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보드 등 보행 위협요소, 경찰 단속 외 방법 없어 
전통시장·병원 등 ‘노인보호구역’ 지정 사업 필요
국내 운전면허 시험, 보행자 안전 관련 교육 미흡
지자체 교통법규 범칙금 교통안전사업에 재투자돼야

보행권은 시민들의 안전한 삶을 가늠할 바로미터다. 1997년 서울시는 인구 천만 이상의 대도시 중 최초로 보행권 조례를 제정했지만 과연 우리는 걷기 좋은 도시에 살고 있을까? 자동차 3천만 시대를 앞둔 2021년, 도심은 오히려 차량에 압도당해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이다. 보행자가 다녀야 할 인도를 각종 시설물과 개인형 이동장치가 점령했으며, 특히 어린이·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은 목숨을 담보로 한다. <뉴스포스트>는 보행권 관련 다섯 차례의 기획 시리즈를 통해 도심지 보행 현장과 보행친화거리를 살펴보고 보행권 개선의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우리나라 도로는 자동차 소통 중심으로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행 환경은 안전하지 못하고 불편한 현실입니다. 보행자 보호에 관한 운전자 인식을 높이고자 한다면 결국 교육과 단속이 필요한데 현재까지는 둘 다 미흡합니다.”

<뉴스포스트>는 지난 네 번의 기획기사를 통해 도심지 보행 현장과 공유 도로 등 국내 보행환경 실태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이번 기획기사는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박사와 △국내 보행 환경의 현주소 △교통 환경 변화가 보행권에 미치는 영향 △보행권 증진을 위한 문제점 개선 방안 등에 대해 짚어봤다. 인터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29일 서면으로 진행했다.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지자체 안전예산 확보를 위해 징수된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이 해당 지지체 교통안전사업에 재투자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진=우승국 박사 제공)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지자체 안전예산 확보를 위해 징수된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이 해당 지지체 교통안전사업에 재투자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진=우승국 박사 제공)

- 우리나라 보행 환경의 특징과 문제점은 무엇인지? 

“우리나라 도로는 자동차 소통 중심이라 보행 환경이 안전하지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제한속도가 높은 도로가 많고 차도폭이 지나치게 넓으며 우회전 시 일시 정지 등 보행자 보호 규정이 미흡합니다. 자동차의 통행 속도가 높으면 사고 위험을 피하기 어렵고 사고가 나는 경우에 중상 또는 사망 사고로 이어집니다. 넓은 차도 폭은 운전자가 속도를 쉽게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차도를 횡단하는 보행자가 더 많은 시간 동안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리고 넓은 차도폭을 제공하기 위해 보행자 공간인 보도폭이 좁아집니다. 교차로에서 자동차가 우회전한 후 길을 건너는 보행자와 충돌하는 사고가 많습니다. 이를 방지하려면 우회전 시 일시 정지하는 의무 규정이 필요한데 현재는 이러한 규정이 없습니다. 기존 도로교통법에서 일반 도로의 제한속도는 60km/h 이거나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를 50km/h로 낮추는 시범사업이 지난 몇 년간 시행되었고 해당 규정이 개정되어 도시부에서는 2021년 4월부터 제한속도가 50km/h 이하로 관리됩니다. 그러나 지방부 도로가 마을을 통과하는 부분에서는 아직도 보행자가 높은 자동차의 속도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료를 보면 교통사고 관련 사망자 수는 2012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지만, 전체 교통사고 중 보행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0%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협력기구 평균의 2배 정도 되는데요. 한국의 보행자 교통사고가 많은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행자 사고를 방지하려면 자동차 속도 관리가 필요하며 특히 자동차와 보행자가 만나는 공간에서 속도를 철저히 관리하고 보행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동차 속도 관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보행사고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보행자와 자동차 간 상충 정도가 매우 높은 9m 이하, 보차분리가 안 된 이면도로에서 사망 사고의 약 60%가 발생했는데 이면도로에서 자동차 통과 속도를 낮추고 이면도로 교차로 등에서 일시 정지를 강제하는 안전 규정이 미흡했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보행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속도 관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2차로 이상 도로의 경우 이 도로가 보행자 통행이 빈번한 도시 또는 마을 구간을 통과할 때 제한속도를 50km/h 이하로 설정해야 합니다. 학교, 상업지역 등 보행자 통행이 매우 빈번한 구간을 통과할 때는 제한속도를 30km/h 이하로 설정해야 합니다. 이면도로의 경우 제한속도는 20km 이하 또는 10km/h 이하로 설정해야 합니다. 신호 교차로에서 우회전할 때 일시정지 의무를 도입해야 합니다. 이면도로 교차로 통과 전 일시정지 의무를 도입해야 합니다. 이 둘은 교통안전 선진국에서 실행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도시부 또는 마을 통과 도로의 경우 차도 폭, 교차로 폭을 줄여야 합니다. 폭이 좁은 도로에서는 자동차 속도가 자연히 낮아지고 보행자가 차도를 횡단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차도 폭을 줄이지 못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 중앙보행섬을 두어 보행자가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서울 송파구의 한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전동 킥보드와 자전거에 탑승한 채 길을 건너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서울 송파구의 한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전동 킥보드와 자전거에 탑승한 채 길을 건너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 횡단보도 등에서 자전거와 오토바이 이용은 물론 개인형 이동수단(PM)까지 보행 위협 요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행 침해 요소들로부터 어떻게 보행권을 지킬 수 있을까요?

“횡단보도와 보도에서 자전거, 오토바이, PM 등 수단이 통행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경찰의 단속 외의 방법은 없습니다. 특히 무게가 무거운 오토바이의 보도 통행은 철저히 단속해야 합니다.”

- 자율 주행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승용차, 대중교통 등 새로운 유형의 교통수단이 가까운 미래에 실용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행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시는지? 

“자율주행자동차는 주행로와 그 주변의 물체를 감지하는 레이더, 카메라, 라이다 등 센서를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율주행시대에는 자동차가 보행자를 충돌하는 사고가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이 완성되기 전 개발 과정에 있습니다. 2018년 우버 자율주행차가 시험 운행 중 자전거를 끌고 가던 보행자를 치어 숨게 한 사고가 미국에서 있었습니다. 이후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기관들이 더욱 안전에 주의하고 있지만 기술의 완성 전에 사고의 위험은 여전히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국내 도로교통환경의 패러다임이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보행자의 안전 및 편의를 증진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업과 아쉬운 부분을 꼽는다면?

“가장 성공적인 사업은 어린이보호구역사업입니다. 보호구역 지정은 1995년 시작되었고 2003년부터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이 이루어져 어린이 사망사고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미흡한 부분을 꼽자면 어린이보호구역사업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노인보호구역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보행사고 사망자 중 노인의 비율은 약 55%입니다. 따라서 노인보호구역이 어린이보호구역보다 더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재정 지원이 작년(2020년)부터 시작되어 지정된 개소수는 많으나 실직적인 안전시설의 보완은 이루어지지 못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한 관련 법(도로교통법)의 규정이 노인의 주된 활동 공간인 전통시장, 병원 등 장소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어렵게 되어 있어 이를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가장 미흡한 부분을 꼽자면 도시부 또는 보행자가 많은 도로 구간에서 제한속도를 50km/h 이하로 낮추는 정책의 법제화가 선진국과 비교하여 매우 늦었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50km/h 하향은 1950년대에 30km/h 하향은 1970년대에 시작됐습니다. 유럽의 경우 1인당 GDP 5,000불 수준에서 안전속도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인당 GDP 30,000불 시대가 되어서야 사람 중심 속도 정책이 시작됐습니다.”

- <뉴스포스트>의 취재 결과 스쿨존 앞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보고 멈추는 차량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보행자를 위한 사업과 제도 개선은 활발하지만 운전자들의 인식은 부족한 모습입니다.

“국내 운전자들은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건너려는 보행자를 보고 멈춰야 한다는 법 규정을 대부분 모릅니다. 보행자가 양보해야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회전한 후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 할 때도 마찬가지로 정지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는 운전자도 많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운전면허 시험에서 이렇게 중요한 규정을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진국 운전면허 시험은 안전과 관련된 운전 의무만을 다룹니다. 우리나라 면허 시험과 같이 안전 증진에 필요치 않은 자동차 내부 기계장치 이론(자동차 고장으로 인한 사고는 경찰 사고 약 20만 건 중 30건 정도), 범칙금 등 행정적인 것들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둘째 경찰이 단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범적으로 1달간 전국에서 단속한다면 운전자 인식은 바로 바뀝니다. 보행자 보호에 관한 운전자 인식을 높이고자 한다면 결국 교육과 단속이 필요한데 현재까지는 둘 다 미흡합니다. 

-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의 처벌 수준은?

“속도위반을 예로 들겠습니다. 미국 뉴욕주에서 속도위반 처벌은 벌금 90불에서 600불이며 가장 낮은 수준의 위반 시에도 벌점이 부과됩니다. 일본 동경도의 경우 승용차 기준으로 9,000엔에서 35,000엔이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벌점이 부과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승용차 기준 범칙금이 3만 원에서 12만 원입니다. 20km/h 이하 위반은 벌점이 없습니다. 문제는 운전자가 확인이 되지 않으면 1만 원이 추가된 과태료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단속이 카메라를 사용한 기계식이므로 운전자 확인은 어렵고 차주는 과태료 전환을 선택합니다. 과태료로 전환되면 벌점이 없고 보험료에 변동이 없습니다. 결국 1만원으로 면죄를 사는 것인데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처벌 수준은 선진국 대비 매우 낮습니다.   

- 보행안전문화 활성화를 위해서 보행자와 운전자에게 각각 어떠한 자세가 필요할까요?

“현재 위축된 보행권은 보행자가 적극적으로 되찾을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통시설이 보행자에게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적극적으로 지자체나 경찰서에 개선을 요구해야 합니다. 운전자는 보행자가 자동차에 비해 물리적으로 매우 약하므로 보행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운전면허 시험, 방송매체 등으로 적절한 교육을 시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 이외에 보행자가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보행환경 증진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단속을 강화하여 보도 위에 설치된 불법 적치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학교 앞, 상가지역 등 보행량이 많은 도로의 보도 폭은 최소 4m로 제공해야 하고 보행자가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 등을 일정 간격(유럽에서 50m 간격 추천)으로 설치해야 합니다. 신호교차로의 횡단보도 녹색 신호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연속된 교차로의 보행자 신호를 보행자 속도에 맞추어 연동해야 합니다. 보도가 없는 지방부 도로는 보행자 통행 공간을 확보하도록 개선되어야 합니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슈퍼 블록’ 사업, 캐나다 밴쿠버시 ‘SEFC 프로젝트’ 등 우수한 보행환경을 구축한 해외 사업들이 있습니다. 이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맞춰 보행권 개선을 진행하고 있나요? 

“우리나라의 대표적 보행권 개선 사업은 어린이보호구역 사업입니다. 이 사업은 도로의 일정 구간에 대하여 자동차 통과 속도를 낮추는 것에 주안점을 둡니다. 따라서 이는 선적인 안전 개선 사업이며 일정한 구역 내 종합적 환경을 개선하는 슈퍼 블록 사업과  차이가 있습니다.  참고로 블록의 크기로 본다면 우리나라에도 슈퍼 블록이 많습니다. 차이점은 바르셀로나에서처럼 자동차 진출입이 제한되지 않아서 내부 이면도로에서 차와 보행자의 상충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블록 내부 영업시설의 필요에 의해 자동차 진출입을 전면 제한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이면도로 자동차 통행속도를 보행속도로 규제한다면 자연스러운 슈퍼 블록 사업이 될 것입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앞에서 말씀드린 보행자 안전 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동차 속도 관리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우리나라는 이제 막 도입한 단계입니다. 이에 더하여 중요한 것을 추가한다면 지자체 교통안전 예산의 확대입니다. 보행자 사고는 대부분 지자체 관할 도로에서 발생합니다. 교통안전예산은 국도나 고속도로에 70% 이상 투입됩니다. 사고 지표와 상이한 예산 배분은 보행자 안전을 빨리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자체 안전예산 확보를 위해 징수된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이 해당 지지체 교통안전사업에 재투자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벌금 징수의 논리적 정당성 차원에서도 합당한 개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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