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도입 임산부석, “배려 강요, 역차별이다” 주장도
관련 민원 지속 감소하지만…지난해 월평균 731건 발생
설문 결과 임산부 절반 이상 ‘배려 받지 못했다’ 답해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지난 20일 서울 지하철 우이·신설선에서 임산부석을 두고 시민들 간의 다툼이 발생했다.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한 어르신이 “비워둡시다”라고 말을 건넸고, 할머니는 “지금 임산부 없지 않냐. 오면 비키겠다”고 답했다. 언성이 높아지고 몸싸움으로까지 번지자 역무원이 출동해 상황을 중재했다. 과연 지하철 임산부석은 배려석일까? 비워두어야 하는 지정석일까?

지난 20일 서울 지하철 우이·신설선에서 임산부석을 놓고 언쟁이 벌어졌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지난 20일 서울 지하철 우이·신설선에서 임산부석을 놓고 언쟁이 벌어졌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임산부 배려석은 지난 2013년 12월 서울 지하철에 처음 도입됐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서울교통공사 운영)은 객실 1량마다 가운데 7석 중 양 끝 2석을 임산부 배려석으로 지정하고 있다. 초기에 스티커를 붙여 임산부 배려석임을 알렸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자, 2015년 7월부터는 좌석을 분홍색으로 바꾸고 발밑 부분에 분홍 카펫 스티커를 부착했다. 

하지만 8년이 흐른 지금도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여전하다. ‘비워둘 것이냐 임산부 승차 시 비킬 것이냐’, ‘배려를 강요한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다’ 등을 놓고 욕설·폭행 사건들이 잊을만하면 한 번씩 불거진다. 

누구를 위한 ‘분홍 좌석’인가?

임산부 배려석에 관한 민원은 매년 감소하고 있지만,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아 있다는 민원이 매달 700건을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0년 서울 지하철 고객센터로 접수된 민원은 전년보다 1,481건(0.2%) 감소한 90만 6,412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민원은 8,771건으로 전체 민원의 0.97%로 나타났다. 최근 3년 서울 지하철 전체 민원 중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 비율은 2018년 2.93%에서 2019년 1.43%, 2020년 0.97%로 꾸준히 감소했다. 

지난해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은 월평균 731건이 발생했다. 실제로 출퇴근 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산부들이 많았다.

임신 11주 차 직장인 윤소연(31) 씨는 “임신 초기의 경우 배가 나오지 않아, 배지를 달고 있어도 임산부석에서 비켜달라고 얘기하기 힘들다”며 “초기가 유산의 위험성도 제일 높고, 임신에 적응되지 않아 몸과 마음이 제일 예민할 때인데 배려 받지 못해 화가난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이윤호(30) 씨는 “아내가 배지를 봐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이제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해 속상하다”며 “사람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는 배가 언제 어떻게 부딪힐지 몰라 조심히 다니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임산부 절반 이상이 대중교통 자리 양보 등 배려를 받은 경험이 없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10월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4.1%가 배려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이유로는 ‘배가 나오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57.1%였다. 사회적으로 임산부에게 필요한 배려로는 대중교통 좌석 양보(37.8%)가 가장 많았다. 초기 임산부나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임산부 등을 위해 좌석 색을 다르게 하고 임산부 배지를 다는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본래의 취지가 무색한 모습이다.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러시아워 출근전쟁 속 “현실성 없다”

서울교통공사의 공식 운영 방침은 해당 자리는 임산부를 위해 비워놓자는 것이다. 하지만 ‘임산부가 타지도 않는데 비워놔야 하는 것이냐’는 불만도 나온다.

대학생 김 한(21) 씨는 “임산부석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미 교통약자석도 한 칸에 12석이 있는데 과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임산부가 탔을 때 비켜주면 되는데 굳이 자리를 비워놓는 것도 자원 낭비다”고 전했다. 

직장인 박여은(42) 씨는 “출·퇴근 시간같이 사람이 붐빌 때는 임산부가 아니더라도 배려석에 앉아야 한 명이 더 탈 공간이 생긴다”며 “지하철 이용차 현황을 토대로 비워놔야 할 시간대를 정해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준점이 애매모한 문화로 인해 시민들의 혼란이 젠더 갈등으로까지 번진 모습이다. 직장인 김홍준(31) 씨는 “남자가 임산부석에 앉아가면 눈초리를 받는데, 여자는 그냥 앉아서 간다”며 “임산부 배려석이 아니라 여성 전용 좌석이 된 것 같아 역차별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송지은(27) 씨는 “임산부석이 마치 여성의 특권처럼 여겨져 비난을 받을 때가 많다”며 “임산부는 다른 노약자보다 많은 눈치를 봐야 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임산부 배려석의 필요성을 납득할 수 있는 캠페인이 필요해 보인다”며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제도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고 바람직하게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덧붙였다. 

뉴스포스트는 후속 보도로 출·퇴근 시간 임산부와 함께 지하철에 탑승해 배려석의 이용 실태를 알아보고, 교통약자 보호 문화가 바람직하게 확산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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