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참여연대 ‘LH 임직원 신도시 지역 투기 의혹 제기’ 일파만파
국민들 “땅 쇼핑, LH 부럽다”, “서민 자괴감 제대로 주네” 등 박탈감 호소
김인만 소장 “차명과 가족 명의 조사를 하면 투기 의혹 더 늘어날 것”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공정’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2030세대의 날 선 비판이 정부·여당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LH 임직원은 물론 일부 여당 의원, 지방 공무원 등의 추가 투기 의혹도 제기되면서, LH 사태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까지 떠올랐다.

장충모 LH 부사장을 비롯한 LH 관계자들이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지 이틀 만인 지난 4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LH 제공)
장충모 LH 부사장을 비롯한 LH 관계자들이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지 이틀 만인 지난 4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LH 제공)

이번 의혹에 “정부와 수사기관의 규명과 엄정한 책임”을 주문한 대통령의 일갈은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의 “아니꼬우면 공부 잘 해서 LH 들어오라”는 조롱에 묻혔다. 뉴스포스트는 ‘박탈사회’ 기획 기사 1부에서 ‘공정’의 가치를 무너뜨린 LH 사태를 짚어봤다.
 


“야 너도? 야 나도!” LH직원·지방공무원 투기 의혹 일파만파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은 지난 2일 민변과 참여연대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날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주택토지공사(LH) 직원들이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7,000평 토지를 사전에 매입한 의혹이 있다”면서 “해당 행위가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 방지의무 위반과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위반 가능성이 높아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한다”고 발표했다.

김태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국토부에서 광명, 시흥시 지역 일부를 3기 신도시로 지정했다는 발표 이후 해당 지역에 LH 직원들이 투기를 위해 토지를 구입했다는 제보를 받아 토지대장 등을 확인한 결과 LH 직원들 여러 명이 해당 토지 지분을 나누어 매입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변 필지를 추가로 확인해본 결과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10여 명의 LH 직원과 그 배우자들이 총 10개 필지의 7,000평 토지를 100억 원에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민변에 따르면 이들 LH 직원들은 해당 토지 구입을 위해 금융기관에서 58억 원 규모의 대출을 받기도 했다.

광명·시흥 신도시 개발구상안(왼쪽)과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내 문제가 확인된 토지 지번 위치(오른쪽). (자료=민변·참여연대 제공)
광명·시흥 신도시 개발구상안(왼쪽)과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내 문제가 확인된 토지 지번 위치(오른쪽). (자료=민변·참여연대 제공)

최초 의혹 제기 이후 지난 10일 광명시 자체조사 결과 소속 공무원 6명이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땅을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광명시에 따르면 이들 공무원은 지난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논과 밭, 임야 등을 샀다. 시흥시도 소속 공무원 8명이 신도시 예정지 내 토지를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현재 이들 지자체는 소속 공무원들의 투기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문제는 광명·시흥 외에 △부천 대장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고양 창릉 △인천 계양 등 다른 3기 신도시 예정지에도 정부의 3기 신도시 지정 발표 직전 토지 거래량이 최대 4배까지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해당 지역이 신도시로 지정될 것이란 정보가 사전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1일 국토부와 LH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1차 투기 의혹 합동조사결과에서 “국토부와 LH 임직원 등 1만 4,000여 명을 부동산거래시스템과 국토정보시스템을 통해 거래내역과 소유정보를 각각 조사하고 상호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면서 “그 결과 민변과 참여연대에서 제기한 투기의심 사례를 포함해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토지거래는 광명·시흥 지구에 집중됐지만 다른 3기 신도시 지구에도 투기 의심사례가 발견됐다”면서 “경기와 인천, 기초지자체, 지방공기업 임직원에 대한 조사를 신속히 진행해 결과가 나오면 수사 의뢰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번 1차 합동조사에는 국토부와 LH임직원 본인만 포함됐다. 차명 거래와 가족 거래 등 투기 의혹에 대해선 추가 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차명과 가족까지 조사 범위를 넓히면 투기 의혹 대상자는 일파만파 늘어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열흘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1만 4,000명 투기 여부를 조사해 겨우 20명 의심자를 적발했다는 걸 국민이 믿겠느냐”라며 “차명과 가족 명의 조사를 하면 투기 의혹 사례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광명·시흥 신도시 계획을 철회하고 나머지 신도시들도 투기 전수 조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계획을 미뤄야한다”고 주장했다.
 


“공부 못해서 LH 못 와 놓고...아니꼬우면 이직하든가”


이런 상황에서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올린 글이 국민적 공분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작성자는 직원임을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는 한 직장인 커뮤니티사이트에서 “털어봐야 차명으로 다 해놨는데 어떻게 찾을 것이냐”면서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닐 것”이라고 LH 사태에 분노하는 국민을 조롱했다.

그러면서 “(투기는)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아니꼬우면 너네도 이직하라”며 “공부 못해서 못 와 놓고...”라고 덧붙였다.

직장인 커뮤니티사이트 '블라인드'에 올라온 LH 직원 추정글. (자료=블라인드 갈무리)
직장인 커뮤니티사이트 '블라인드'에 올라온 LH 직원 추정글. (자료=블라인드 갈무리)

해당 글에 대해 LH 측은 “해당 커뮤니티사이트 운영 구조상 현직 직원 외에도 파면이나 해임, 퇴직자일 수 있다”면서 “현재 LH 직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LH 전·현직 직원 등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 공분이 커지자 LH가 내부 입단속에 나선 것이다.

이어 LH 측은 “해당 글과 달리 LH 전 직원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철저한 조사와 혐의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LH 사태에 국민들 “서민 자괴감 제대로...일할 맛 안 난다”


LH 투기 의혹을 보고 박탈감을 느낀다는 직장인들. (자료=블라인드 갈무리)
LH 투기 의혹을 보고 박탈감을 느낀다는 직장인들. (자료=블라인드 갈무리)

LH 임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접한 국민들은 “투기로 쉽게 돈 버는 것을 보니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는 허탈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 직장인 커뮤니티사이트에서는 “땅 쇼핑이라니 LH 부럽다”, “서민 자괴감 제대로 주네”, “금수저, 건물주 위에 LH 사원증” 등 LH 사태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직장인들도 늘고 있다.

중견기업 제조업 종사자 A 씨는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연봉을 받으면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LH 사태를 보고 일에 회의를 느꼈다”면서 “내가 평생 벌어야 할 돈을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로 쉽게 벌었다고 생각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IT업계 디자이너인 B 씨도 “연초 연봉 인상과 함께 승진까지 해서 내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LH 사태를 보고 나니 돈 버는 방법도 모르는 무능한 패배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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