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범죄 배경엔 청소년의 정체성 위기...파편화된 사회구조가 소년범 늘려
‘학투’ 가해자가 피해자 위한 플랜 제시해야
범죄자 낙인 청소년, 성인 흉악범으로 자란다
피해자 회복에 집중하는 ‘회복적 정의’ 중요
촉법소년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최근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형사미성년자의 잔혹한 범죄들이 우리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면서다. 이에 범법행위를 저질러도 형사책임능력이 없어 처벌받지 않는 촉법소년제도를 폐지하거나, 적용 연령 상한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촉법소년제도에 대한 각계각층의 주장을 들어본다. -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21명을 연쇄 살해한 유영철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단순 절도로 소년원에 들어갔어요. 이후 교도소를 들락날락했죠. 처음 범죄를 저지른 소년 유영철이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받았다면, 무고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재영 한국회복적정의협회(KARJ) 대표는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범죄를 저지른 소년을 엄벌하는 것으로는 교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응보적 처벌을 받는 소년범은 당면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잘못을 뉘우치는 시늉만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 대표는 한번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 소년범이 성인이 되면 흉악범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표는 “지금 스포츠계와 연예계를 휩쓸고 있는 ‘학투’ 가해자들도 마찬가지”라면서 “그들은 지금 찍소리 못하지만, 억울하다고 느끼면서 이 모든 상황과 사회를 혐오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소년범죄는 가해자 처벌이라는 ‘가해자 중심주의’가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에 방점을 둔 ‘피해자 중심주의’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뉴스포스트는 이재영 대표에게 피해자 중심의 소년범죄 해결책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경기도 남양주시 소재 ‘한국회복적정의협회’에서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해 진행했다.
피해자 회복 중심의 ‘회복적 정의’
가해자 봐주는 것 아냐
- 소년범죄 가운데 강력범죄가 늘어나는 배경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사회가 파편화되면서 청소년의 정체성이 흔들려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소속 조직이나 하는 일을 말해요. ‘나는 선생님’, ‘나는 엔지니어’, ‘나는 주부’ 이렇게요. 가정이 깨진 아이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죠. 그래서 아이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데요. 쉽게 노출되는 게 또래 그룹이고, 가출한 아이들은 가출팸입니다. 그러다 성범죄나 폭행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죠.”
-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소년범죄의 해결책으로 실천하고 있는데, 회복적 정의가 뭔가요?
“가해자 처벌보다는 피해자 회복에 방점을 둔 해결방식을 말합니다. 한국회복적정의협회와 경찰, 학교가 함께 실제 학생들을 마주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협회 전문가들과 경찰, 선생님이 동석한 자리에서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서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건데요. 경찰과 함께 하는 ‘회복적 경찰활동’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80~90% 정도가 프로그램 결과에 만족합니다.”
- 회복적 정의가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느낌인데요. 가해자를 봐주는 것 아닌가요?
“많이들 오해하는데요. 절대 봐주는 게 아닙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이 자리를 가장 불편해합니다. 차라리 모르는 소년부 판사 앞에 가서 죄송하다고 연발하는 건 그 친구들 잘해요. 가해 청소년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게 자기 잘못을 직면하는 자리죠. 그래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은 강력하면서도 피해자 중심의 처벌이라고 봅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어머니·아내·아들 잃은 고정원 씨
“유영철 소년범 때 회복적 정의 접했다면, 내 가족 살아있지 않았을까...”
- 집단폭행·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소년범도 회복적 정의를 통한 교화가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비슷한 질문을 2017년 부산여중생 사건 때 받았어요. 여중생들이 또래 학생을 집단폭행하고 사진과 영상을 찍어 SNS에 공유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요. 여중생들을 감옥에 오래 보내냐, 짧게 보내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친구들이 가장 떨어지는 능력이 공감 능력입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괴물이 된 거죠. 소년원 가서 2년 있으면 공감 능력이 늘어날까요? 거기서 범죄성이 농후한 다른 소년범들을 만나 더 큰 범죄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자기 잘못을 스스로 인지하고 이후 피해자에게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피해 배상을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소년범에 대해 처벌보다는 교화가 우선이란 말인가요?
“소년범죄의 경중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겠죠. 사실 처벌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문제는 가해자가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이 뭔지, 사회 공동체에 끼친 해악이 뭔지를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건데요. 가해자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강제적 책임의 대상이 되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지도 않고 향후 재범 위험성도 높아집니다.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그 상황만 모면하는 소년 가해자는 성인이 되면 흉악범이 될 우려도 크죠.”
- 좀 괘씸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대표님 자녀가 또래 친구들에게 그런 몹쓸 짓을 당해도 회복적 정의를 말하실 건지.
“솔직히 저도 처음에는 피가 거꾸로 솟고 복수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만났던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의 유가족도 그랬어요. 고정원 선생님인데요. 유영철한테 어머니와 아내, 아들을 잃으셨죠. 그분도 처음엔 범인이 잡히면 그놈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고 생각했데요. 그런데 이분이 나중엔 유영철을 사형시키지 말아 달라는 탄원서를 법무부에 냈습니다. 이놈을 내 속에서 보내줘야 내가 살겠더래요. 탄원서 내고 몇 년 만에 깊은 잘 수 있었다고 해요. 이후에 사형제 폐지 운동도 하시고, 교도소에서 사형수들 대상으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도 진행하셨죠.”
- 사형수 대상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사형수들 보면 이래요. ‘이런 데까지 저희 벌레 같은 사람들 찾아와서 잘 대해주신다’고 하죠.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면 무릎 꿇고 우는 사형수들도 있습니다. 고정원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해요. ‘만약에 유영철이 초범이던 고등학생 때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접할 기회를 부여받았다면 혹시나 우리 가족이 지금 살아있지 않았을까’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멍했어요. 회복적 정의가 단순히 사회 운동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깨달았죠.”
스포츠계·연예계 학투 가해자들
진심으로 반성 안 하고 있을 것
- 최근 스포츠계와 연예계를 휩쓰는 ‘학투’ 논란, 문제는 없을까요?
“가해자들은 지금은 찍소리 못하지만 억울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이 사람들이 진짜 반성할까요? 자기를 나락에 빠뜨린 이 모든 상황과 사회를 혐오하고 있겠죠. 학교폭력 배경엔 수십 년 쌓인 폭력문화라는 구악이 있어요. 피해자가 불쏘시개 되면 마녀사냥으로 끝내버려요. 모두 가해자 처벌에만 혈안이지, 피해자의 회복을 어떻게 지원할지 관심이 없어요. 피해자 회복에 방점을 찍고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가해자가 피해자를 위해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해야죠. 잘못 인정, 사과, 재발 방지 약속, 과거 잘못에 대한 금전적 배상 등이요.”
- 촉법소년 연령 상한 조정에 부정적인 입장이실지요?
“사회에서 살인이나 강력범죄가 줄지 않는 현실은 강력범죄 발생이 형량과 유의미한 관련이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비이성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소년범이 ‘아, 이거 몇 년이었으니까 하면 안 되겠지’라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녜요. 촉법소년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로 낮추면, 12세로 낮추자는 말이 또 나올 겁니다. 문제가 툭 튀어나왔을 때 망치로 때려서 집어넣을 생각만 하지 말고 이게 왜 튀어나오는지 근본적 원인을 찾아보고 해결해야 합니다.”
피해자 회복 지원하는 ‘회복적 정의’ 시급한데...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과 표만 걱정하는 국회 아쉬워
- 소년범죄를 다루는 정부 정책과 국회 대응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국 회복적정의협회 초대를 받아서 현지에 간 적이 있는데요. 거기서 놀란 게 리버풀시 공무원이 직접 회복적 정의를 설명하면서 회복적 도시 만들기를 하고 있다고 발표를 해요. 리버풀시 공무원이 하는 말이 뭐냐면 세금 쓰는 일이어서 나선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정부는 소년범죄에 시급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외부에 위탁하고 성과 안 나오면 없애버려요. 정책에 일관성이 없죠. 국회에서 토론회하면 국회의원들이 하는 말이 참 재밌습니다. ‘좋은 말인데, 이거 표 떨어져서 안 돼요’, ‘국민들 다 사형, 처벌, 그래야 잘했다고 합니다’라고 하죠.”
- 소년범죄 관련해 사회에 제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2019년 경기 구리시에서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또래 여자아이를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 모든 언론의 논조가 ‘촉법소년이라 처벌 안 돼’였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한 걸 욕했다는 이유로 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건데요. 문제의 뿌리에는 깨진 가정이 있고,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가 있습니다. 친구들이 자존심을 건들고, 정체성을 파괴하니까, 극단적 선택을 한 거죠. 여기에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다 들어있어요. 언론과 국민 모두 소년범죄에 대해 집단적 분노 대신 집단적 애도를 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재영 한국회복적정의협회 대표 약력
現한국회복적정의협회(KARJ) 대표
現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 원장
現동북아평화교육훈련원(NARPI) 원장
前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前경기도교육청 자문위원
前서울가정법원 화해권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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