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못한다’는 솔직함이 영어권 문화에 매력 포인트로 작용
- 민감한 두 단어 ‘snobbish' 'smell'이 윤여정 언어감각을 부각
- “원어민 영어의 이성적 판단 vs 비원어민 영어의 감성적 수용”

[뉴스포스트  전문가 칼럼=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가 영화 ‘미나리’로 한국인 최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 문화커뮤니케이터 · 칼럼니스트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 · 문화커뮤니케이터 · 칼럼니스트

이에 그녀의 영어 수상소감이 더욱 이 한국인 배우의 성가를 높이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당연히 역대 처음 받은 수상이라 감사와 덕담의 소감을 전하는 것이 의례적일 수 있었다.  세계의 언론과 청중이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서다.

하지만 전문 통역사에 의존하지 않고 윤여정 배우가 직접 영어로 당당히 소통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당당했던가. 벌써부터 내년 아카데미상 진행을 맡기자는 말까지 나온다. 그녀의 재치 있는 위트에 비원어민 기준으로는 매우 능숙한 영어 실력이 전 세계의 영화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본 칼럼 시리즈를 통해 글로벌 시대 영어역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바로 이번 윤 배우의 영어 수상소감이 이를 입증했다. 만약 그가 전문 통역사를 통해 수상소감을 전했더라면 더 세련된 영어 표현이 됐을지는 모르지만 그 의미는 덜 부각됐을지도 모른다.

바로 지난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영화 ‘기생충’으로 역시 한국 최초로 수상한 봉준호 감독도 수상소감을 했다. 하지만 당시 통역을 맡은 샤론 최가 재치 있는 통역으로 언론의 주목을 끌며 찬사를 받았었다.

이처럼 글로벌 무대에서 비원어민이 국제공용어인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의사소통의 관점에서 친밀감이나 몰입도가 다르다. 원어민 수준에 이른 외국인이 영어로 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정도의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관점이 다르다.

곧 상대방의 감정에 끼치는 수용도가 다를 수 있다. 100% 영어 소통력이 아닌 경우 청자(聽者)가 받아들이는 용인의 폭이 넓어진다. 외국인이 영어로 하는 말이 불완전하더라도 원어민은 너그럽게 아량으로 받아들이는 심성의 여유를 보이게 된다. 오히려 완벽치 않은 영어 구사가 더 인간적  호감을 느끼게 해 공감대를 쌓을 수 있다.

25일(현지시간) 배우 윤여정이 미극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우 조연상을 받고 기자실에서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AP/뉴시스)
25일(현지시간) 배우 윤여정이 미극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우수 여우 조연상을 받고 기자실에서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이번 윤여정 배우의 수상소감과 뒤이은 기자 간담회에서 민감했던 두 단어는 단연 ‘snobbish'와 ’smell'이었다. 그는 영국 사람을 지칭하며 'snobbish'라는 단어를 썼다. 사실 이 단어는 매우 민감한 부정적 어감을 내포하고 있어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까다롭다.

그가 수상소감에서 쓴 이 말을 국내 매체는 처음에 ‘콧대가 높은’  ‘속물적인’ (영국인)으로 번역해 기사를 송출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고상한 체하는’으로 표현을 바꿨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사전에서도 snobbish는 부정적인 말뜻(disapproving) 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 배우가 그 말을 썼을 때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에 해외 영어 문화권에서는 ‘Savage Granma'로 반응했는데 여기에서 쓰인 ’savage란 단어도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한 국내 언론에서는 영어권 반응에 대해 ‘거침없이 솔직한 할머니’로 의역을 했다.

분명 snobbish나 savage는 모두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말이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품격 있는 국제행사 환경에서 비원어민이 행한 말이기에 긍정적 의미로 승화돼버린 격이 됐다. 일반적으로는 다른 격조 있는 어휘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품긴 윤여정이라는 아카데미상 수상자의 “튀는 표현”은 오히려 금상첨화가 됐다.

윤 배우는 시상식 후 이어진 한 영국 영화 전문지와 인터뷰에서 그 어휘를 쓴 이유에 대해 밝혔다. 수차례 영국 방문과 수십년 전 연수를 통해 영국인들이 snobbish하게 느껴졌지만 ‘나쁜 의미로 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관심을 끈 또 하나의 단어는 smell이다. 리포터가 “What does [Brad Pitt] smell like?”라고 질문하자 윤 배우는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I didn't smell him. I'm not a dog'이라고 응수했다. 이것을 두고 한국 언론매체들은 최고 수상자에 대한 질문이 무례했다고 하나같이 지적했다. 이는 smell을 ‘냄새’로만 생각하는 비원어민의 일방적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그렇지 영어 원어민 기자가 최고 영예를 차지한 수상자에게 공식 취재 과정에서 그런 결례를 했겠는가? 이는 그 영어 단어와 관련된 특별한 의미와 그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야기된 해프닝이었다.  이것은 '언어는 곧 문화'라는 명제를 설명하는 예가 된다.

사실 smell like는 유명 연예인과 같은 저명인사에 한해 ‘만나보니 느낌이 어떻더냐?’의 의미로 쓰인다. 어떻게 보면 아무에게나 쓰지 않는 아카데미상 수상자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특정 표현이기에 영어를 잘 하는 외국인으로서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영어권 사회는 개인 간에 남을 평가하는 것이 통용되지 않는 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대중의 추앙을 받는 명사들에게는 이처럼 차별화된 뜻을 담고 있는 smell을 꺼리지 않고 쓴다고 한다. 무대에 오르는 출연자에게 우리말로 '잘해, 파이팅!'이라는 의미를  영어로는 'Break a leg!'이라고 한다. 그 문화를 모르면 이 영어 표현에 오해를 살만 한 것과 같다. 

그런 뜻이라면 비원어민으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기자도 대상이 외국인임을 고려해 일반적인 표현을 할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윤 배우가 영어실력이 좋다고 판단해 무심코 특유의 표현으로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윤 배우의 반응에 대해 언론은 ‘재치 넘친 위트’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smell이라는 말에 불쾌감을 느껴 그렇게 해학적으로 넘겨버린 탁월한 순발력이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임기응변의 언어적 대처가 장내 분위기를 이끌어 간 것이다.

달리 윤 배우가 리포터의 질문을 바로 이해했다면 그냥 브래드 피트 만나본 느낌을 전달했을 것이다. 아니면 원어민 수준의 통역사가 의사소통을 도왔더라면 위트 넘친 답변이 돼버린 이 같은 해프닝 역시 없었을 것이다. 모국어와 외국어는 바로 이런 점에서 이해력의 차이가 있다.

사실 일반 표준 영한사전이나 영영사전에서 smell을 위와 같이 특별한 뜻으로 규정하고 있는 곳은 없다. 단지 영미권 사전 사이트 ‘어반 딕셔너리’(Urban Dictionary)는 ‘to feel'  'to undergo the experience of'  'to be aware of'  'to sense'  'to think'로 풀이하고 있다. 곁들여 그 의미를 '직관, 정감 또는 특정할 수 없는 다른 근거들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으로 정의 하고 있다.

윤 배우가 받은 질문은 이 같은 의미로서의 smell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외국인에 대한 원어민 기자의 질문에 smell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과유불급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영어를 못한다’는 그의 솔직함에 호감을 느낀 해외팬들은 그의 반응을 위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윤 배우는 오히려 언어감각의 소유자로 칭송을 받은 결과가 됐다. 결국 배우 윤여정은 연기자로서 뿐만 아니라 비원어민의 영어능력으로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더욱더 ‘수퍼 셀럽’이 됐다.

※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는 코리아타임스에 다년간 영문 칼럼을 기고하며 중앙일보 외 주요 언론사 해외 문화예술 교류 전담 후 예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 대표를 역임했다. <영어로 만드는 메이저리그 인생> <예술경영리더십> <문화예술리더론> <긍정으로 성공하라> <경쟁의 지혜> 등 14권을 저술했으며 문화커뮤니케이터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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