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혜선 기자] 점점 더 넓고, 교묘하고, 잔인해진다. 미성년자 성착취 통로는 오래전 ‘티켓다방’에서 인터넷 채팅으로, 랜덤 채팅에서 SNS까지 스며들었다. 이제는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한 수사와 법개정으로는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의 말이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 (사진=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지난 3일 조 대표를 만나 랜덤채팅 사각지대에 내몰린 청소년들의 실상과 그 해결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물었다. 조 대표는 실제 센터로 성착취 상담을 해오는 청소년들은 랜덤채팅 등 어플을 통한 범죄 피해자가 ‘100%’라고 했다.

“거의 대부분이죠. 이미 2017년부터 랜덤채팅 등으로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해 동영상을 보내도록 유도하고, 그걸 유포한다고 협박해 성폭행·성매매 하는 등 수법이 아주 유행했어요. 지금은요? 완전히 연동돼 있어요. 어플을 통해 만나도 페이스북, 라인, 카카오톡 등 각종 SNS로 대화방을 옮기기도 하고 게임 채팅에서도 접근하죠.”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성범죄는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타겟’이 된다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조 대표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점점 성범죄 피해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며 “랜덤채팅 관련 성범죄는 10대 아이들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범죄”라고 강조했다. 아직 사회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랜덤채팅을 통해 접근하는 어른들의 꼬임에 “너무 쉽게 속는다”고 했다. 개인 휴대폰 속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특성 탓에 부모님이 문제를 인지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범죄에 노출된다.

조 대표는 랜덤채팅 어플을 ‘사이버 미아리’라고 표현했다. 그는 “처음엔 그냥 인터넷으로 문자, 이모티콘 등이나 주고받는 정도였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진이나 영상이 들어왔다”며 “이런 사건은 익명을 기반으로 해 용의자 특정도 힘들고, 대화 데이터가 저장되지 않아 증거를 남기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여성가족부에서 랜덤채팅 어플을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며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조 대표는 “예전부터 랜덤채팅 모니터링을 해오고 있는데 규제 이후 청소년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도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다 이동했다고 본다. 수시로 성적인 주제의 대화방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별생각 없이 오픈채팅방에 들어가도, 범죄의 손길은 다가온다. 조 대표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아이들이 단순히 심심해서 대화를 위해 들어간 오픈채팅에서 ‘가만히 있어도’ 개인 연락이 날아온다”며 “대놓고 돈을 줄테니 성매매를 하자는 사람도 있고, 대화를 조금 하다가 사진을 보내주면 10만원, 20만원, 50만원까지 준다는 사람도 있다. 성인 같으면 그걸 누가 믿느냐 하겠지만 아이들은 믿는다. 온갖 수단을 써서 아이들을 유인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정말로, 너무, 어려요. 애들이 다 알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사이버 안전망이 허술하니까 아이들은 범죄자들에게 쉽게 낚여요. 채팅 몇 번, 사진 보내고. 그 결과는 너무 참혹해요.”

“애들 탓 아니에요…사이버 안전망 만들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 대표는 아이들을 ‘완전한 피해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 부모님이 (성착취 피해를) 아시게 되면 충격이 크다. 부모가 볼 때는 아이들을 피해자로 인식하지 않고 ‘네가 뭔가 잘못돼서 당한 게 아니냐’고 본다”며 “사건이 벌어지면 부모자식 간 사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고 참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김혜선 기자)

부모님께 범죄 사실이 알려질까 신고를 포기하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조 대표는 “미성년자들은 법적 권한을 부모님이 대리하고 계시기 때문에 완전히 모를 수 없다”고 말했다. 사건이 진행되면 상대방 측 변호사가 합의를 시도하려 부모님에게 연락하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처음에 경찰에 협조를 요청해 부모님이 아시는 시기를 늦출 수는 있지만, 나중에는 아시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는 “아동청소년에게 성인과 동등한 책임을 물게 하면 아이가 숨어버린다. 그럼 성범죄자들이 잡히지 않게 된다”며 “첫번째로 아동청소년을 무조건 ‘피해자’로 규정하고 성인만 처벌해야 한다. 아이들을 탓하지 않고 완전한 피해자로 보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앞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확장성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이제는 생활과 디지털을 빼놓고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지금은 비교적 어린 세대가 피해자가 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 층이 확대될 것”이라며 “현실세계 위주로 수사가 진행되고 법이 만들어지는데 이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랜덤채팅 어플 등 특별한 한 매체가 중심이 된 사건은 이제 끝났다. 랜덤채팅 규제 이후 한풀 꺾였지만, 자신의 신상이 노출되지 않는 ‘안전지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본다”며 “사이버 범죄 행위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며 융합되고 진화한다. 마땅히 수사기법이나 법도 바뀌어야 하고, 우리는 그 변화의 지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정부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전담으로 하는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빅데이터 기술로 미성년자 성범죄에 쓰이는 은어나 키워드를 특정하고, 해당 키워드가 반복되면 자동적으로 수사기관에 통지가 가능 등의 기술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고 본다”며 “성착취 범죄에서 미성년자를 ‘온전한 피해자’로 보는 법안도 작년에 통과됐고, 랜덤채팅 어플 규제도 생겼다. 최근 국회에서 미성년자 성범죄 검거를 위해 위장수사를 도입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범죄가 기술적으로 교묘해지고 전문적으로 변하고 있어 어렵다. 사회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따라잡기 힘들다. 수사기법, 안전망, 법제화, 민간영역에서의 피해자보호 시스템 등 전 사회 구성원이 다같이 가야 미성년자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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