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이신호 관장 인터뷰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문해력의 사전적인 정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영단어 ‘Literacy’로 번역된다.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단어와 문장을 읽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해 글자를 모르는 ‘문맹(文盲)’과도 거리가 멀다. 학습 장애의 일종인 ‘난독(難讀)’과도 구분된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문해력이 부족하면 학업과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수 있다. 시험지에 주어진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오답을 제출한다든지, 제품 사용 설명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그대로 따라 하기 어렵다면 문해력 부족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학업에 충실해야 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문해력 기르기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각종 통계 자료는 한국 청소년들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 15살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읽기 영역에서 한국은 2006년 세계 1위를 차지했으나, 2015년 이후에는 9위까지 떨어졌다. 또한 지난해 EBS가 중학생 2,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문해력 테스트에 따르면 학생 27%는 교과서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수준이었다.

청소년들의 문해력 하락 원인에는 디지털화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스마트폰 개발 이후에 어린 시절을 보낸 청소년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디지털 매체에 노출됐다. 엎친 데 엎친 격 지난해 초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코로나19 장기화는 대면 수업이 아닌 온라인 학습 보편화에 기여했다. 문해력이 필요한 기초 과목에서 학력 미달 학생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은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사교육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문해력 향상을 위해서는 독서가 기본이라고 말한다. <뉴스포스트>는 지난 10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이신호 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해력 향상을 위한 독서 방법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면으로 진행됐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이신호 관장. (사진=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제공)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이신호 관장. (사진=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제공)

 

Q.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온다. 현장에서 실제로 체감하는가.

A.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문해력 문제는 학교 현장에서 많이 체감되는 것 같다. 교과서에 나온 어휘를 모르거나, 글을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청소년기가 학업 시기이다 보니 문해력과 학업성취도의 연관성을 조사한 연구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Q. 어린이·청소년들의 문해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읽기’는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학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학습 환경에 따라 뇌의 읽기 회로가 매우 다르게 생성된다고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Native)인 오늘날 어린이·청소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과 모바일, 게임, 각종 영상들과 같은 디지털 미디어에 매우 능숙하다. 디지털 시대 과잉 정보에 노출된 사람들은 인지적 과부하에 빠지지 않기 위해 텍스트 중 단어만 재빨리 훑어 맥락을 파악한 후 결론으로 돌진하는 이른바 ‘훑어 읽기’ 방식을 선택한다.

훑어 읽기는 세부적 줄거리를 기억하거나 논리 구조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며, 더 짧고 단순한 문장만 찾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이렇게 디지털 매체에 적응한 뇌의 읽기 회로는 종이책이나 인쇄물을 읽을 때도 디지털 매체를 대하듯 건너뛰며 읽게 된다. 이것이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Q. 문해력을 향상하는데 독서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A. 사람은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단어만큼 글을 이해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된다. 글을 읽을 때 의미 단위로 묶어 읽는 연습을 하면 구조화된 사고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 어휘력을 갖춘 아이들은 주제를 빨리 찾아내고, 논리적인 구조를 빠르게 파악한다. 

Q. 문해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책이 따로 있는가. 있다면 어떤 종류인가.

A. 노르웨이 스타방에르대학교 심리학과와 영국 개방대 유아교육·발달학과 공동연구팀에 따르면 독서습관을 기르고 문해력을 높이는 데는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훨씬 도움이 된다. 다양하고 많은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질 좋은 책을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적으로 읽는 것이 문해력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때는 좋았던 구절을 노트에 직접 적어보기도 하고, 책 내용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등의 독서활동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책의 내용을 보다 바르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Q.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떤 독서 습관을 가져야 하나.

A. 대부분 문해력이 낮은 아이들은 내용 파악 능력이 미흡해 글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초보자일수록 사실적 읽기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독서를 할 때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적 읽기가 충분히 연습되면 유추와 추론을 통해 책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질 것이다.

Q. 책을 자주 읽지 않은 아이들에게 당장 책을 고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독서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책부터 시작하는 게 좋은가.

A. 다양하고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아이들의 발달단계와 관심 분야에 맞춰 독서를 권장하는 것이 좋다. 먼저 아이들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편독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대신 같은 주제를 다양한 형태와 표현 방식으로 다룬 책을 읽도록 한다.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관심사를 넓혀가며 독서를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긴 글을 읽기 어렵다면 동시(童詩)를 읽는 것도 추천한다. 동시에 쓰이는 어휘는 짧지만 함축적이고 풍성한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표현력과 상상력을 키우기에도 매우 좋다.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A. 성장 과정에서의 책 읽어주기, 독서 권장 등 주변의 독서에 대한 관심 정도가 현재의 독서량을 결정하는 배경이다. 주변 사람들과 책을 매개로 한 소통은 독서에 대한 친밀감을 키우고 독서 습관을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책을 매개로 한 소통 중에서도 특히 ‘책 읽어주기’는 독서습관을 만드는 첫걸음으로,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전국 공공도서관과 함께 ‘책 읽어 주세요’ 캠페인을 통해 어린이들의 언어력 향상, 올바른 독서습관 형성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전국의 공공도서관에서 노란 앞치마를 입은 사서를 만난다면 “책 읽어 주세요”라고 말해달라.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