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 한판에 가능한 경우의 수, 우주의 모든 원자 합친 것보다 많아
- 형세·두터움·기세 등 바둑 특유 인문학 요소...알파고 딥러닝으로 돌파
- 알파고, 바둑 기보 3000만개 기반으로 하루 3만번 가상 대국
- 알파고 전후로 강(强)인공지능 출현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우려 커져
- 대중 영화로 본 인공지능...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는 옛말

코로나19 팬데믹을 가장 먼저 예측한 건 세계보건기구(WHO)도 美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아닌, 캐나다의 AI 스타트업 블루닷(BlueDot)이었다. 블루닷의 인공지능 플랫폼은 지난해 초 전 세계 65개국 병원 시설 현황과 가축·동물 데이터, 국제 항공 데이터, 실시간 기후 변화 데이터 등을 분석해 지구촌에 다가올 코로나19 팬데믹을 정확하게 내다봤다. 자율주행차와 신약 개발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효용을 인정받은 인공지능 기술이 글로벌 전염병 발병 예측에서도 쓸모를 증명한 것이다. 뉴스포스트는 총 4부에 걸쳐 인공지능 기술의 현주소와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명암을 짚어본다. - 편집자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인공지능은 심층 인공신경망을 핵심으로 한다. 심층 인공신경망은 인간 두뇌의 자연신경망을 인공적으로 구현했다. 인공지능은 인공신경망을 통해 딥러닝 등 다양한 학습방법으로 주어진 자료를 단순히 외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학습해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한다.

인공지능은 약(弱)인공지능과 강(强)인공지능 등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약인공지능은 특정 분야에 특화된 인공지능이다. 작곡 특화 인공지능, 회화 특화 인공지능, 자율운전 특화 인공지능 등이 있다.

이들 약인공지능은 특정 인공신경망에 특정 알고리즘을 사용해, 특정 분야만 학습한다. 자기 전문 분야 이외의 다른 분야엔 무능한 것이다. 2016년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한 구글의 알파고도 약인공지능에 해당한다. 비록 알파고가 프로 바둑기사를 뛰어넘는 바둑 실력을 갖췄지만, 작곡이나 운전 등 다른 활동은 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반면 강인공지능은 바둑, 작곡, 회화, 운전, 회계, 법률 등 모든 분야를 스스로 학습하면서 마치 인간처럼, 또는 인간 이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을 말한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강인공지능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파고의 출현을 전후로 강인공지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시선이 대중 매체를 통해 소비되고 있다.

 


우주보다 넓은 ‘19*19 바둑판 세계’...약(弱)인공지능에 내줬다


지난 2016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대국을 진행하고 있는 이세돌 9단(오른쪽)과 아자황 박사. (사진=뉴시스)
지난 2016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포시즌호텔에서 대국을 진행하고 있는 이세돌 9단(오른쪽)과 아자황 박사. (사진=뉴시스)

지난 2016년 3월 전 세계의 이목이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바둑 경기 한판에 바둑 규칙을 잘 모르는 이들도 손에 땀을 쥐었다.

명경기의 주인공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아마추어 6단 실력의 아자황. 평소라면 대국 일정도 잡히지 않았을 프로와 아마의 공식 경기였겠지만, 아자황 기사는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기사 ‘알파고’ 대신 착수를 했다. 사실상 인간 바둑기사와 인공지능 바둑기사의 자존심을 건 승부였던 셈이다. 결과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 4승 1패를 거둬, 인공지능의 승리로 끝났다.

알파고의 승리는 지구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알파고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바둑계는 물론 인공지능 바둑기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들조차 “바둑은 인공지능에 정복되지 않을 것”이라거나 “인공지능은 기껏해야 인간 바둑기사에 버금가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게 정설로 통했다. 바둑이 경우의 수가 많은 데다가 바둑을 잘 두기 위해선 형세와 두터움, 기세 등 인문학적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역사가 유구했던 서양의 보드게임인 체스는 1997년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가 IBM의 인공지능 체스선수 ‘딥 블루’에게 패해 인간이 인공지능에 왕좌를 넘겨준 지 오래였지만, 바둑은 앞선 이유로 체스나 장기가 인공지능에 무너지든 말든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생각됐다. 이런 까닭에 동아시아에서 바둑 두는 행위는 인간 지성의 꽃 같은 활동이요, 사람과 사람 사이 품격을 갖춘 소통 방식의 하나라는 의미로까지 확대됐다.

1997년 가리 카스파로프와 IBM 인공지능 딥블루(Deep blue)가 둔 체스 경기 복기. 흰 피스가 딥블루, 흑 피스가 카스파로프다. (자료=Wikimedia Commons)
1997년 가리 카스파로프와 IBM 인공지능 딥블루(Deep blue)가 둔 체스 경기 복기. 흰 피스가 딥블루, 흑 피스가 카스파로프다. (자료=Wikimedia Commons)

실제 바둑에 대한 이런 인식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 중국에서 유래한 바둑은 기원이 고대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둑의 기원에 관한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바둑은 인류 문명의 탄생과 궤를 같이한, 아주 오랜 인문정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셈이다.

또 수천 년 역사를 가진 바둑판 속 삼라만상은 그 세계가 우주보다도 넓다. 보통 바둑판은 가로 42cm, 세로 45cm의 나무판을 사용하는데, 두께는 2.5cm~7.5cm까지 다양하다. 마주 앉은 바둑기사들은 이 바둑판 위에 가로와 세로를 각각 19줄씩 씨줄과 날줄로 교차한 평면에서, 각각 흑돌과 백돌로 진을 펼치고 승부를 겨룬다.

한 번의 바둑 경기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는 우주(Observable universe)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은데, 이를 계산하려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컴퓨터를 사용해도 100만 년 이상 잡아먹는다. 인공지능 알파고는 단순히 경우의 수를 계산한 게 아니라, 3,000만 개의 바둑 기보를 보며 학습하고 하루에 3만 번의 가상 대국을 통해 이세돌 9단과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런 바둑, 이런 바둑판이었기에, 약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이라는 프로 바둑기사를 상대로 거둔 승리는 특히 동아시아 문화권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강(强)인공지능에 대한 대중 인식, 막연한 신비와 혐오 양극단에


약인공지능인 알파고도 인류 대표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는데, 강인공지능은 얼마나 대단할까? 강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지성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자의식을 갖춘 강인공지능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지는 않을까?

위와 같은 강(强)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중 매체 장르는 영화다. 1~2시간 안팎의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이미지와 상징을 담아 관객에게 선봬야 하는 장르적 특징 때문이다. 그 압축된 스토리를 통해 시대 담론을 살펴보기 용이하다.

최근 10년 동안 개봉한 인공지능 소재 영화를 보면 이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운운하는 건 촌스러운 일이 된 듯하다. 영화에 출연하는 인공지능들은 이제 인간과 차이가 없거나, 인간보다 더 인간답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천상의 피조물' 스틸컷. 영화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인공지능 로봇을 둘러싼 희비극을 다루고 있다.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천상의 피조물' 스틸컷. 영화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인공지능 로봇을 둘러싼 희비극을 다루고 있다. (사진=네이버 영화)

근래 개봉한 영화에 등장하는 ‘착한 인공지능’은 동양적 신비주의의 옷을 입고 있다. 지난 2014년 개봉한 ‘그녀(Her)’와 2012년 개봉한 ‘인류멸망보고서:천상의 피조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도가적·불교적 신비주의를 배경으로, 인공지능이 인간도 도달하기 어려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나쁜 인공지능’의 모습도 이제는 터미네이터류의 단순한 선악 이분법의 클리쉐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대세는 ‘자의식’을 갖게 된 인공지능이 자신의 기원과 존재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어쩌다보니 결과적으로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된다는 식이다. 2017년 개봉한 ‘에이리언:커버넌트(Alien:Covenant)’와 2015년 개봉한 ‘엑스 마키나(Ex Machina)’ 등의 작품이 있다.

'에이리언:커버넌트' 스틸컷.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마이클 페스벤더)은 자신을 창조한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의 존재와 기원에 대해 고민한다. (사진=네이버 영화)
'에이리언:커버넌트' 스틸컷.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마이클 페스벤더)은 자신을 창조한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의 존재와 기원에 대해 고민한다. (사진=네이버 영화)

이처럼 강(强)인공지능을 다룬 많은 영화가 동양적 신비주의를 표방하거나, 존재의 근원을 찾아 고군분투하다가 잘못을 저지르는 인공지능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모두 삶과 사후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희망을 인공지능에 투영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담론은 주로 영화를 포함한 대중 매체에 의해 주도되는데, 그 과정에서 막연히 강인공지능이 인간이 희원하는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인간처럼 고뇌하다가 인간을 위협한다는 주장을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이다.

대중 매체가 묘사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일까? 향후 실제로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갖춘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뉴스포스트는 기획기사 2부에서 최근 논란이 된 인공지능 채팅로봇 ‘이루다’ 이슈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과 풀어야 할 숙제를 짚어본다.
 


※참고자료
서영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인공지능 기술, 방송과 미디어, 25(4), pp.35-45, 2020.
윤나라, 인공지능의 탈신화화 - 다큐멘터리 <알파고>와 강/약 인공지능 개념을 중심으로, 기호학 연구, 64(0), pp.37-6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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