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 동포가 본 글로벌 한글 바람
해외서 동호회, 언어 교환 활동 활성화...‘한글 공부’ 열풍
기존 한류 음악·드라마에서 옷·음식·한국어 학습까지 
외국인 유학생 “한국어 생생하게 전달 가능해 매력적” 

본지는 지난 7월부터 ‘쉬운 우리말 공공문서’ 기획 기사로 한글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왔다. 모든 국민이 우리말 공공문서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행정업무에서 널리 쓰이는 일본어식 표현, 한자 등을 지적하고 쉬운 우리말로 수정하도록 권고했다. 아무리 세계 언어 석학들이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멀리하면 점점 잊히지기 때문이다.

워싱턴타임스 서울특파원으로 한국에서 30년은 지낸 마이클 브린은 한국인조차 모르는 한국의 강점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맹률이 1%인 나라’를 꼽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부심은커녕 한글의 고마움을 잊고 산다. 한글 열풍은 유럽까지 퍼져 나가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여전히 찬밥신세다.

10월 9일 제575돌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과 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스포스트는 일상에 파고든 한글 파괴 현상 및 과제를 짚고, 한류의 축으로 자리잡은 한글에 대한 고마움과 우수성을 되새겨 본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 영국 런던에 7년째 거주하고 있는 이정민(30) 씨는 최근 친구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 도중 옆자리의 폴란드인이 한국어로 말을 걸어와 놀랐다. 그는 일행과의 사진 촬영을 부탁하며, 한국 드라마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런던 리버풀역 인근 다리에 한국 아티스트의 한옥이 전시돼있다. (사진=이정민씨 제공)
런던 리버풀역 인근 다리에 한국 아티스트의 한옥이 전시돼있다. (사진=이정민씨 제공)

이 씨는 “언어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이 한글은 굉장히 예쁘고, 한국어는 똑똑한 언어라고 얘기한 적 있다”며 “예전에는 일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한국어가 좋아서 배운다는 외국인이 늘었다”고 말했다.  

9일 ‘575돌 한글날’을 맞은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가수 BTS의 인기와 기생충, 오징어 게임과 같은 콘텐츠의 흥행에 힘입어 해외에 있는 재외 동포들은 한류 열풍을 실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 씨는 “다가오는 핼러윈데이 때 가장 인기 있는 코스튬은 오징어 게임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접하고, 한국 노래를 나보다 잘 아는 외국인이 정말 많다. 최근 백화점에 방문했을 때도 한국인이냐고 먼저 말을 건네는 BTS 팬 터키 점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런던 소호 거리 번화가에 ‘홍대포차’라는 한국 음식점이 생겼는데,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해 지나갈 때마다 긴 줄에 놀라곤 한다”고 덧붙였다. 

구글 트렌드 2020 올해의 검색어. (사진=구글트렌드 페이지 갈무리)
구글 트렌드 2020 올해의 검색어. (사진=구글 트렌드 페이지 갈무리)

구글 트렌드의 ‘전 세계 2020 올해의 검색어’를 보면 곳곳에 한국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다. 콘텐츠(Contents) 분야 5위로 ‘방탄소년단 온라인 콘서트(BTS online concert)’, 영화(Movies) 분야 1위는 기생충(Parasite), 가사 분야의 2위와 5위는 각각 방탄소년단의 ‘Savage Love’, 'Dynamite’가 차지했다. 국내에서 화제가 됐던 ‘달고나 커피(Dalgona coffee)’도 레시피(Recipes) 분야 1위에 자리 잡았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는 지난 9월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대박(Daebak)’과 ‘한류(hallyu)’ 등 한국 단어 26개 단어를 추가했다고 6일(현지시각) 밝혔다. 추가된 26개 단어들은 대부분 한국의 음식과 대중문화와 관련이 됐다. ‘치맥(chimaek)’, ‘갈비(galbi)’ 등과 함께 한국어 호칭인 ‘누나(noona)’와 ‘오빠(oppa)’ 등도 소개됐다. 

OED는 한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한류의 정점을 달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에 5년째 거주 중인 오성국(32) 씨는 “예전에는 한류라고 하면 드라마나 음악부터 떠올렸지만, 요즘은 옷과 음식, 영화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된 것 같다며”며 “자연스럽게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현지에서 한국어 관련 온·오프라인 meet-up(동호회)나 language exchange activity(언어 교환 활동)이 활성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재외 동포들은 개인적인 관심에 의한 한국어 학습 열풍이 더욱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오 씨는 “한국에서는 영어·중국어 등 국제 언어에 대한 교육열이 높은 편이지만, 이곳은 부모님이 다른 국가에서 정착한 경우가 많아 2~3개국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그 외의 경우는 따로 외국어를 배우려는 생각은 없다.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공부하는 사람의 비중이 늘어 뿌듯하면서 자랑스럽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에 6년째 거주 중인 박혜윤(43) 씨는 “인도네시아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대화하고, 자녀들에게도 동일하게 교육시킨다”며 “간단한 인사말은 한국어로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소지하고 있는 한국책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글의 문자 형태가 독특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본격적으로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늘고 있기는 하다”며 “전혀 새로운 문자에 대한 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외국인 입장에서 즐겁게, 쉽게 배울 수 있는 유튜브, 각종 온라인 학습 등 다양한 루트를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8년 한글날 기준 인스타그램에 ‘#한국어공부’가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은 13만 3,000여 개였다. 올해 한글날을 하루 앞두고 ‘#한국어공부’ 게시물은 48만 8,000건에 달한다. 3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한 것.

실제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한국에서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 중인 해외 유학생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학위 과정 외국인 유학생’ 수는 총 12만 18명으로 전년(11만 3,003명)보다 6.2%(7,015명)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10만 215명)과 비교하면 1만 9803명(19.8%) 늘어났다. 

대만에서 온 유선우(33) 씨는 “학창 시절 우연히 접한 한국 드라마로 인해 한국 문화와 한글에 관심이 생겨 7년 전 외국인 유학생으로 오게됐다”며 “한글은 표현할 수 있는 부사가 다양해 말을 재밌고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처음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시선이 많았지만,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지금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함께 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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