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강화해도 사고 여전 ‘운전자 의식’ 개선 필요
사고 오히려 늘어... 지방 정부 대책 마련 힘써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안전을 강화하는 이른바 '민식이법'(개정 도로교통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스쿨존 내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운전자들의 안전 의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1일 인천 서구 한 스쿨존 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건너던 엄마가 사망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11일 인천 서구 한 스쿨존 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건너던 엄마가 사망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지난 11일 오전 인천 서구 마전동 검단복지회관 앞 삼거리에서 유치원 등원을 위해 4살 딸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A(32) 씨가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 장소는 제한속도 시속 30㎞ 이하인 스쿨존 내 횡단보도지만, 피의자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도 밟지 않았다. 

주민들은 사고 지역에 신호등이 없어 평소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주민 B(61) 씨는 “이 도로는 김포와 강화를 넘어가는 지름길로 평소에도 차가 많이 다녀 이전에도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있었다”라며 “이 근방에 학교만 4개가 있고, 복지회관 내에도 도서관이 있어 학생들의 왕래가 잦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교 앞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곳에는 딱딱 신호가 정해져야지 비보호는 너무 위험하다”라며 “이곳을 왜 비보호로 지정했냐는 얘기가 꾸준히 나와 신호등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처리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민식이법'은 어린이보호구역 내·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 신호등 우선 설치 등을 규정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과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운전 의무 부주의로 사망이나 상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등 2건의 법안이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그동안 단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C(43) 씨는 "맞은편 아파트 정문에서 차로 나오는 구간이 내리막길이어서 차들이 너무 빠르게 내려온다"면서 "거리도 작아서 신호등이 없는데, 단속 카메라도 나무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실제로 경찰이 나와 단속하는 것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기존에도 아파트 입구에서 불법으로 유턴을 하는 차량이 많아 위협이 돼 주민들의 사비로 CCTV를 설치한 지 채 한 달이 안 됐는데 사고가 발생했다"라고 덧붙였다.

인천 서구 검단복지회관 앞 삼거리 인도 한쪽에 마련된 추모대.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인천 서구 검단복지회관 앞 삼거리 인도 한쪽에 마련된 추모대.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14일 오전 인천 서구 검단복지회관 앞 삼거리 인도 한쪽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한 시민이 국화꽃을 놓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14일 오전 인천 서구 검단복지회관 앞 삼거리 인도 한쪽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한 시민이 국화꽃을 놓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숨진 A 씨의 이웃 주민들은 아파트단지 앞에 추모공간을 만들고 A 씨를 애도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일이 지난 14일에도 추모대에는 발길이 이어졌다.

 A 씨와 같은 아파트 동에 거주한다는 C 씨는 “피의자는 사고가 발생한 횡단보도 바로 앞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이 동네 주민이면 이곳이 스쿨존인 것을 모를 리가 없다”라며 “눈 수술을 한 지 3일 만에 운전대를 잡고, 횡단보도에서 멈추지 않고 달린 것은 ‘보행자 우선’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잘못된 운전 행태다”라고 비판했다. 

후진적 운전문화가 부른 참변...지방정부의 역할도 부족

운전자들의 안일한 안전 의식으로 스쿨존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3월 인천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불법 우회전을 하던 화물차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10살 아이가 치어 숨진 사고가 있었다. ‘도로 우측 가장자리를 서행하다가 우회전을 해야 한다’라는 도로교통법 규정을 어기고 편도 3차로 중 2차로에서 불법 우회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이후 박남춘 인천 시장은 지난 4월 실·국장회의에서 “사고 즉시 관계 기관 간 TF 구성 및 스쿨존 안전 강화 방안 마련 등에 더욱 속도를 내고, 조속한 대책 시행으로 시민들이 변화를 체감하도록 만들어 달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박 시장이 이 같은 ‘스쿨존 안전 강화 방안’을 주문한 지 한 달 만에 또 스쿨존 사고가 발생한 것. 

지난해 11월 광주의 한 스쿨존에서 8.5t 화물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세 남매와 아이 어머니를 치어 유모차에 탄 만 2살 여아가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세 남매 가족은 횡단보도 반대 차로의 차들이 멈추지 않고 연이어 주행하자 길을 한 번에 건너지 못하고 화물차와 가까운 횡단보도 지점에 서 있다가, 화물차 운전자가 이를 보지 못하고 출발하면서 참변을 당했다.

부산과 대구는 민식이법 이후 오히려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사고 건수가 늘어났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부산에서 민식이법이 시행되기 전인 2019년 3월 25일부터 2020년 3월 24일까지 1년간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33건이다. 반면 법 시행 이후인 2020년 3월 25일부터 2020년 12월 31일까지 9개월간 발생한 사고는 44건으로 조사됐다. 

대구도 스쿨존 교통사고가 늘어났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스쿨존에서 발생한 사고는 모두 59건으로 2019년 54건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

운전자 안전 의식 변화도 병행돼야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사고 시 운전자 처벌을 강화한 ‘민식이법’을 시행했음에도 사고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처벌 강화 외에도 운전자들의 안전 의식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찰청 교통운영계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민식이법으로 인해 어린이보호구역은 제도적으로 많이 보완된 상태로 현재는 정착돼야 하는 단계다”라며 “국민 의식이 많이 바뀌고 있는 과정이며, 정부도 부처합동으로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 안전 강화대책’을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고,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면 개선방안을 찾는 것이 역할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우승국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운전자에게 보호구역에 진입하였음을 인식하게 해 특별히 주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운전면허 도로주행 시험 시 어린이 보호구역 통과도 고려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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