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중반부터 수저사회 개념 주목
-성인남녀 90.3% “수저계급론은 우리의 현실”
-2030세대 중심으로 ‘노력=성공’ 등식 무너져
BTS(방탄소년단)의 노래, ‘불타오르네(FIRE)’의 가사를 보면 “그 말하는 넌 뭔 수저길래 수저수저 거려 난 사람인데”라는 가사가 있다. 일명 수저사회의 폐단을 비판한 것이다. BTS의 노래에도 등장하듯이 이른바 대한민국은 수저공화국이다. 부모의 재산이 자녀의 수저 색깔을 결정한다. 수저의 색깔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
물론 금수저라고 무조건 비판 대상이 아니다. 반면 흙수저라고 절망의 대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수저의 색깔로 출발선과 기회가 불평등하다면, 대한민국은 공정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수저사회의 폐단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뉴스포스트가 총 5회에 걸쳐 수저사회의 현주소와 폐단을 점검하며, 대한민국이 수저사회를 넘어 공정사회로 나아갈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스카이캐슬>과 <펜트하우스>, 수저사회의 자화상
[뉴스포스트=정성민 기자] 두 편의 드라마가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JTBC <SKY 캐슬>과 SBS <펜트하우스>다. <SKY 캐슬>은 학부모 한서진(염정아)과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을 중심으로 상위 0.1% 명문가 부모들이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집착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펜트하우스>는 집값 1번지, 교육 1번지 배경의 서스펜스 복수극이다. 일그러진 욕망이 복수의 원천이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자들의 연대와 복수가 펼쳐졌다.
<SKY 캐슬>과 <펜트하우스>의 교집합에 수저사회가 존재한다. 수저사회는 수저계급론으로도 불린다. 사회 계급을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구분한다. 부모의 재산이 수저의 색깔을 결정짓는다. <SKY 캐슬>과 <펜트하우스>는 금수저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집착과 흙수저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의 자화상이다.
SKY 캐슬의 유현미 작가는 2019년 9월 5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아드라마콘퍼런스에서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고픈 부모의 욕망은 그 어떤 욕망보다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아주 생생한 욕망이다. 입시 컨설턴트 역할이 압도적으로 커진 데다가 금수저 전형으로 불릴 만큼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면 큰 반향을 일으키리란 생각이 들었다”며 드라마 탄생 배경을 밝힌 바 있다.
<SKY 캐슬>과 <펜트하우스>의 소재로 사용됐듯이 이제 대한민국은 학벌사회를 넘어 수저사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른바 수저공화국 대한민국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수저사회 개념 주목
전문가들에 따르면 수저사회, 수저계급론은 2010년대 중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5년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낙성대경제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논문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에 따르면 전체 자산 형성에서 상속·증여의 기여 비중이 1980년대 연 평균 27.0%에서 2000년대 42.0%로 대폭 확대됐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 비율도 1980년대 연평균 5.0%에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8.2%로 증가했다.
또한 김 교수가 다른 논문에서 국세청의 상속세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3년 기준 자산 상위 10%의 보유 자산은 전체의 66.4%였다. 하위 50%의 자산비율은 1.9%였다. 특히 상위 10%의 자산비율은 매년 높아졌다. 하지만 하위 50%의 자산비율은 매년 낮아졌다.
김 교수의 논문 결과를 종합하면 개인의 자산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상속 자산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얻은 자산의 가치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이에 김 교수는 “저축보다 부의 이전이 더 중요해지고, 그렇게 축적된 부의 불평등이 높다면 그 사회는 능력주의에 입각해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수저사회 등장은 시대 변화와 맞물린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4년제 대학 졸업=취업’ 공식이 성립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따라서 4년제 대학 졸업 자체가 비교우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점차 증가했다. 자연스레 4년제 대학 졸업장의 비교우위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일자리가 대폭 감소했다. 4년제 대학 졸업장의 비교우위 가치가 하락과 일자리 감소는 스펙 경쟁으로 이어졌다. 스펙 경쟁은 ‘명문 초·중·고→명문대→대기업’으로 이어지는 新공식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부모의 경제력이 스펙 경쟁의 승자를 결정짓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를 넘어 2010년대로 접어들며 더욱 고착화됐다.
2030세대에 드리워진 수저사회의 그림자
2010년대 중반 수저사회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한 뒤 시간이 흐를수록 대한민국에서 수저사회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30세대에게 수저사회의 그림자가 짙다.
먼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정기간행물 <보건사회연구> 2018년 12월호에 실린 ‘청년층의 주관적 계층의식과 계층이동 가능성 영향요인 변화 분석(저자: 이용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 부연구위원)’ 주제의 연구보고서를 보자.
보고서는 통계청의 사회조사 2013년과 2017년 자료를 활용, 30세 미만 청년층의 계층이동 가능성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2013년에는 53%의 청년이 자신의 계층이동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봤지만, 2017년 조사에서는 38%로 감소했다. 또한 소득 월 700만원 이상 가구의 청년층이 100만원 미만 가구의 청년층보다 계층의식이 한 단계 높아질 가능성은 2013년 5.14배에서 2017년 8.22배로 크게 높아졌다.
이용관 부연구위원은 “청년층의 주관적 계층의식은 개인과 가구(부모)의 특성뿐만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회·문화 자원의 크기와 활동에도 영향을 받으며 소득과 거주형태 등 경제적 자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며 “청년층(가구소득이 낮은 청년층)의 계층이동 가능성은 낮아지고, 이에 대한 가구(부모)의 소득과 자산의 영향력은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2018년 성인남녀 1336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인남녀 90.3%가 ‘씁쓸하지만 수저계급론은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답했다.
앞서 2016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동일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4.9%가 ‘현실’이라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5.4%P 가량 수치가 증가했다. 불과 9.7%만이 ‘수저계급론은 만들어낸 말일 뿐’이라며 부인했다.
수저계급론에 대한 인식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설문 참여 성인남녀 1336명에게 ‘우리 사회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 결과 △경제적 뒷받침 및 부모의 재력(37.1%)이 1위를 차지했다. 2위 개인의 역량(18.1%)과 거의 더블스코어다. 다음으로 △인맥 및 대인관계 능력(11.5%) △본인의 성실성(10.4%) △학벌 및 출신학교(8.3%)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러한 설문결과는 2년이 지난 후에도 이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비교 분석하고자 30세와 60세 각각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경제정책정보지 <나라경제> 2020년 12월호에 설문결과를 게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30세는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집안의 배경’(30.2%)을 가장 먼저 꼽았다. 다음으로는 ‘재능’(23.5%), ‘인맥’(12.1%) 순이었다. 반면 60세는 ‘재능’(23.7%), ‘집안의 배경’(19.1%), ‘인맥’(17.6%) 순으로 응답했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30세의 42.8%가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했다. ‘가능성이 높다’(21.4%) 응답 비율의 정확히 두 배 차이다. 60세는 ‘가능성이 높다’(32.0%) 응답이 ‘가능성이 낮다’(31.4%) 응답보다 소폭 높았다.
김소희 KDI 여론분석팀 연구원은 “30세는 ‘집안의 배경’을, 60세는 ‘재능’을 (성공 요인으로) 가장 중요시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노력=성공’이라는 등식이 있었지만 점점 그 등식이 무너지고 있다”면서 “30세는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고, 집안의 배경이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 구조에 대한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좌절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