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고통에 기쁨 느끼는 ‘샤덴프로이데’ 심리가 ‘박탈감’ 유발
韓 50·70년대 ‘생존 분노’·‘발전 분노’ 시대 거쳐 ‘경쟁 분노’ 시대로
‘경쟁 분노’ 사회 졸업하고 ‘지금 여기’ 집중해야...‘타인’ 말고 ‘자신’ 봐야
무너진 신뢰 회복 위해 정부의 공정하고 신속한 정보 공개 중요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경쟁 분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불붙이고 LH 투기 사태에서 폭발한 불공정에 대한 분노예요. 1950년대 ‘생존 분노’와 1970년대 ‘발전 분노’가 한국 사회발전을 이끈 긍정적인 분노였다면, 오늘날 타인을 향한 ‘경쟁 분노’는 상대적 박탈감을 양산하는 부정적인 분노입니다.”

곽금주 교수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경쟁 분노 사회'라고 진단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곽금주 교수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경쟁 분노 사회'라고 진단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28일 뉴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경쟁 분노’가 대한민국 사회를 집어삼켰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한국은 집단주의문화와 압축적 경제성장, 활발한 SNS 활동 등이 융합한 역동적 사회”라면서 “50년대와 70년대에는 분노를 동력으로 삼아 국난을 극복했지만, 최근 국민의 공정성에 대한 욕구가 좌절되면서 분노가 ‘박탈감’과 ‘한탕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본지는 서울 관악구 소재 서울대학교 곽금주 교수 연구실에서 곽 교수를 만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박탈감’의 원인과 문제점, 이를 극복할 해결책을 물었다.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해 진행했다.

집단주의문화와 압축적 경제성장, 활발한 SNS 활동이 한국 사회 박탈감의 배경이라고 말하는 곽 교수.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집단주의문화와 압축적 경제성장, 활발한 SNS 활동이 한국 사회 박탈감의 배경이라고 말하는 곽 교수.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 주식 열풍과 IT 개발자의 연봉 인상에 ‘박탈감’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심리학적으로 왜 이런 건가요?
“심리학에서 ‘사회비교효과’가 있는데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요. 이건 사회를 유지하는 좋은 심리적 욕구입니다. 문제는 남의 고통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좀 못된 인간 심리도 있다는 건데요.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합니다. 고통을 느끼는 타인을 보면 기쁨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입니다. ‘그 사람 잘 나가다가 망했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fMRI로 뇌를 촬영하면 기쁨을 담당하는 부위가 활성화됩니다. 마찬가지로 타인의 행복은 나의 불행입니다. 너무 잘 나가는 사람 보면 짜증 나는 거예요. (웃음)”

- 유독 한국 사회가 ‘샤덴프로이데’ 심리가 강한 것 같습니다.
“동양적 집단주의문화와 한국의 압축적 경제성장, 활발한 SNS 활동 등이 융합한 결과물입니다. 집단주의문화는 항상 다른 사람을 의식해요. ‘주식으로 돈 벌었나보다, 개발자 연봉이 올랐다고 하네, 쟤네는 뭐지’ 이렇게요. 또 우리나라는 영국이 150~200년, 미국이 100~150년, 일본이 90년 걸린 경제성장 과정을 45년으로 압축했습니다. 그 부작용으로 투기 심리가 강해졌어요.
여기에 한국은 리트윗 속도가 세계 평균보다 1/10 정도 빨라요. 여러 지표에서 세계에서 SNS 활동이 가장 활발한 게 증명되죠. 이렇게 활발한 SNS 활동으로 타인의 삶을 언제든 볼 수 있는 것도 박탈감을 늘리는 원인입니다. 누가 주식으로, 비트코인으로 돈 벌었다고 하면 현혹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 SNS 활동을 줄이면 ‘박탈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까요?
“물론 SNS 활동을 줄이면 개인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겠지만, 또 완전히 끊으면 안 돼요.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과 공감하는 삶을 위해선 항상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단절되면 세상 물정도 모르고 따돌림당할 수도 있습니다. (웃음) ‘야 요즘 펜트하우스 뜨던데 알아?’했는데, ‘저 바빠서 드라마 못 봅니다’라고 하면, ‘곽 교수 좀 재수 없다’하겠죠. (웃음) 같이 흥분해서 ‘주단태 혼 좀 내야 해’라고 공감하려면 드라마도 보고 SNS도 좀 해야 합니다. 다만 적당한 선을 지키는 조절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죠.”

곽 교수는 한국 사회에 불공정과 박탈감이 만연하게 된 분기점으로 조국 전 장관 사태를 지적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곽 교수는 한국 사회에 불공정과 박탈감이 만연하게 된 분기점으로 조국 전 장관 사태를 지적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 LH 투기 사태는 ‘박탈감’에 더해 ‘공정성’에 대한 분노도 컸다고 보입니다. 어떻게 분석하시지.
“두 가지 다 문제였다고 봅니다. LH 직원들이 갖고 있는 내부 정보를 갖고 권력을 휘두른 거예요. ‘정보의 갑질’이죠. 아마 수십 년 동안 이런 정보의 갑질을 해왔을 텐데, 오늘날 문제가 되는 건 공정성에 대한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에요. 저는 공정성에 대한 욕구의 분기점이 조국 전 장관 사태 때라고 봐요. 조국 교수와 개인적으로 친하지는 않지만 좋아했었어요. 조국 교수가 서울대 교수들은 폴리페서 하지 말자고 제안했을 때, 거기 서명도 했었죠. 그런데 나중에 민정수석도 하고 법무부 장관도 하고. 뭐 그것도 좋아요. 그런데 입시 비리 의혹은 큰 문제입니다.”

- 입시 비리 관련해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만.
”서울대 교수들 분노가 상당했어요. 교수들은 다 알아요. ‘우리가 바보네, 우리는 왜 그렇게 안 했어?’ 이런 이야기하죠. 서울대 교수 자녀들이 서울대 오는 비율이 엄청 낮아요. (웃음) 권한을 안 쓴 거죠. 자기 연구실에 자녀들 넣거나, 아니면 다른 교수에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됩니다. 그런데 절대 안 해요. ‘제 아이가 심리학 배우고 싶은데, 곽 교수님 연구실에서 인턴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하면 ‘안 됩니다’가 답입니다. 공정에 대한 분노가 우리 세대가 이 정도인데, 청년 세대는 박탈감이 더 심하죠. 한국 사회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게 입시와 군대인데, 건드려 버린 거죠.”

- 우리 사회 ‘박탈감’ 기저엔 ‘분노’가 있다는 말인가요?
“저는 우리나라 사회 발전사를 ‘분노’로 분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1950년대는 ‘생존 분노’였어요. 6.25 전쟁에 대한 분노, 그래서 전쟁통에 살아남기 위해 분노라는 에너지를 이용했습니다. 1970년대는 ‘발전 분노’ 시기였어요. ‘우리나라만 왜 이렇게 못 살지’, ‘왜 우리가 필리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지’라는 데 대한 분노였죠. 이 분노 에너지를 경제발전에 집중했습니다. 앞선 두 분노는 긍정적인 분노인데요. 문제는 요즘 우리 사회의 ‘경쟁 분노’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타인에 대한 분노로 흐르는 거죠. ‘1등 해야 해’, ‘명문대 가야 해’, ‘삼성 입사해야 해’, ‘고시 붙어야 해’ 이런 데 대한 분노예요.”

- 불공정한 사회와 박탈감, 분노가 청년들을 ‘한탕주의’로 몰아간다고 봐도 될지요?
“요즘은 서울대 학생들도 4학년 2학기에 휴학해요. 취업이 안 돼서요. 공무원 시험이나 자격증 준비합니다. 취업 겨우 해도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다, 무급 휴직이다, 이러고 있잖아요? ‘야, 취업 준비나 직장생활보다 그냥 한탕으로 가자’ 이게 너무 많아요. 주변에 대한항공 취직했다가 퇴사하고 사법고시 3년 준비했던 29살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사법고시가 폐지돼서 결혼하고 애 낳고 기르고 있었죠. 동기들 사법고시 붙어서 로펌 다닐 때 너무 답답했데요. 그런데 요즘 법조인 친구들이 오히려 이 친구를 부러워해요. 주식 투자가 대박이 나서요. (웃음) 변호사 돼 봤자 맨날 바쁘고 가족도 못 챙기고 돈도 별로 못 버는데, 이 친구는 육아도 열심히 하면서 주식으로 큰돈 버니까.”

- ‘경쟁 분노’ 사회가 계속된다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경쟁 분노’ 상태가 이어지면 ‘심리적 공허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사회에서 우울증을 앓는 구성원들이 증가하죠.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요. 이렇게 분노를 내적으로 억압하면 우울증이 되는데, 외적으로 표출하면 이게 범죄가 됩니다. 뜬금없이 화내고 갑질하고 때리고. 최근 우리 사회에 아동학대부터 묻지마 범죄, 스토킹 범죄 등 끔찍한 사건사고가 늘어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세 모녀 살해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도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반사회적인 폭력성만 있었죠. 벌써 분노로 사회 분열이 시작됐어요. 성별로, 세대별로, 지역별로, 정치신념별로.”

'경쟁 분노 사회'를 극복할 방안으로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 게슈탈트적 사고방식을 주문한 곽 교수.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경쟁 분노 사회'를 극복할 방안으로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는 게슈탈트적 사고방식을 주문한 곽 교수.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 우리 사회가 ‘경쟁 분노’ 사회를 넘어 성숙한 사회로 거듭날 방안을 제언하신다면.
“외부로 향한 분노 에너지를 자기 자신으로 향해야 합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생각해야 해요. 게슈탈트(Gestalt) 사고방식이 필요한데요. 내가 중요하고, 지금-여기 있는 현재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제보다 행복한 내가 돼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볼 시간도 없어야 해요. 순간순간 새롭게 내 행복을 만드는 유기체적 삶을 사는 거죠.
또 인간의 욕구 가운데 하나가 원인을 찾는 거예요. 어떤 사건에 대한 정보가 신속하지 않으면 가짜 뉴스가 막 돌아요. 코로나19 백신도 그래서 난리죠. 국민이 백신을 맞아야 하는 당위성을 알고 안전성을 둘러싼 가짜 뉴스를 없애려면 정부가 백신 사안마다 신속한 브리핑을 해야 합니다. ‘경쟁 분노’ 사회를 졸업하기 위해선 정부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진정성을 갖고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봅니다.”


※곽금주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한국인간발달학회 회장
한국발달심리학회 회장
한국심리학회 부회장
미국 국립보건연구소 겸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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