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대물림으로 빈부격차 심화, 부모 찬스도 진화
계층 이동 사다리 붕괴에 흙수저 대물림 악순환
국민의 11.7%만이 ‘개천에서 용난다’...흙수저 의식 팽배

BTS(방탄소년단)의 노래, ‘불타오르네(FIRE)’의 가사를 보면 “그 말하는 넌 뭔 수저길래 수저수저 거려 난 사람인데”라는 가사가 있다. 일명 수저사회의 폐단을 비판한 것이다. BTS의 노래에도 등장하듯이 이른바 대한민국은 수저공화국이다. 부모의 재산이 자녀의 수저 색깔을 결정한다. 수저의 색깔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

물론 금수저라고 무조건 비판 대상이 아니다. 반면 흙수저라고 절망의 대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수저의 색깔로 출발선과 기회가 불평등하다면, 대한민국은 공정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수저사회의 폐단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뉴스포스트가 총 5회에 걸쳐 수저사회의 현주소와 폐단을 점검하며, 대한민국이 수저사회를 넘어 공정사회로 나아갈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흙수저에게 장밋빛 희망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사진=픽사베이)
흙수저에게 장밋빛 희망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사진=픽사베이)

흙수저 운명, 출생부터 밑바닥 인생 예약


[뉴스포스트=정성민 기자] 흙수저, 수저계급의 최하위층이다. 서양에서는 나무수저, 플라스틱수저로 불린다. 흙수저는 동수저조차 부럽다. 출생부터 루저 인생 예약, 흙수저의 운명이다.

2020년 11월 13일 네이트판에 ‘요즘 흙수저 집안에서 애 낳으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글쓴이 A씨는 자신을 ‘20대 초반, 가난한 집 생존자’라고 소개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A씨의 글을 인터뷰로 재구성했다.

- 가난한 집 생존자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A씨) 저희 동네에 생활고로 비관하다가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은 일이 있어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 가난한 시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A씨) 가난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는데 부모님이 싸우는 문제의 80퍼센트가 돈 때문이었습니다. 자식들은 그거 보면서 달달 떨고, 같은 동네 친구들은 자기 방 가지기도 힘든 애부터 용돈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애까지 각양각색으로 불행의 서사를 깔고 시작했어요.

-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A씨) 중학교 올라가고 뺑뺑이로 어쩌다가 학군 괜찮은 부촌에 걸리면 더욱 지옥이었습니다.저만 다른 세상이었죠. 혼자 못 사는 느낌이랄까요. 가난한 집의 기준에서 잘 사는 집에 놀러 가면 맞벌이하는 집도 있고, 가정주부이신 어머니가 계신 집도 있는데 일단 간식부터 질이 달랐어요.

- 친구들과 지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나요.
(A씨) 사실 먹고 사는 문제 정도야 친구들한테 숨기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됐습니다. 새 학기에 친구들끼리 학원에서 아는 사이라고 서로서로 친해져 있고, 저는 계속 대화에 소외감을 느낄 때의 감정을 부모님한테 설명해도 모르셨죠. 흙수저 부모님은 학원이 공부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해 인강으로만 때우라고 합니다. 학원은 10대 애들끼리 친목도 하는 곳이라는 걸 이해를 못 하죠.

- 흙수저라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나요.
(A씨) 어쩌다가 좀 잘사는 동네로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부촌 동네에서 어울려 다니는 애들끼리 분열이 있었어요. 한 친구가 떨어져 나간 사건이었죠. 그래서 그 친구가 잠깐 제가 속한 무리에 와서 놀다가 한 달 뒤에 훌쩍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친구 부모님이 친구의 사정을 듣더니 아예 다른 학교로 보내준 거였어요. 그때 자식이 학교에서 친구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이사 보내 줄 수 있는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도움 안 되는 훈계만 늘어놓았어요.

- 흙수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씨) 옛날처럼 극단적으로 가난해서 17살 때부터 공장 들어가야 하는 극빈층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자식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중고등학교 갈 때까지 집 하나 없이 전세나 월세로만 떠도는 가정은 여전히 있기 마련이죠. 그렇게 인생을 통틀어 가난하기만 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애들은 평균 소득이 오른 세상에서 부모의 무능함을 제대로 체감합니다. 부모님께 경험 자본과 문화 자본을 물려받은 자식들하고 아닌 자식들은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 차이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A씨의 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읽다 보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제 얘기 같으면서도, 또 요즘 시대의 가난의 결이란 더 극명하고 촘촘하게 청년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구나 절감한다”며 “압도적 다수의 청년들이 학벌을 계급장 취급하는 사회에서 생존투쟁을 벌이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중소기업에 들어가 투명인간처럼 살아간다. 이전과는 다른 구조화된 불평등의 양상이다. 이런 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개포동 구룡마을. 사진은 기사 본문과는 상관 없음. (사진=뉴스포스트DB)
서울 강남 개포동 구룡마을. 사진은 기사 본문과는 상관 없음. (사진=뉴스포스트DB)

부의 대물림으로 빈부격차 심화, 금수저-흙수저 양극화


A씨의 글과 이 지사의 글에서 대한민국 흙수저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제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양극화가 더욱 뚜렷하다. 부의 대물림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미성년자 배당소득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2019년 미성년자 17만 2942명의 배당소득 총액은 2889억 원이다. 2015년과 비교하면 배당소득 총액이 약 1400억 원(94%) 증가했다. 1인당 평균 배당소득은 86만 원에서 167만 원으로 증가했다. 2019년 미성년자 배당소득자의 연령대별 배당소득은 △0∼6세 3만 2662명 454억 7300만 원 △7∼12세 6만 36명 827억 7100만 원 △13∼18세 8만 244명 1606억 8800만 원이다.

또한 양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2019년 이자소득 천분위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2019년에 5368만 명이 총 17조 9561억 원의 이자소득을 올렸다. 이자소득은 예·적금 이자, 저축성보험 차익, 채권 또는 증권 이자와 할인액, 채권 기초 파생상품의 이익, 비(非)영업대금 이익 등을 의미한다. 특히 2019년 이자소득 상위 0.1% 구간(5만 3677명)의 이자소득은 총 3조 1306억 원으로 전체의 17%를 차지했다. 1인당 평균 5832만 원이다. 상위 1% 구간(53만 6772명)의 2019년 이자소득은 총 8조 1670억 원으로 전체의 45% 수준이다.

양 의원은 “금수저라는 단어가 유행할 만큼 우리 사회의 부의 대물림 문제는 심각하다. 미성년자 초고소득층 0.1%가 챙긴 배당 수익은 838억 1600만 원에 이른다. 미성년자 전체 배당 소득액의 29%에 해당한다”면서 “월급·사업소득 외 이자소득을 얻는 초고소득자 0.1%의 총소득액은 3조 1306억 원에 달한다. 이는 무려 전체 임대소득액의 17%나 되는 금액이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부의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2020년 대학별 국가장학금 신청자 현황’ 자료를 제출받아 고소득층 비율과 저소득층 비율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의 국가장학금 신청자에서 고소득층 비율은 62.6%로 저소득층 비율(18.5%)보다 약 3.4배 높았다. (자료 =강득구 의원실/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2020년 대학별 국가장학금 신청자 현황’ 자료를 제출받아 고소득층 비율과 저소득층 비율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의 국가장학금 신청자에서 고소득층 비율은 62.6%로 저소득층 비율(18.5%)보다 약 3.4배 높았다. (자료 =강득구 의원실/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의 대물림 → 빈부격차 심화’ 현상은 교육 분야에서 급격히 전개되고 있다. 부모의 재력이명문대 진학을 결정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2020년 대학별 국가장학금 신청자 현황’ 자료를 제출받아 고소득층 비율과 저소득층 비율을 각각 분석했다. 부모의 경제적 배경과 대학교육의 격차도를 비교하는 것이 목적.

분석 결과 서울대의 국가장학금 신청자에서 고소득층 비율은 62.6%로 저소득층 비율(18.5%)보다 약 3.4배 높았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소위 SKY의 고소득층 비율은 56.6%로 저소득층(21.5%)에 비해 2.6배 높았다. 서울 주요 15개 대학으로 범위를 확장하면 고소득층 비율은 51.2%로 저소득층(23.9%)의 2.1배였다.

강 의원은 “국가장학금 신청자 현황은 대학 재학생의 약 85%가 신청하고 있으며 소득구간에 따라 수혜 자격을 준다. 때문에 가장 공신력 있는 자료로 대학 재학생의 경제적 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며 “부모의 경제력 차이에 따라 대학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우리 대학교육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흙수저의 인생역전 무대, 사법고시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법조인이 되려면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이 필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은주 의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연간 로스쿨 등록금은 고려대가 1950만 원으로 최고액을 기록했다. 전체 25개 로스쿨에서 22개 로스쿨(88.0%)의 연간 등록금이 1000만 원을 넘었다. 고액 등록금 문제로 로스쿨이 돈스쿨 오명을 얻자 2016년 교육부는 국립대 로스쿨 등록금 5년 동결, 사립대 로스쿨 등록금 인하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현재 연간 1000만 원 이상 등록금을 감당할 흙수저가 얼마나 될까? 흙수저에게 로스쿨은 여전히 돈스쿨이며 그림의 떡이다. 자연스레 흙수저가 법조인이 되는 길이 멀어지고 있다.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용은 금수저 집안에서 탄생한다.


계층 이동 사다리 붕괴로 흙수저 대물림


#1. 2020년 7월 교육부의 연세대 종합감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연세대 교수 1명은 2017년 2학기 회계 강의를 담당하면서 자신의 대학생 딸(연세대 식품영양학 전공)에게 수강을 권유하고 A+ 학점을 부여했다. 또한 연세대 대학원 입학전형 서류심사에서 평가위원 교수 6명은 이 모 전 연세대 국제캠퍼스 부총장 딸을 경영학과 일반대학원에 합격시키기 위해 지원자들의 구술시험 점수를 조작했다. 현재 평가위원 교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2. 2019년 정부 합동으로 공공기관 채용 실태조사가 실시됐다. 실태조사 결과 B공공기관은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B공공기관 대표 아들을 자의적으로 인턴 사원으로 채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3. 고액 자산가의 자녀 C씨는 사회초년생임에도 불구하고 투기과열지구 소재 고가아파트를 취득했다. B씨는 아버지와의 금전대차거래를 통한 차입 자금으로 아파트를 취득했다고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국세청 조사 결과 아버지로부터 아파트 취득 자금을 증여받고도 증여세 탈루를 목적으로 허위차용증을 작성했다.

부의 대물림은 기본이고 각종 부모 찬스가 판을 친다. 학사, 입시, 취업부터 부동산까지 찬스의 영역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결국 흙수저는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부의 대물림에 부모 찬스까지 겹치며,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계층 이동 사다리가 붕괴되고 있다. 스펙 경쟁이 치열하고. 취업의 문은 좁아지며,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인생역전 기회는 사라지니 부모의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은 요원하다.

실제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청렴연수원이 2020년 9월 2일부터 12일까지 14세에서 69세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4%는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별로 공정하지 않다 43%+전혀 공정하지 않다 11%)”고 진단했다. 특히 속담 활용 설문에서 응답자의 11.7%만이 ‘개천에서 용 난다’고 생각했다. 불효자는 운다고 했던가. 아니다. 불효자는 울지 않는다. 흙수저가 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특권 소수계층에 유리한 사회제도가 없도록 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불공정성과 특권은 과감하게 개선할 것”이라면서 “입시와 채용에서 어떠한 특혜와 불공정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부총리의 공언대로 공정사회가 실현, 흙수저가 울지 않고 웃는 날이 올 것인가. 흙수저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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