요가 늘었다. (사진=위메프)

코로나19로 급증한 층간소음 문제에 이를 방지하는 용품의 매출도 급증했지만, 층간소음 보복을 위한 상품도 등장했다. 

위메프에 따르면 최근 두 달간 충격 흡수 놀이용 매트와 실내 슬리퍼 매출이 각각 80%, 86% 늘었고, 소음 방지 귀마개 판매는 122% 급증했다.  

반면 층간소음 피해자들이 증거 수집용으로 구매하는 가정용 소음 측정계의 매출도 47% 신장했다. 인터넷에는 저음 재생 특화 스피커(우퍼 스피커)나 고무·벽돌 망치 등 각종 용품을 활용한 층간소음 보복 방법들이 쏟아지고 있다. 층간소음에 항의하기 위해 이웃집을 찾아가는 행위는 주거침입죄에 해당하기 때문.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도리어 폭행죄로 처벌받을 수 있고, 둘 중 한 집이 이사 가지 않는 한 도돌이표 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방법이 아닌 현명한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법적 처벌... 10만 원 이하 벌금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층간소음이란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 입주자 또는 사용자가 뛰거나 걷는 행위에서 발생하는 ‘직접충격’ 소음을 말한다. 음향기기 등에서 발생하는 공기 전달 소음과 인접한 세대의 벽간 소음도 포함된다. 

다만 욕실과 화장실 및 다용도실 등에서 급수나 배수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은 층간소음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라고 하지만 개 짖는 소리를 규제할 근거도 마땅히 없다. 사람의 활동으로 발생하는 소음만이 층간소음으로 보고 있다.  

직접충격 소음은 1분 등가소음도(1분간 발생하는 평균 소음)가 주간 43dB(데시벨), 야간 38dB, 최고소음도 주간 57dB, 야간 52dB을 넘을 때 층간소음으로 인정된다. 30~40dB은 조용한 도서관의 소음, 냉장고 소리 정도이고 50~60dB은 세탁기를 돌리는 소리, 에어컨 실외기 소리 정도의 소음이다.

이러한 기준을 넘는 소음이 발생한 경우에는 ‘경범죄 처벌법’상 인근소란죄로 1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고의성이 없으면 처벌하기는 어렵다. 

층간소음 기준. (자료=법제처)
층간소음 기준. (자료=법제처)

문제 해결 속도 내는 국회


국회에서도 층간소음 갈등을 줄이기 위한 ‘층간소음 방지법’을 잇따라 내놨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층간소음 분쟁을 예방·조정할 수 있도록 입주자 등으로 구성된 ‘층간소음 관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가 산하기관의 조정 절차는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만큼 공동주택 내 자치 조직을 의무적으로 구성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또한 지난달 층간소음 방지를 위해 공동주택 건설 시 바닥충격음 차단 구조 시공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주택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7월 층간소음으로 인한 재산적·정신적 피해에 따른 배상액 기준을 국토부·환경부 공동부령으로 정해 고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내놨다. 

정 의원은 현행법에 층간소음 피해배상액에 대한 기준이 없어 조정을 통해 정해지는 금액에 일관성이 없고 액수도 적어 피해자에게 충분한 재산적·정신적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주택 바닥 충격음을 줄이기 위한 소리차단 조치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이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동주택 층간소음 관련 바닥구조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 2014년 5월 7일 이전 사업 계획 승인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 이웃 간 분쟁을 줄이겠다는 게 골자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