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쿨존 25년간 허술한 관리...아이들 ‘사망’에 손봐
- 전동 킥보드, 배달 오토바이 등 위협요소 증가
보행권은 시민들의 안전한 삶을 가늠할 바로미터다. 1997년 서울시는 인구 천만 이상의 대도시 중 최초로 보행권 조례를 제정했지만 과연 우리는 걷기 좋은 도시에 살고 있을까? 자동차 3천만 시대를 앞둔 2021년, 도심은 오히려 차량에 압도당해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이다. 보행자가 다녀야 할 인도를 각종 시설물과 개인형 이동장치가 점령했으며, 특히 어린이·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은 목숨을 담보로 한다. <뉴스포스트>는 보행권 관련 다섯 차례의 기획 시리즈를 통해 도심지 보행 현장과 보행친화거리를 살펴보고 보행권 개선의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민선 6기와 7기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 정책의 핵심 개념은 ‘사람 중심의 도시’다. 도시 공간에서 모든 사람은 보행자다. 보행은 자동차와 대비되며 보호가 필요한 행위지만, 그동안 자동차의 대중화 속에서 그 가치는 저평가됐다. 최근 지속가능한 발전과 도시 재생 등이 화두로 떠오르며 보행권의 중요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민의 보편적 권리 ‘보행권’
보행권이란 보행자가 안전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보행권에 대한 논의는 1950년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당시 우리나라의 보행 환경은 자동차 중심의 도시 설계로 인해 횡단보도 없는 교차로, 보도 없는 도로, 숨 가쁘게 걸어야 횡단이 가능한 보행 신호 시간 등 열악했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가 절반에 달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보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어린이와 고령자,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더욱 위험했다.
시민의 기본 권리로 ‘보행권’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특히 보행권이라는 개념에 교통약자의 이동권 문제가 포함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함께 떠올랐다.
이 중 통학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정부는 1995년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제도를 입법화했다. 스쿨존은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주 통학로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교통안전시설물 및 도로부속물 설치로 학생들의 안전한 통학 공간을 확보하는 제도다. 하지만 25년 동안 허술하기 짝이 없이 운영되며 사고는 계속 이어졌다.
유명무실 스쿨존...3년간 어린이 1,489명 다쳐
지난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아홉 살 김민식 군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곳에는 신호등이나 과속방지턱, 과속단속카메라 등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시설물이 하나도 없었다.
스쿨존에서는 차량의 정차나 주차를 금지하고 운행속도를 시속 30킬로미터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2017년 경찰 무인단속에 적발된 스쿨존 내 과속운전은 총 32만 5,851건이었으며, 전국 1만 6,912곳 중 신호등이나 과속단속카메라의 설치율은 5%도 되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는 꾸준히 발생했다. 2016년~2018년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사망하거나 다친 어린이는 총 1,489명이었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 480건의 사고가 발생해 8명이 숨지고 510명이 다쳤다. 2017년에는 479건의 사고로 8명이 세상을 떠났고 487명이 부상을 입었다. 2018년에는 사고 435건에 사망 3명, 부상 473명으로 집계됐다.
아이들의 목숨을 빚지고 정부는 전국 스쿨존 내 교통안전시설물 확대 설치 및 스쿨존 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민식이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광주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세 살 여아가 대형 트럭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부산 해운대, 전주 등 전국에서 스쿨존 내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보행 중 사망자 OECD 평균 2배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서울시를 중심으로 보행자의 안전 및 편의를 증진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이 시행됐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보행자 사고의 비율이 높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7~2019년) 교통사고 사망자는 총 1만 1,315명이었으며, 이 중 보행 사망자는 39.5%인 4,464명으로 조사됐다.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4명은 보행자라는 의미다.
공단의 자료를 보면 교통사고 관련 사망자 수는 2012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지만, 문제는 보행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8.6%)의 2배나 된다. 또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사망자는 평균 2.51명으로 OECD 평균인 1.0명의 2배가 넘는다.
이 같은 수치는 지금까지 도시교통에서 보행권의 가치가 무시돼 왔다는 방증이다. 안전한 보행권을 보행자가 돌려 받을 수 있도록 보행자 우선의 도시행정 계획과 지원이 적극 실현되어야한다.
킥보드, 배달오토바이 등 늘어나는 보행자 위협 요소
또한 개인형 이동수단(PM·Personal Mobility)의 발달로 전동 킥보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교통수단도 등장하며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 밖에도 보행 시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보행 행태의 변화와 배달 오토바이 증가 등 새로운 보행 위험 요소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분석이나 인프라의 개선 없이 위험 요소들을 허용한 것으로, 제도만 앞서나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16년 위험성이 주목된 스몸비는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로 보행 중에 스마트폰을 보느라 주위를 미처 보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행인의 교통사고는 225건으로 2017년보다 27% 넘게 증가했다.
공단의 실험에 따르면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시야 폭이 56% 감소하고, 전방 주시 정도도 85%나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이면 도로 사이에 주차한 차량의 움직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전방의 차량 출현도 알아채지 못해 매우 위험하다고 공단은 설명했다.
이와 함께 급격히 성장한 공유 전동 킥보드 시장도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전동 킥보드 등 1인용 전동형 이동수단인 마이크로 모빌리티 시장 규모는 2016년 6만 5,000대, 2017년 7만 5,000대, 지난해 9만 대 수준에서 2022년 20~3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이 성장한 만큼 관련 사고도 늘어났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 접수된 전동 킥보드 안전사고는 모두 571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5% 급증했다. 전체 사고의 64%가 운전 미숙이나 과속 등 운행 중에 발생했다는 것도 문제다.
‘보행권’은 시민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
이에 보행 환경 개선과 보행 안전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 권리는 도시 시민으로서 충분히 보장받아야 한다. 도시의 교통과 환경, 안전 확보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이 시대에서 보행 정책의 지속적인 확대와 발전이 요구된다.
그동안 도시교통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보행자의 목소리가 모일 때 사회 전반의 인식의 변화를 통해 보행환경 개선이라는 변화가 이루어졌다. <뉴스포스트>는 보행권과 관련한 다섯 차례의 기획 시리즈를 통해 실제 보행 현장을 짚어보고, 우리보다 앞서 보행권에 관한 인식과 환경개선의 움직임이 있었던 해외 사례 등을 집중 보도할 예정이다.
※ 참고자료
서자유 외, 보행환경에 관한 국내 연구와 정책 흐름 고찰, 한국경관학회지, Vol.11, pp.1-14, 2019
장명순 외, 보행환경 개선사업 시행방안 및 시행효과 평가방안, 교통 기술과 정책, Vol.9, .77-85, 2012
KTDB 정책자료집 통계로 본 교통, 2017
한국의 보행환경 개선 : 정책 및 성과, 한국교통연구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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