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 "교정에 세워진 소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이에요"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학생의 신분이란 많은 제약이 따른다. 특히 청소년을 평가하는 어른들의 시선 속에선 학생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경계가 명확하다. 교복을 입고 국가가 정한 교과서로 공부만 해라. 이것이 우리나라 학생들의 현 주소다. 국정교과서 도입, 위안부 협상, 한일협정 등 각종 파고에 학생들이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책가방 대신 피켓을 든 학생들. 이름표 대신 소녀상 배지를 단 학생들. 이들은 왜곡된 역사를 규탄하고 바로잡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고 한다. ‘공부’라는 한 우물만 파는 학생이 박수를 받는 일반적인 사회에 반기를 든 것이다.

교복을 입은 앳된 모습의 학생들의 모습이 광화문 집회 현장에 대거 눈에 띄었다. ‘소녀상 철거를 반대합니다’란 소식지를 시민들에게 나눠줄 때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쏘아붙인다. “학생들이 뭘 알고 떠드느냐? 학생답게 공부나 해” 수백 번쯤 들은 말이기에 학생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꿋꿋하게 서명을 받으며 “끌려갔던 소녀는 바로 ‘우리 자신’이에요”라고 합창한다. 소녀상 건립 운동의 주인공 이화여자고등학교(이하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 얘기다. 16살의 여고생들이 이토록 당당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건 어떤 확신에서였을까. <뉴스포스트>는 ‘주먹도끼’의 동아리원을 지난 15일 이화여고에서 만났다.

위안부 문제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서
배지 판매·기금 모금으로 4천만원 모아
‘100개 학교에 소녀상 건립’ 운동 진행

 

왼쪽부터 주먹도끼 부원 이지이(회계부장), 서가영(부회장), 김다은(답사부장), 박진희(교류부장), 김로권(회장)과 지도교사 성환철 선생님(사진=우승민 기자)

전국 방방곡곡, 100개 학교 벽을 넘다

공교롭게도 ‘주먹도끼’ 학생들은 유관순 열사(이화학당을 졸업)의 후배다. 16살의 나이에 3.1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후배들이 소녀상 건립 운동으로 이어간 셈이다. 학생들은 소녀상은 건립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150개 학교의 담을 넘었다. 그 결과 전국 35개 학교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기리는 ‘소녀상’들이 세워졌다. 나아가 소녀상 건립 운동은 또래 학생들의 역사의식을 깨우는 선순환 역할까지 하고 있다.

1999년에 결성된 주먹도끼는 이화여고 유일의 역사동아리다. 주먹도끼의 뜻은 ‘뾰족한 주먹도끼로 잘못된 역사를 찍어버리겠다’는 속 시원한 의미다. 주로 1, 2학년들 위주로 활동이 이루어지고 3학년이 되면 회원 명부에 이름만 올려놓고 공부에 전념한다. 현재 김로권(회장) 김다은(답사부장) 박진희(교류부장) 이지이(회계부장) 서가영(부회장) 학생을 비롯 20명가량이 활동 중이다.

시작은 어느 학교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역사유적답사 동아리였다. 그런데 어떻게 고등학교 소녀상 건립 운동을 시작하게 됐을까.

(김로권) “소녀상 건립 운동은 16기, 17기 선배 언니들이 시작했다.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광복 70주년을 맞아 위안부 피해 할머니께도 진정한 ‘광복’을 이뤄 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징용되었을 때와 비슷한 나이인 우리가 소녀상을 세우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모아 2015년 11월 3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게 됐다”

이 소녀상의 건립부터 기금 마련, 부지 선정까지 전 과정을 주먹도끼 학생들이 주도했다. 어려움에 부딪힌 적도 있었지만 학생들은 어른들의 도움을 구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의 힘만으로 목표를 이루어나감으로써 활동의 취지인 ‘학생들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먹도끼’ 지도교사인 성환철 교사는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음을 회상했다.

(성환철) “당초 소녀상 설치 장소로 근대 교육의 발상지인 서울 중구 정동길을 염두에 뒀었다.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 장소를 모색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유지, 공유지 등 알 수 없는 영역의 문제들이 발목을 잡았다. 소녀상 건립 시점 3달 전까지 부지 확보를 못해 건립을 내년으로 연기하는 문제까지 고민하던 중, 다행히도 작은형제회가 운영하는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부지를 제공해 주기로 했다. 여러 통의 손편지를 보내며 애원한 학생들이 안쓰러웠는 지 결국 허락해 주셨다. 알고 보니 소녀상이 세워진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은 원래 성모상을 세울 자리였다고 한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앞 평화의 소녀상 손에 작은 사탕이 쥐어져 있다.(사진=우승민 기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은 지역의 명소가 됐다.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이 소녀상을 반겨주니 영하의 날씨에도 소녀상은 외롭지 않을 터. 때마침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이 소녀상의 손에 사탕을 쥐어주곤 수줍게 웃는다.

(성환철) “소녀상을 건립하려면 3000만원이 필요하다. 300만원이 모였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님을 무작정 찾아갔다. 취지를 설명했더니 모금 금액이 어찌되든 제작해주겠다고 하시더라. 당시 작가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작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이후 학생과 선생님들이 모금한 1000만원과 소녀상 배지를 팔아 거둔 수익 700만원 등 총 4000만원이 모였다. 하지만 작가님은 1000만원만 받으셨고 활동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기부했다”

 

소녀상을 일본에?

소녀상 건립 한달 후 한일 위안부 합의가 단행되면서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거듭 요구했다. 주먹도끼는 이에 맞서 ‘굴복하지 않고 계속 소녀상을 세워나가자’라는 메시지를 담아 전국의 고등학교 학생회에 동참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비용과 장소 등의 문제를 고려해 50만원 상당의 ‘30cm·30cm’ 규격 작은 소녀상을 학교에 세우자는 내용이다. 일명 ‘고등학생이 함께 만드는 평화의 소녀상 프로젝트’다.

(서가영) “전교생 중 500명이 1000원씩을 모으면 가능한 프로젝트다. 학교의 도서관, 복도, 현관과 같이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에 세우자는 취지다. 얼마전 강원도 팔렬고등학교에 35호 소녀상이 세워졌다. 전교 학생수가 49명밖에 안되는 작은 학교지만 모금을 위해 학생들이 텃밭 농작물을 수확해 파는 등 아름다운 열정을 보여줬던 곳이다. 소녀상 100개 건립 되는 그날까지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추진하겠다”

(이지이) “주변에서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준다. 위안부 수요 집회에 참석했을 때 아주머니들이 ‘학생들, 그거 알아요? 학생들 정말 예쁜 거’라고 말해주셨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학생들 같은 젊은이들이 있어 정말 힘이 된다. 고맙다’며 안아주시더라. 무엇보다 학교 친구들은 ‘역시 주먹도끼야’라고 응원해 줄 때 가장 든든하다. 부모님도 처음에는 걱정 어린 목소리도 ‘또 동아리 활동가니?’라고 물었지만 지금은 많이 자랑스러워 하신다”

2년 전 주먹도끼는 ‘소녀상 선물 리스트’를 계획을 밝힌 적이 있다. 소녀상 100개를 세우면 대통령을 비롯한 황교안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에 소녀상을 선물하겠다는 것. 아직도 유효한지, 올해 계획은 무엇인지 물었다.

(김로권) “사실은 포부에 가득 차 있을 때 선배들과 준비했던 막연한 계획인데 언론을 통해 알려져서 어깨가 무겁다(웃음). 우선은 소녀상 100개를 건립하는 일에 집중하고 ‘선물 프로젝트’는 그 후에 생각하고 싶다. 본말이 전도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곧 동아리 신입생 모집을 앞두고 있는데 열정 있는 학생들이 많이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주먹도끼가 유명해진 건 후배들을 위해 길을 닦아놓은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저희 또한 선배들의 정신을 잘 이어 받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싶다. 그리고 현재 4회까지 연재된 다음 스토리 펀드 ‘100개 학교에 소녀상을 건립해요’도 잘 마무리하고 싶다”

주먹도끼는 앞으로 소녀상의 일본 진출을 구상중이다. 교환학생 자매결연을 한 일본 야마나시 에이와 여고와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앞장서고 있는 오카모토 유카(岡本有佳)학자 등과 함께 역사의 진실을 알릴 계획이다. 일본 학생들과는 2015년 한차례 채팅을 통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위안부 문제를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고. ‘소녀상을 사랑한 일본인과 손잡다’는 제목의 다음 스토리 펀드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수요일마다 진행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 1억인 서명운동>은 주로 프란치스코 회관 앞이나 정동길 분수대에서 이루어진다.(사진=우승민 기자)

역사는 우리 모두의 몫

16살 학생들이 ‘소녀상 건립’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한지 2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하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유명인이 돼버렸다. 박수를 치고 격려해주는 만큼 다른 쪽에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너희들이 소녀상 문제를 알렸으니 이번에는 독도 문제에 나서보는 것이 어때?” 라는 오지랖어린 시선도 존재한다. 학생들은 이 모든 무게를 견뎌야만 했다.

(김다은) “선배들의 얘긴데 한 번은 아저씨가 다가와 ‘다 끝난 일을 가지고 왜 아직도 시끄럽게 구냐’며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때 다행히도 한 할머니가 아저씨에게 다가가 ‘학생들이 잘 하고 있는데 왜 당신이 행패를 부리냐’며 꾸짖었다고 한다. ‘소녀상 같은 거 니네집에나 세워라’,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 났다’ 식의 악성댓글이 달린 적도 있다”

(성환철) “우리사회는 고등학교 아이들이 ‘탁’하고 시선에 들어오면 대단히 많이 주목한다. 그런 관심에 직면하는 것은 단지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다. 학생들은 유명해 지길 바란 적도 없는데 어느새 공인 비슷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 평범한 학생들일 뿐인데 ‘주먹도끼면서 그럴 수가 있냐’식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물론 악의적인 사람보다는 박수를 건네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학생들이 혹여나 위험한 상황에 놓이고 상처를 받을까 늘 걱정된다”

주먹도끼 학생들에게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역사에 대해 의기소침했던 우리들의 과거를 만회하려는 방어적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 대면한 수많은 부끄러움 속에도 이렇게 당당한 학생들이 있다는 걸 주장하고 싶어 어린 학생들을 자주 들먹이는 걸지도.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학생들은 타민족을 약탈하는 이웃나라의 야심과 이를 방관해온 어른들의 무심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렸다. 유명해지기를 꿈꾼 적은 없는데 악성댓글 때문에 울고 동아리 활동에 시간을 뺏겨 성적이 떨어질 때 두 번 울었다고.

국가의 무기력으로 인해 어린 소녀를 서대문 형무소에 싸늘한 죽음에 이르게 한 지난 참극이 오버랩 된다. 역사를 알고 바로잡는 것이 대한민국이 지닌 아픔을 지우는 가장 빠른 길이다. 역사 속 아픔을 희망으로 바꾸는 일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할 몫이다.

 

(사진=우승민 기자)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이지이 학생(회계부장)이 “지나가는 할머니가 좋은 일에 쓰라며 만원을 쥐어준 적도 있다”고 자랑했다. “뭐야, 그 만원 어디 있어?” 되묻는 학생들의 눈빛에 장난이 가득했다. “회비로 넣어 놨지” 답하자 “모금에 넣어야지” 장난 섞인 타박이 돌아온다. “우선 회비로 넣었다고” 회계부장의 억울한 항변(?)에 “어떻게 회계인줄 알고 너한테 만원을 주셨지” 학생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2년이 지났네. 시간이 지나니 이 또한 역사가 됐다” 성환철 선생님의 얘기에 모두의 눈빛이 촉촉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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