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인·상가 임차인·보행자에 또 다른 골칫덩이 
- 보행자 “좁은 통로 여전...과도한 부스 정리 필요”
- 거리가게 상인 “열악한 환경·무리한 단속 개선해야”
- 상가 임차인 “정당하게 장사하는 사람들 불이익”

보행권은 시민들의 안전한 삶을 가늠할  바로미터다. 1997년 서울시는 인구 천만 이상의 대도시 중 최초로 보행권 조례를 제정했지만 과연 우리는 걷기 좋은 도시에 살고 있을까? 자동차 3천만 시대를 앞둔 2021년, 도심은 오히려 차량에 압도당해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이다. 보행자가 다녀야 할 인도를 각종 시설물과 개인형 이동장치가 점령했으며, 특히 어린이·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은 목숨을 담보로 한다. <뉴스포스트>는 보행권 관련 다섯 차례의 기획 시리즈를 통해 도심지 보행 현장과 보행친화거리를 살펴보고 보행권 개선의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보행권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여러 문제들 중 노점은 난제로 꼽힌다. 보도를 불법적으로 점유해 허가를 받지 않고 영업을 하니 마땅히 단속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한편, 저소득층의 생계수단으로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서울시는 2020년 7월 흥인지문~동묘앞 역의 약 1.2㎞ 구간, 약 100여 개의 노점을 대상으로 ‘거리가게’ 특별 정비 시범사업을 준공을 완료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서울시는 2020년 7월 흥인지문~동묘앞 역의 약 1.2㎞ 구간, 약 100여 개의 노점을 대상으로 ‘거리가게’ 특별 정비 시범사업을 준공을 완료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보행환경 개선에 앞장서는 지자체는 단연 서울시로, 노점과 관련해 서울시는 2013년 ‘거리가게 상생정책자문단’을 출범시켰다. 노점의 명칭도 ‘거리가게’라는 우리말로 바꿨다. 

서울시는 2019년 시민의 보행권과 거리가게 생존권을 보장하는 ‘거리가게 허가제’ 정책을 시행했다. 거리가게 허가제란 도시미관을 해치지 않는 일정 요건을 갖춘 거리가게에 정식으로 도로점용 허가를 내주고, 운영자는 점용료 납부 등 관련 의무를 다하며 안정적으로 영업을 하는 제도다. 

지난해 7월 말 흥인지문~동묘앞 역의 약 1.2㎞ 구간, 약 100여 개의 노점을 대상으로 ‘거리가게’ 특별 정비 시범사업을 준공을 완료했다. <뉴스포스트>는 지난 18일 보행친화거리로 탈바꿈한 흥인지문~동묘앞 거리가게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시민 “거리는 깨끗해졌지만...장점은 딱 그거 하나”


‘거리 가게’ 특별 정비 시범사업이 완료된 흥인지문~동묘앞 거리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거리 가게’ 특별 정비 시범사업이 완료된 흥인지문~동묘앞 거리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동대문역에서 내려 바라본 도로의 첫인상은 ‘깔끔하다’였다. 짓궂은 날씨 때문인지 문을 열지 않은 점포도 상당했지만, 보도를 무리하게 침범하고 있는 거리가게는 없었다. 

지나가는 몇몇 시민들에게 환경 개선에 대한 만족도를 묻자, 막연히 깨끗해져서 좋을 것이라 생각했던 기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직장인 박인숙(53·가명) 씨는 “10점 만점에 3점이다. 거리 깨끗해진 거 딱 그거 하나다. 보행 도로는 여전히 좁고 외관도 해치고. 사대문이면 서울의 얼굴인데, 다닥다닥 설치된 부스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종로구에 거주하는 김상배(71·가명) 씨는 “안 그래도 좁은 도로인데 정비를 확실히 했어야 한다. 예전처럼 편의점도 없던 시절에 노점상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흉물 그 이상의 가치는 없는 것 같다”며 “푸드트럭처럼 특정 지역에 제한한다든지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특히 좁은 도로와 제한된 시야가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이용찬(25·가명) 씨는 “서울시에서 허가제를 한다고 해서 통로가 넓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시야를 막아 답답하다. 오늘 같이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 걷기도 힘들다”고 전했다. 


상인 “노점상 특색 없어 손님도 발길 끊었다”


18일 오후 종로구청 단속반이과 상인이 거리가게 불법 부착물을 떼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18일 오후 종로구청 단속반이과 상인이 거리가게 불법 부착물을 떼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거리가게와 같은 보행 친화 정책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이 체감하는 보행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불만족스럽기는 거리가게 상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반찬 거리가게를 운영하는 김숙란 씨(68·가명)는 “노점상이라고 하면 서민적으로 싸고 부담 없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부스로 마련해 놓으니 손님들도 마트와 차별성을 느끼지 못한다. 품목마다 다르겠지만 부스로 바꾸고 난 뒤 매출이 3분의 1 이상 줄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거리를 깨끗이 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겠지만 이렇게 해놓으니 사람 접하기가 쉽지 않다. 동대문 일대뿐만 아니라 앞서 사업을 진행했던 영등포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많은 점포가 철수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거리가게에서 잡곡·야채 등을 판매하는 김요영(62·가명) 씨는 “부스 마련한다고 돈은 돈대로 들고, 매출은 줄고 속이 탄다. 부스는 꽉 막혀 상품이 보이지도 않고, 좁아서 상품을 진열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구청 직원들은 다 재제만 시킨다. 이 부스도 개인 돈으로 구매한 사유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매일 단속하기 바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상인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종로구청에서 거리가게 단속이 나왔던 것. 

붕어빵을 판매하는 홍양순(56) 씨는 “하루에 한 번은 꼭 나오는 것 같다. 날씨가 춥거나 비 또는 눈이 와서 들이칠 때 손님을 위해 투명 가림막을 설치했는데 이것마저 ‘아줌마 이거 떼요, 저거 떼요’ 한다. 우리는 시민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도 이러다 보니 손님들은 이 부스마저 구청에서 무료로 제공해 줬다고 생각한다. 부스도 상인들의 개인 재산으로 마련한 것인데, 우리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듯한 느낌도 받는다”고 덧붙엿다.  


골칫덩이 된 거리가게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거리 가게’ 특별 정비 시범사업이 완료된 흥인지문~동묘앞 거리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건물에 세를 들어 장사를 하는 상인들과도 갈등을 빚는 모습이다. 거리가게 맞은편 상가에서 6년째 건강식품 장사를 하고 있는 이경숙 (70) 씨는 “상가 가게 가진 사람들은 세금, 월세 등 각종 세에 치이고 노점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간판을 보고 물건을 사러 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통로까지 막아 매출이 절벽이 됐다”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처럼 정당하게 가게를 얻어 장사하는 사람들은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서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는 소외됐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8년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을 확정했을 당시 배광환 서울시 안전총괄관은 “이번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은 지속적인 소통과 신뢰를 통해 이뤄낸 결과”라며 “제도권 내 합법적으로 운영이 가능해져 거리가게 운영자들의 생계보장과 함께 시민들의 보행환경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말 그대로 거리와 가게가 함께 사는 상생을 취지로 거리가게 제도를 시작했지만, 상인과 상가 임차인, 보행자 모두에게 또 다른 골칫덩이로 전락한 모습이었다. 적극 시행된 서울시 보행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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