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 임산부 배지 달고 출·퇴근 지하철 탑승
대부분 중년이 착석…20칸 중 2칸만 비어있어
배지 발견하자 핸드폰을 보거나 잠을 청하기도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임산부 배지를 달고 있어도 출·퇴근시간 대중교통 탑승 시 임산부석 이용이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부족한 시민의식으로 인해 교통 약자인 임산부가 배려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양보 없는 출근길
지난달 31일 취재진은 오전 7~9시와 오후 6~8시 등 출·퇴근시간에 맞춰 서울 지하철 열차 내 임산부석 이용 실태 파악에 나섰다.
임산부임을 알리는 분홍색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부착하고, 인구 유동이 많은 9호선 선유도~신논현 구간과 1호선 시청~동대문역사문화공원 환승 구간을 중심으로 4대 열차(총 20칸)에 탑승했다.
20칸의 열차를 살펴본 결과 만석인 상태에서 임산부석을 비워둔 칸은 단 2칸이었으며, 대부분 중년 여성이나 남성, 젊은 여성 등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배지를 앞으로 달고 임산부석 가까이 다가가봤지만 배지를 쳐다보기만 할 뿐 양보는 없었다.
이날 오전 7시 30분경 서울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에서 중앙보훈병원행 일반 열차에 탑승했다. 만원 지하철이었으며, 임산부석에는 중년 여성들이 앉아 있었다. 임산부석 바로 앞 배지를 단 임산부가 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아 정작 임산부는 앉지 못했다.
실제로 임산부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려석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임신 15주 차 윤선미(28) 씨는 “배려석에 앉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잠을 자거나 휴대폰을 한다. 배지를 쳐다보기만 하고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양보를 기대하지 않는다”며 “임신 초기 때는 너무 힘들어 노약자석에 앉을까 싶었지만 어르신들 눈초리에 괜히 주눅이 들어, 앉지 못한 적도 많다. 임산부석을 처음부터 비워두면 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 같다“고 했다.
여의도역에서 급행열차로 갈아탔다. 급행열차의 경우 임산부석에 앉기는커녕 밀려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갇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임산부석은 역시나 일반 승객들이 이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날 출근시간대 9호선 선유도에서 종합운동장역까지 일반, 급행 두 열차의 10칸을 살펴본 결과 임산부석이 비어있는 경우는 단 2번뿐이었다. 임산부석에 배지를 달고 가까이 다가가도 쳐다보기만 할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갑자기 잠을 자거나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퇴근길은 다를까
오후 6시경 퇴근길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2호선 시청역에서 탑승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해봤다.
시청역에서 임산부석에 앉은 60대(추정) 남성과 맞은편 임산부석의 중년 여성이 임산부 배지를 본 뒤에도 외면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노약자, 장애인, 어린이, 임산부 탑승 시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의미의 교통약자 배려석 앞에도 서봤지만 마찬가지로 배지를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열차 내부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임산부 배려석과 교통약자 배려석에 대한 안내방송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환승해 4호선에 타봤다. 역시나 임산부석이 비워져있지 않았지만 취재진이 탈 때부터 배지를 유심히 보던 20대(추정) 여성이 자리를 양보했다. 이날 유일하게 자리를 양보 받은 경우였다.
이날 취재 결과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95%의 승객들은 배지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워두냐 비키냐’의 갈등이 8년째 지속되는 가운데, 평소에도 임산부석을 비워둬야 함이 명백해졌다. 반면 만석임에도 노약자석은 비워져 있어, 다른 교통 약자에 비해 임산부를 배려하는 시민의식이 상당히 뒤처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공사 입장에서는 배려석이기 때문에 강제로 비워두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다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께서도 교통 약자를 배려하고 자연스럽게 비워두는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