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휘는 ‘인식어’와 ‘활용어’로 구분...폭넓은 독서가 중요
- 개인이 구사하는 언어나 표현력은 각자 인격의 바로미터
- 능력의 수준은 어휘력, 곧 단어의 유창성이 중요한 역할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의 유창한 영어가 언론과 영화팬들의 이목을 사로 잡았었다.  

정말 언어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특권이며, 사람을 가장 고귀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자기 나라말에다 외국어까지 능숙하게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지적(知的)인 지평이 넓다는 의미와 통한다. 그래서 빅토르 휴고는 “천재가 아닌 한 다른 언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기발한 생각들'(ideas)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파했다.

언어는 크게 모국어와 외국어로 대별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습득한 언어를 모국어라 하고 후천적으로 학습과정을 통해 취득된 언어를 외국어라 한다. 생득적인 모국어를 통해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어떤 표현으로든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어를 말할 때는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될 수 있어 긴장을 수반하게 된다. 물론 모국어나 외국어를 막론하고 구사할 수 있는 어휘나 표현방식에 따라 사람의 품격이 달라진다. 그래서 개인이 쓰는 언어는 각자 인격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한국 사람에게 영어는 외국어다.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그 많은 단어를 다 외워야 한다는 점이다. 모국어인 경우는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소통을 하는 데는 아무 거리낌이 없다. 설사 생경한 어휘는 모르더라도 일반적인 표현이나 생활 주변에서 접하는 대상의 명칭이나 관련 단어는 잘 안다.

하지만 외국어인 경우는 그 반대다. 오히려 격식 갖춘 어휘나 문장은 쉽게 알 수도 있지만 가장 평범한 일상의 말이 더 어려운 경우가 있다. 언어를 체험적으로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과 학습의 기억을 통해 터득한 것은 차이가 있다.  어떻게 보면 자기 나라말이 쉽다고는 하지만 국어사전을 펼쳐보면 모르는 단어가 부지기수로 많다.  그러나 모국어이기에  의사소통을 자유자재로 할 수는 있다. 

사진=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출처 Unsplash
사진=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출처 Unsplash

개인적인 경험담이다. 대학교 시절, 국어 교사 자격증 취득 과정으로 일선 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그때 수업을 하는 중에 우연히 영어에 대한 얘기가 나와 내가 영어를 좀 한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장난기로 물었다.

“선생님, 영어로 멸치를 뭐라고 해요? 그리고 채송화는요?”

당시 영자신문에 영어로 칼럼을 쓰기도 해 나름 상당한 어휘력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학생의 질문에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영어가 외국어인 입장에서 모국어라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런 어휘지만 구태여 그런 말을 익힐 이유가 없었다. 그때 그 기회로 멸치를 ‘anchovy'와 채송화가 'rose moss'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곁들여 꽁치가 'saury'나 ' mackerel pike'라는 것도 그때 배웠다.

그런데 영어 어휘 중에서 스펠이 29개나 돼 전문 기술용어가 아닌 일반어 중에서 가장 길다는 ‘floccinaucinihilipilification'라는 말이 있다. 주변의 생선과 꽃 이름은 모르면서도 이 어려운 단어인 ’훌록시노시니힐리필니희이케이션‘은 거침없이 입에서 술술 나올 정도로 외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돼 18세기 중반부터 ’무엇을 경시하거나 가치 없게 여기는 행위나 습관‘의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우리말로 하자면 ’별 것 아니야‘라는 뉘앙스로서 조롱이나 농담으로 쓰이고 있다. 실제로 이 말은 영국의 정치인들이 종종 사용해 관심을 끌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ontomology'(존재론), ‘oneiromancy'(해몽술) 등과 같이 한 번도 쓰지도, 접하지도 못하는 말은 신기하게도 머리에 입력이 돼 있다. 때로는 가장 난해한 단어는 해석이 단순해 쉽게 익히게 되지만 쉬운 말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외국인으로서는 더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렇듯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어려운 단어는 기억하면서도 정작 쉬운 일상생활의 어휘는 모르는 수가 있다. 또 나열된 개개의 단어는 아는데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외국인이라도 영어문화권에서 오랜 기간 체재하지 않는 한 비원어민에게 영어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외국어임에는 틀림없다.

사진=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출처 Unsplash
사진=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출처 Unsplash

한편 학창 때 영어공부를 위해 서양의 고전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다. 당시는 인터넷 시대가 아니어서 독서가 유일한 학습 수단이었다. 그중에서 토마스 하디의 명작 ‘테스’(원명 Tess of the D'Urbervilles)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시골처녀 테스의 아버지 이름이 뒤버필드다.

그는 시골장이 열릴 때마다 계란을 내다 팔고 돌아오는 길 주막에서 한 잔 술에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돌아오는 것을 즐기는 평범한 서민이다. 어느 날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옛 가문 있는 귀족 집안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벅찬 기분에 옛 영광을 느껴보겠다는 생각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소년을 만나자 의기양양하게 심부름을 시킨다. 빨리 자기 집에 가서 아내에게 전해 주라며 이렇게 말한다.

“···Tell em at hwome that I should like for supper well, lamb's fry if they can get it; and if they can't get that, well, chitterlings will do···" (···우리 집에 가서, 음, 양고기 좀 튀겨 저녁을 지어 놓으라고 해줘라. 그게 없으면, 어~, 순대라도 괜찮다 해라.···)

뒤버필드가 시골사람이었으니까 사투리를 써서 ‘home'을 ’hwome'로 표기했던 것 같다. ‘chitterlings'는 식용으로 먹는 돼지의 내장을 의미한다. 어쨌든 정확히 순대가 맞는지 곱창이 맞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느 한글 번역본에는 순대라고 쓰여 있었다. 물론 우리말로는 아주 쉬운 말이지만 영어로는 가장 어려웠던 단어였다.

영어 어휘는 개인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인식어’(recognition words)와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말인 ‘활용어’(active words)로 나눠진다. 개인이 인식할 수 있는 어휘는 당연히 평소 생활에서 쓰는 것보다 월등히 많다.

전문 분야 종사자일수록 인식어나 활용어의 구사력이 강하다. 그것은 그만큼 지식의 범위 또한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하버드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교양과정에서 언어능력을 키우기 위해 폭넓게 독서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논리적 사고력과 확장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지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그 학교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 진출을 해서 활동하는 내역을 추적 조사한 결과  성공한 사람일수록  언어 표현력과 기술력(記述力)이 상대적으로 뛰어났다고 한다. 이는 인간이 발휘하는 사회적 능력의 수준은 어휘력, 곧 단어의 유창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는 코리아타임스에 다년간 영문 칼럼을 기고하며 중앙일보 외 주요 언론사 해외 문화예술 교류 전담 후 예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 대표를 역임했다. <영어로 만드는 메이저리그 인생> <예술경영리더십> <문화예술리더론> <긍정으로 성공하라> <경쟁의 지혜> 등 14권을 저술했으며 문화커뮤니케이터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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