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는 관계의 종교이자 철학, 여성에게만 부담 지우는 건 유교 아냐
예는 물건이 아니라 마음으로 해야...본래 간소했던 차례상으로 돌아가자
현대 사회에서 제사와 차례의 의미? 가족간 사랑 돌아보는 일상의 순간
코로나19로 가족 모임 제한된 명절, 가족의 사랑과 의미 되새기는 시간되길
설과 추석에 지내는 차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차례는 조상을 기리고 조상의 음덕에 감사하는 전통이라는 통념에 맞서, 차례상을 차리는 게 경제적·시간적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는 모양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친족이 모이기 어렵게 되면서, 차례를 간소화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빅데이터 연구소인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와 함께 신년특집을 통해 차례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형식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차례와 제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차례와 제사는 부모와 형제자매의 소중함을 떠올리는 시간이죠. 우리가 벌거벗고 다니지 않고 옷을 입듯이, 제사도 최소한의 형식만 갖추면 됩니다.”
박광영 성균관(成均館) 의례부장은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기제사와 명절 차례에 대한 수많은 오해를 불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교식 제사가 허례허식에 불과할 뿐이라거나, 유교가 남녀를 차별한다는 등의 편견은 완전한 허구”라고 지적했다.
이날 뉴스포스트는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소재 성균관(成均館)에서 박광영 의례부장을 만나 유교식 차례와 제사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보고, 유교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해 진행했다.
“유교는 관계의 종교이자 철학...남녀 평등이 기본”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자공이 물었다. “평생토록 지킬 만한 한마디 말씀이 있겠습니까?”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공자가 말했다. “바로 서(恕)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
- 論語, 衛靈公篇
유교 철학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구절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토록 지킬 말씀을 묻자 공자는 서(恕)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공자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부연한다.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다. 그래서 유교는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같아지는 그 지점을 말하는 공감(共感)의 철학이다. 박광영 의례부장은 유교가 이처럼 관계의 철학인 까닭에, 여성에게만 차례상 부담을 지우는 건 본래 유교 문화가 아니라고 했다.
- 유교식 차례와 제사 문화가 여성에게만 부담을 강제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건 본래 유교의 모습이 아닙니다. 유교식 제사는 여성에게만 부담을 주는 게 아니에요. 유교의 어떤 경전이나 기록에도 제사 음식을 여자만 하라거나, 또는 남자만 하라거나 하는 규정은 없죠. 유교는 제례뿐만 아니라 관혼상제 모든 영역에서 남녀의 역할을 나누지 않고 같이 하는 것이라고 봐요. 유교식 결혼만 보더라도, 어머니만 참석하거나 아버지만 참석하는 경우는 없고, 남녀가 모두 함께하죠.”
- 차례 지내고 나면 으레 남자들은 고스톱 치고, 여자들이 과일 준비하는 게 흔한 풍경인데.
“이건 아주 잘못된 문화예요. 유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종교이자 철학인데요. 유교의 근본 가르침은 서(恕)입니다. 또 유교에서는 배우자 관계를 서로 나뉠 수 없는 한 몸으로 보는데, 몸 반쪽만 고생하고 나머지 반쪽은 놀고먹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죠. 앞서도 말했지만, 유교의 사서삼경이나 주자가례 등 어딜 봐도 여성이 가사를 도맡아야 한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성에게만 차례상과 제사상 부담을 지우는 문화는 어디서부터 유래했을까? 박광영 의례부장은 이를 대한민국의 압축적 역사 경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한강의 기적 등 모든 국가적 사건을 수십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겪으면서 정통 유교 문화가 변질됐다는 말이다.
- 여성을 차별하는 제사 문화는 어디서부터 유래했나요?
“제사를 지낼 때도 남성만 절하고 술 올리고 여성들은 참여하지 못하는 이상한 문화도 근대화 이후에 생겼죠. 하지만 그건 유교가 아니에요. 본래 전통 유교의 차례와 제사에선 남녀가 모두 조상께 술을 올리고 절을 합니다. 여성을 배제하지 않았죠. 그런데 근대화 이후에 국가적으로 여러 굵직한 역사적 경험을 하면서, 여성을 차별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여자가 어디’ ‘여자가 감히’ 이런 식으로 여성을 폄훼했던 건데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현대 고부갈등도 생기고, 그래서 여성들도 스스로 시댁 차례와 제사에 참여하길 꺼렸던 겁니다. 남편이 역할을 잘못해서 그런 가정의 분란이 생긴 거죠.”
“차례상은 본래 간소한 것...유교 본연의 검소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林放 問禮之本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물었다.
子曰 大哉 問 禮 與其奢也 寧儉 喪 與其易也 寧戚
공자가 답했다. “큰 물음이다! 예는 사치스럽기보다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초상은 물건으로 쉽게 하기보다는 마음으로 슬퍼해야 한다”
- 論語, 八佾篇
공자는 예를 행할 때 마음을 담아 검소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광영 의례부장도 최근 명절 차례상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본래 유교식 정통 차례상은 간소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래 간소한 게 차례상의 모습이니, 본연의 모습으로만 돌아가면 된다는 말이다. 박광영 의례부장에 따르면 근대화 이후 사당이 없어지고 집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상차림이 커졌다. 또 8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살림이 나아지면서 기제사와 더불어 차례상도 풍성해졌다는 설명이다.
- 차례상을 간소해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시는지요?
“제사와 차례를 구별해야 합니다. 제사는 아버지나 어머니, 할아버지나 할머니 등 조상께서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를 말하죠. 차례는 설날과 추석 등 시간의 변화에 따라 조상께 올리는 의식입니다. 본래 차례상 그 자체는 굉장히 간소합니다. 차례는 사당에서 가로 세로 1미터 정도에 음식을 차리기 때문에 몇 가지 안 됐어요. 그런데 근대화 이후 집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상이 길쭉한 교자상이 되면서 커지고, 음식이 기제사 가짓수만큼 많아졌습니다. 살림살이가 풍족해지면서 차리는 음식이 풍성해진 면도 있고요. 기제사는 조선시대엔 품계에 따라 가짓수가 달랐는데요. 근대화 이후 모든 가정의 제사상이 영의정급으로 변했죠. (웃음)”
- 그럼 본래 유교식 차례상의 모습은 어떤가요?
“설이나 추석 등 그 시절에 나오는 음식과 술, 그리고 과일 몇 가지 정도죠. 기본적으로 유교식 제례는 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술이랑 불에 구운 고기인 적(炙), 그리고 포(脯), 설날에는 시절 음식으로 떡국을 올리고요, 추석에는 오곡이 나오니까 햇곡식으로 만든 송편을 올립니다. 여기에 시절 과일 두세 가지 정도를 올리죠.”
- 본연의 차례상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제언한다면.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요. 하나는 형식적인 측면입니다. 지금 가정에서 차례상 차리는 교자상이 길쭉하잖아요? 올바른 차례 문화를 위해선 이 상을 바꿔야 합니다. 좁은 사당에서 차례를 지내다가, 넓은 집안에서 차례를 지내니까 괜히 작은 상에 차례를 올리기가 조상님께 죄송한 마음에 그러는 건데, 그러지 말고 교자상에서 작은 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교의 예는 형식이 아니라, 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최소한의 형식만 지키면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마음가짐의 측면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남의 집이랑 비교하면서 사치스럽게 차리는 허례허식이 생겼어요. 이것도 잘못됐다고 봅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조상님을 모신다는 정성만 생각해야죠.”
“제사는 부모와 형제자매의 소중함을 깨닫는 생생하며 참된 교육”
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
공자가 말했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셨을 때는 예로써 장례를 치르며, 예로써 제사를 모셔야 한다.”
- 論語, 爲政篇
현대 사회에서 제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차례와 제사를 간소화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지금, 유교는 어떤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 유교가 국교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의 차례와 제사,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관계는 친구도 아니고 이웃도 아니에요. 가족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모님과 형제, 자매가 가장 중요한 거죠. 가족의 소중함을 몸으로 일깨울 수 있는 게 제사와 차례라고 생각해요.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공간은 바로 가족이 생활하는 일상의 그 공간입니다. 제사와 명절 차례는 부모님과 형제, 자매, 아이들이 서로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시간을 공유하는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 뉴스포스트와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시민들은 시대상의 변화 때문에 차례와 제사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는데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차례와 제사의 형식이 변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제사는 형식보다는 마음입니다. 중요한 건 전통 형식을 무조건 지키는 게 아니에요. 예는 살아가는 도리이기 때문에 시대에 맞춰 변하는 게 당연합니다. 형식에 너무 연연하거나 얽매이지 말고 차례와 제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시대에 맞춰 다양한 방법으로 지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래도 최소한의 형식은 필요하죠. 예는 옷과 같은 거라고 봅니다. 옷도 하나의 형식이잖아요? 형식이 아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옷을 다 벗고 다녀도 된다는 말이겠죠. (웃음) 하나의 아이디어일 수도 있는데요. 차례상과 제사상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한두 가지씩 올려보는 겁니다. 예를 들면 피자 같은 거요. 그러면 아이들도 즐거워하고, 그 아이들이 성장해 제사를 지낼 때가 되면 피자를 제사상에 올리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도 올 수 있겠지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가족간 모임도 제한되면서, 이번 설날 명절에도 온 가족이 모이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번 설날 조상을 모시는 현명한 방법을 제언해주신다면.
“제가 종갓집 종손인데요.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 추석부터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용돈을 많이 보내드렸죠. (웃음) 명절에 자식이 고향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모님도 서운해하지 말고, 자식들도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옛날에 이런 게 있어요.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제례에 참석하지 못할 때, 제사를 지낼 시간이 되면 그 방향을 바라보고 마음으로 예를 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절을 할 수도 있겠죠. 마음속으로 조상님들께 인사드리는 겁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전까지 명절엔 서로 간에 사정을 이해하면서, 멀리서라도 가족의 사랑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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