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30% 수준으로 떨어져…허탕치는 날도 많아
“요금제 개편 등 대리기사 위한 정부 지원 필요”

모든 인류가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채 처음 마주한 재난(災難). 전례 없는 재난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할수록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개인의 노력이나 정부 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 삶 전반의 균형이 깨진 채 고립돼 잊혀가는 사람들. <뉴스포스트>는 팬데믹 속 사회적 약자가 돼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대리운전기사 등 이동노동자를 위한 곳인 휴서울이동노동자 서초 쉼터는 오후 6시 어김없이 문을 열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이용자 수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얼굴을 비추는 이들은 있었다. 지난 12일 기자가 쉼터를 찾은 날은 오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휴서울이동노동자 서초 쉼터에서 대리기사들이 콜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선초롱 기자)
지난 12일 휴서울이동노동자 서초 쉼터에서 대리기사들이 콜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선초롱 기자)

오후 6시. 쉼터가 문을 열자 대리운전기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반팔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를 깔끔하게 갖춰 입은 이들은 체온 체크와 손소독 이후 자리에 앉아 본인의 휴대폰을 쉼 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서로 안면이 있는 듯 야구 경기 얘기를 하거나 백신 얘기를 하는 등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도 시선은 휴대폰에 있었다.

올해로 대리운전기사 경력 15년 차를 맞았다는 김 모 씨(가명·50대)는 “보통 6시부터 쉼터에 나와 콜을 기다리는데, 아무런 콜도 받지 못한 채 10~11시쯤 집으로 들어가는 날도 있다. 하루에 1~2콜을 받으면 많이 받는 것이다. 수입도 (코로나19) 전에 비해 3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눈·비가 오는 날’은 대리운전기사들에게 대목이었다. 일기가 좋지 않은 날일수록 대리운전기사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러나 최근 거리 두기 4단계 시행 이후 그마저도 크게 줄어들었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그는 “하루에 콜을 1~2개 정도 받는데, 거리 두기 4단계 이후 허탕을 치는 날도 많아졌다. 대리기사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이들도 많은데 정부의 지원도 없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하나 싶다”며 쓰게 웃었다.

사람과 주로 만나는 업무다 보니 방역에도 신경이 쓰일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마스크 착용, 손소독 등 개인이 할 수 있는 방역은 최대한 지키고 있다. 우리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분들이 더 위험할 것 같다”며 “사실 코로나19 위험보다는 수입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 더욱 힘든 부분이다. 대리기사를 본업으로 하고 있다 보니 생계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일 휴서울이동노동자 서초 쉼터에서 대리기사들이 콜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선초롱 기자)
지난 12일 휴서울이동노동자 서초 쉼터에서 대리기사들이 대리운전 프로그램을 보며 콜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포스트 선초롱 기자)

오후 6시 30분. 쉼터에는 7명 정도의 대리기사들이 콜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산을 털며 쉼터로 들어선 이 모 씨(가명·60대)는 “대리기사들의 수입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은 코로나19 영향도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며 운을 뗐다.

이 씨는 한 달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과 수수료에 대해 말했다. 그는 “보험료, 휴대폰 사용요금, 대리운전 프로그램 사용료, 식비 등으로 매달 70만 원 정도가 고정적으로 나간다. 거기에 수수료 20%가 나간다”며 “500만 원의 수익을 올려야 순수하게 벌어가는 돈이 300만 원 정도인데, 그러려면 하루에 20만 원의 수익을 올려야 한다. 그런 기사들은 상위 10%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 씨의 주장은 이렇다. 대리운전 금액에 대한 기준이 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 요금이 평준화돼있지 않다 보니 고정 비용이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는 “요금 기준이 없는 서비스업은 대리운전이 유일할 것이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장거리 대리운전 비용 역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표준화가 돼 있지 않다. 이런 부분을 정부가 개입해 해결한다면 대리기사는 물론 서비스를 이용하는 손님들도 합리적인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금 문제 외에도 대리기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콜을 받는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이 씨는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분당까지 가는 콜이 회사로 들어오게 되면, 대리기사 프로그램별로 내용이 들어오게 된다. 다섯 곳에서 동시에 해당 콜이 들어왔다고 뜨는 것이다. 그럴 경우 대리기사 5명이 콜을 중복으로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손님에게 먼저 도착한 대리기사가 배정이 된다. 나머지 기사들은 허탕을 치는 구조다. 10년 전에는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지금은 허다하다. 이를 회사에 항의해봤자 돌아오는 건 배차 제한이다. 을(乙) 중의 을이다”라고 토로했다.

이 씨는 “요금 책정이 체계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까지 확산되면서 대리기사들이 설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부업뿐만 아니라 본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도 많은데 하나둘 다른 일을 찾고 있는 모습이”이라며 “대리운전 시장이 법 사각지대에 있어 발생하는 문제”라고 국회 입법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현재 대리기사를 법적으로 보호할 대리운전업법은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 2007년부터 꾸준히 발의되고 있지만 국회에서 입법되지 못하고 번번이 폐기되고 있다. 이들 법안에는 대리운전자 및 대리기사 등록기준, 자격, 대리운전보험 가입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취재가 진행되는 두 시간여 동안 서초 쉼터에 모인 7명의 대리기사들은 아무도 콜을 받지 못했다. 비 오는 날이 대목이라던 김 씨의 말이 무색해졌다.  취재가 끝난 뒤 쉼터는 깊은 한숨과 탄식만이 들리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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