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학동 도깨비시장, 지난 4월 보호구역으로 지정
차량·방문객 뒤섞여... 보행 보조기 끌고 뛰는 노인들
상인들 “사람들 더 안 오게 만드는 법” 우려 목소리도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노인보호구역이요? 어린이보호구역은 들어봤어도 노인은 처음 들어보는데...”
지난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안전을 강화하는 이른바 ‘민식이법’(개정 도로교통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어린이보호구역에 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환경도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교통 약자인 노인에 대한 운전자들의 배려와 인식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으로 노인보호구역에 관한 관심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이 중 노인 보행자는 거동이 불편하고, 시야가 좁아 위기 대처능력이 떨어져 교통사고에 쉽게 노출될 위험이 있다.
노인보호구역, 어린이 구역의 11.4%
실제로 전체 교통사고 보행 사망자 중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 전체 보행 사망자 중 노인의 비율은 2017년 54.1%(906명) 2018년 56.6%(842명) 2019년 57.1%(743명)이다.
노인보호구역은 지난 2007년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도입됐으며 복지관, 경로당, 의료시설 등 어르신 유동인구가 많은 시설을 중심으로 지정하고 있다. 2019년 12월을 기준으로 전국 1,932곳이 지정돼 있지만, 어린이보호구역(1만 6,912)의 11.4% 수준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국내 노인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2020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 인구의 15.7%로, 앞으로도 계속 증가해 2025년(20.3%) 초고령 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노인 보행자에 대한 운전자들의 인식 강화와 정책 개선이 시급히 요구되는 이유다.
<뉴스포스트는> 7일 올해 4월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도봉구 방학 도깨비시장에 방문해 노인보호구역 관리·감독 실태를 살펴봤다.
노인보호구역 표지판·노면 표시 전무
500m가량 일직선으로 쭉 뻗은 방학 도깨비시장은 총 4개의 문이 있으며, 사이사이 골목과 횡단보도가 있다. 이날 방문객들은 1문과 4문 끝 쪽은 세 방향에서 차가 진입할 수 있어 보행 시 위험하며, 골목 사이 통행 차량도 많아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신성옥(69) 씨는 “시장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 오른쪽, 정면까지 총 세 군데서 차가 오는데 유턴을 하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하다”라며 “일방통행으로 지정해주면 좋겠는데 (차를) 대는 놈이 임자라고 사람들이 차 사이를 다니든 말든 너무 무질서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인보호구역이라는 말도 처음 들어보고, 이곳에서 쌩쌩 달리는 차와 오토바이를 본다면 보호구역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노인들은 싸고 친숙한 전통시장을 찾는데 이 사람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1문 입구 쪽에는 1톤짜리 식품 운반용 냉동 탑차가 꾸준히 지나갔으며 오토바이와 트럭, 스타렉스 봉고차 등 여러 방향에서 오는 차와 행인들이 뒤엉켜 있었다. 2문과 3문 사이 도로는 신호등이 따로 있지 않아 일부 노인들은 보행 보조기를 끌고 뛰듯이 건널목을 건넜다.
이날 방문객 총 20명에게 노인보호구역에 대해 아냐고 묻자 전부 모른다고 대답했다. 시장 주변에는 노인보호구역에 대한 안내 표지판과 노면 표시도 전혀 없었다.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몸살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과 CCTV 단속구간이라는 노면 표시는 자주 발견할 수 있었지만, 무용지물인듯했다. 시장 방문객들은 도로에 차도 많이 다녀 복잡하지만, 불법 주차된 차들로 인해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정순자(70) 씨는 “시장 주변에 통증 클리닉과 같은 병원이 많아 노인들이 많이 방문한다”면서 “도로도 좁은데 불법 주정차 차량이 많아 버스를 차도로 나가서 타야 한다”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기자가 시장 주변 사진을 찍자 불법으로 정차를 하고 있던 차주가 나와 “신고하려고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냐”라며 따지기도 했다. 이날 시장 문 사이에 주·정차된 차량과 오토바이 등의 수는 15대가 넘었다.
유재신 씨는(73) “최근 시장에 방문했을 때 동사무소에서 무엇을 개선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는데 차량 때문에 위험하다고 얘기했다”면서 “재작년 시장 상인에 대한 설문에서도 서비스 개선을 요청했더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이번에도 변화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했다.
전통시장 오지 말라는 소리... 청원서 논의도
하지만 노인보호구역에 대한 상인들의 의견은 달랐다. 주차난이 있어 노인보호구역 지정으로 주변에 주정차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고객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유의상(58) 도깨비시장 상인회장은 “전통시장 주변 주정차 허용을 아예 안 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데, 요즘 차 없이 장 보러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전통시장에 오지 말라는 소리 하고 똑같다”라며 “상인들 내에서는 청원서를 내자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전통시장은 노인들만 다닌다고 생각하는지 오세훈 시장님께 묻고 싶다. 도깨비시장을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이유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며 “상인들의 의견은 아예 무시하는 것이냐”라고 주장했다.
공영 주차장은 도깨비시장에서 직접 시설 현대화 사업 지원을 받아 마련해 ‘도깨비시장 공영주차장’이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시장 고객이 혜택을 보는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보행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4월에는 노인보호구역 지정 계획을 발표했던 것으로, 현장 시장 상인 분들의 의견도 중요하기 때문에 의견 수렴을 거치고 있는 단계다”라며 “구청에서 여름까지 직접 시장 상인 분들과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교통 담당과 주차 단속 등 부서 간에도 최종적으로 신중히 의견을 모아야 하는 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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