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 안의 날개옷

되풀이 되는 꿈 때문에 캐리어 안에 든 내 날개옷을 생각해 냈던 건 아니다.

남편은 4일간이나 집을 비웠다. 난 그 4일 내내 앓았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꺾어진 포플러나무위에 매달아 놓은 새장을 끌러 내리다 빗길에 넘어진 것이다.

다친 건 허리인데 온 몸이 뒤틀리게 아팠다. 남편은 병원을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어머니집으로 떠났다. 그리고 매년 그랬듯 4일간의 여름휴가를 그곳에서 보냈다.

시어머니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자신의 아들과 단둘이 보내는 것이었다. 남편이 돌아오는 날 다행스럽게 허리의 통증은 많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그가 좋아하는 꽃게탕을 준비해둘 수 있었다. 

남편은 꽃게탕을 먹기 전에 서랍에 넣어 둔 통장을 확인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가 입술 끝을 내려뜨리자 내 얼굴은 당혹감으로 붉어졌다.

“인출했나?”

“당신이 병원에 가보라고 했잖아요.”

붉어진 얼굴에 부드럽게 응수할 답을 찾을 순 없었다.

“같이 벌어도 시원찮은 판에 맨 날 아픈 칠은 젠장....끄응.”

못마땅한 신음 소리를 내며 남편은 통장을 소파에 내던졌다. 순간 부끄러워졌다. 맨 날 아픈 칠을 한다는 건 순 그의 억지지만 그의 친구들 아내처럼 그리고 그의 사촌과, 그들의 아내들처럼 돈을 벌어들이지 못한다는 건 사실이었으니.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대신 돌아서 프라이팬을 렌지위에 올렸다. 그리고 잘 달구어진 팬 위에 식용유를 쏟아 붓고 계란 두개를 떨어뜨려 프라이를 했다.

다행스럽게 남편은 주저 없이 계란프라이를 집어 들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남편의 혈관 벽으로 노랗고 끈끈한 액체가 이물감 없이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난 또다시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

남편은 종종 그렇게 내게 식용유가 들씌워진 계란프라이를 하게 했다. 수족관의 시크리트 한 마리가 멍청한 나로 인해 죽었다고 이를 드러냈을 때도, 그리고 그의 기분에 따라 안방에서 거실에서 내몰렸을 때도, 내 영역인줄만 알았던 부엌마저 내 영역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을 때도. 그러고 보면 어린 학생들의 집단에서, 그리고 외부의 특정집단에서만 왕따가 있는 건 아니었다.

왕따는 분명 집안에서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그를 비난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난 남편과 거리를 좁힐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미묘한 그런 것. 차갑고도 가파른 암벽. 남편과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서는 고딕체의 차가움 같은 게 늘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결속된 자신들 이외는 그 누구의 접근도 견뎌내지 못하게 하는 그런 게 있었다. 언제부턴가 난 그런 그들 속에서 소나무향이 물씬 풍기는 내 어릴 적 산자락들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그랬다. 남편이 계란프라이를 먹는 동안 난 하늘위로 떠있는 구름 조각을 세었고 먼 산자락 아래로 펼쳐진 푸르름을 상상했다.

 그때 우연이었을까, 무심코 새장 안에 든 카나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도 나처럼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암울한 눈빛으로, 그러다 녀석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돌려 날 건너다보았다. 

그 순간 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아찔해졌다. 녀석의 그 조그만 눈빛 안으로 울창한 밀림이 파랗게 출렁였던 것이다. 양 날개는 금방이라도 문을 박차고 날아오를 듯 부풀려졌고. 하지만 녀석은 금세 시무룩이 날개를 접고 먹이통에 부리를 박았다. 

아, 가슴이 아렸다. 쫒아가 새장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리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녀석을 덥석 들어 휙 날렸다. 

순간, 허공을 박차고 날아올라야 할 녀석의 몸이 그대로 땅으로 곤두질 쳤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지난여름 태풍은 녀석의 다리만 훑고 갔던 게 아니었다. 

녀석은 날고 싶어도 날수가 없는 상태였다. 들어 올린 왼쪽날개가 아무런 저항 없이 쑥 빠져나왔다. 마치 몸체에서 분리된 로보캅의 팔처럼. 날개옷이 생각이 난 건 그때였다.

 ‘아!, 내 날개옷.’ 언제, 넣어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캐리어 안의 내 날개옷. 잠자리의 날개보다 더 섬섬한 올올이 녀석의 다친 날개위로 하얗게 겹쳐졌다. 

곧바로 창고로 달려갔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캐리어를 찾아 열었다. 순간, 숨이 막히게 떨렸다. 난 아직도 나 그대로였던 것이다. 남편을 만난 뒤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옷이지만 내 날개옷은 전혀 빛을 바라지 않은 본연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니 난 언제든 내 본향으로 회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 발라주는 연고가 효과가 있었는지 더위가 한풀 꺾일 쯤 카나리아의 날개는 제법 힘 있게 파닥였다. 헌데도 수컷 카나리아는 여름 내내 열려있는 문을 외면했다. 

한 발만 나서면 푸른 하늘을 맘껏 날수 있는 자유가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 검푸른 아프리카가 있는데. 녀석은 눈만 말똥거릴 뿐 날아가지 않았다.

 저 밖에 무엇이 녀석을 두렵게 하는 것일까. 하긴, 나도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녀석을 차마 새장 밖으로 떠밀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뭇잎들이 누렇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추위에 민감한 카나리아가 아프리카로 날아가기엔 적당한 시기가 아니었다. 나 역시 추위는 싫었으니. 아니 날개옷을 입기에는 적당한 계절이 아니었다.

여름내 포플러 나무 위에 묶였던 새장이 다시 집안으로 들어오고 창밖으로 가을색이 완연해지자. 난 소녀 하이디가 앓는 향수병보다 더 깊은 그리움으로 가을 들녘이 보고 싶어졌다.

 좀 더 솔직해지면, 난 그곳이 그리워졌다. 시디신 사과를 베어 문 그것처럼 입안에 잔뜩 침이 고이게 그곳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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