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국 주식시장 주도한 ‘동학개미’에 박탈감 느끼는 시민들
주부 “아이 ‘주식통장’도 개설 안 한 세상 물정 모르는 엄마 취급”
은행권 가계대출 1,000조 원 시대...‘영끌’, ‘빚투’ 주식시장 과열 경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주가 상승 과도...작은 충격에 급격한 조정 가능성”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염블리! 염블리! 온통 주식 얘기뿐이었어요. 주식의 ‘주’자도 모르던 형님과 사촌들이 서로 종목과 강의를 추천하며 열변을 토하더라고요.” - 40대 직장인 박모 씨

국내 주식시장 열풍은 '영끌'과 '빚투'로 개인 투자한 '동학개미'가 주도했다. (사진=Pixabay)
국내 주식시장 열풍은 '영끌'과 '빚투'로 개인 투자한 '동학개미'가 주도했다. (사진=Pixabay)

박 씨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1년 만에 만난 가족 모임이 주식 토론장을 방불케 했다고 토로했다.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전 국민 주식 열풍이 친지 간 모임의 풍경도 바꿔 놓은 것이다. ‘염블리’는 주식투자자들이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E-Biz 영업팀 부장을 ‘애정을 담아’ 부르는 별칭이다. 염승환 부장은 주식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박 씨는 이런 주식 열풍이 영 탐탁지 않다. 그는 “그간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주식 얘기만 하니 끼어들 수 없어 주객전도가 된 기분이었다”면서 “가족 모임에서 주식(株式)이 주(主)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고, ‘염블리’로 불리는 한 주식투자자를 신격화하는 친척들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고 지적했다.

최근 주식 광풍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비단 박 씨만은 아니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누가 주식투자로 꽤 큰돈을 벌었다더라’는 말을 들으면 “나만 세상 물정 모르고 뒤처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뉴스포스트는 박탈사회 2부 주제로 우리 사회 주식 열풍 현상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다.

 

 이모 씨가 태블릿으로 증권사 MTS를 실행해 종목 그래프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이모씨 제공)
 이모 씨가 태블릿으로 증권사 MTS를 실행해 종목 그래프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이모 씨 제공)

낮은 예금금리와 부동산 규제, 금리 인하 등이 주식시장 유동성 늘려


국내 주식시장 상승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를 한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이끌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외국인과 외국기관 투자자가 한국 주식시장에서 투자금을 회수하자, 그 자리를 ‘동학개미’라 불리는 국내 투자자들이 메꾼 것이다.

자신을 동학개미라고 소개한 대학생 김모 씨는 “그간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부모님이 주신 돈을 합쳐 1,500만 원 정도 투자하고 있다”면서 “부동산은 진입 장벽이 너무 높고 코인 시장은 불확실성이 큰데, 주식은 내가 공부하고 아는 만큼 수익이 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격적인 주식투자를 위해 학교를 휴학한 상태다.

지난해 3월 동학개미운동 열풍에 합류한 직장인 이모 씨는 “휴대폰으로 주식의 각 섹터별, 종목별, 뉴스 목록 등을 정리하기에는 한계를 느껴 주식용으로 사용할 태블릿을 구매했다”면서  “주식을 함께 공부하는 지인들도 주식용 노트북이나 고사양 태블릿을 장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과 같은 동학개미들의 활약으로, 지난 1월 7일 코스피는 사상 처음 종가 기준 3,000선 고지를 넘었다. 국내 주식시장 과열은 현재진행형이다. 동학개미들이 주도한 주식시장 상승과 함께, 낮은 예금금리와 각종 부동산 규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와 통화 공급 등이 시장의 유동성을 주식으로 계속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두 차례에 걸쳐 내렸다. 유동성을 늘려 코로나19로 무너진 소비·투자 심리를 회복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한국은행 금통위는 3월(1.25% → 0.75%)과 5월(0.75% → 0.5%)에 기준금리를 낮췄다.

하지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코스피가 유동성 과잉으로 3천 고지를 넘어서자, 국내 주식시장 과열에 경고하고 나섰다. 국내 주식시장이 실물경기나 소득 여건 대비 상승률이 과도하게 높다는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월 15일 “주요국의 통화 정책이 좀 바뀐다든가 백신의 공급에 따라서 차질이 생긴다든가 이런 충격이 있다면, 얼마든지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가 바뀌면서 주가가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주가 상승세가 과속하게 되면 작은 충격에도 급격한 조정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의 경고 이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25일 추가 인하 없이 기준금리를 연 0.5%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개의를 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금융위는 기준금리를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개의를 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금융위는 기준금리를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사진=뉴시스)

영끌·빚투 투자...우려 또는 소외감 느껴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권 가계대출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생활 자금 수요와 주식·부동산투자를 위한 ‘영끌’과 ‘빚투’ 수요가 겹친 영향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시중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03조 1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세자금 대출 등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733조 3,000억원,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 잔액이 268조 9,000억 원이다.

문제는 대출 금리도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KB국민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은 지난 11일 기준으로 연 2.61%∼3.68% 수준의 신용대출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1%대 신용대출 금리가 등장했던 지난해 7월 말 1.99%∼3.51%와 비교했을 때 하한이 0.62% 포인트 높아졌다. 1,000조 원 규모 가계대출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 셈이다.

한국은행 등 금융권의 경고와 함께, 연초부터 이어진 국내 주식 열풍을 비판적으로 보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내 제조업계 대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모 부장은 “최근 영끌이나 빚투를 해서 주식에서 돈 좀 벌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면서 “개인적으로 주식을 국가가 만든 합법적인 도박장으로 보기 때문에 최근 주식 열풍을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금리가 인상되면 빚내서 주식 산 개인 투자자들만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40대 전업주부인 한모 씨는 “지인들이 아이 주식통장을 개설했냐 묻길래 그게 뭐냐고 답했더니 ‘이렇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다 있나’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라”면서 “50년 전 삼성전자의 주가가 현재 몇 배가 뛰었는지 아냐며 남들 다하는 재태크에 뒤처지면 안된다고 훈계를 들어 마치 무능력한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편으론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든다”고 했다.

주식으로 친척 간 사이가 불편해진 사례도 있었다. 퇴직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60대 김모 씨는 “남편이 주식을 오랫동안 해왔고 제법 잘하는 편이어서 작년에 꽤 벌었다”면서 “은퇴 후 목돈이 들어와 좋지만, 그걸 친척들한테 그렇게 말하고 다니니 누가 좋게 보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큰숙모는 자영업으로 힘들고, 누구 집 자식들은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 와중에 만나면 주식 자랑뿐이니 옆에서 식은땀이 흐른다”면서 “하필 남편이 추천한 종목을 산 친척 중에 손해를 보게 된 분이 있어, 왕래가 불편하게 됐다”고 말했다. C 씨는 “그 후 남에게 절대 주식을 추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토로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