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열재 없는 초소 환경… 선풍기 두 대로 여름 버텨 
코로나로 층간소음 분쟁 증가· 분리수거 양 40~50% 늘어
“수면 시간 늘려 급여 삭감” 일방적 통보…최저임금도 못 받아
동 대표 한 마디에 해고...주민 관심으로 인식 개선 이뤄져야

모든 인류가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채 처음 마주한 재난(災難). 전례 없는 재난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할수록 더 잔인하게 다가왔다. 개인의 노력이나 정부 정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제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 삶 전반의 균형이 깨진 채 고립돼 잊혀가는 사람들. <뉴스포스트>는 팬데믹 속 사회적 약자가 돼버린 그들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백신 휴가요? 여름휴가도 없는데 백신 휴가가 있을까요?”

지난 20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 초소에서 경비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지난 20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 초소에서 경비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지난 20일 뉴스포스트가 만난 경비원 이득규(가명) 씨는 두 달 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마쳤다며 이같이 말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아파트 거주 가구는 1,078만 가구로 전체 가구(2,148만)의 51.5%를 차지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주는 주거 공간인 아파트가 누군가에게는 노동의 현장 즉, ‘일터’다. 경비 근로자, 청소근로자, 시설관리자 등의 얘기다. 

아파트는 특히 서울시에 몰려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공동주택 관리법에 따라 지난해 말 현재 서울시가 관리하는 의무관리 아파트 단지(150세대 이상)는 총 2,258개다. 해당 아파트 단지 경비 근로자는 대략 2만 5,000명 내외로 추산된다. 

해마다 신규 아파트 단지와 경비 근로자가 늘어나지만, 아파트 경비 근로자들의 인권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경비원들의 노동 강도는 더욱 높아진 모습이다. 

뉴스포스트는 지난 20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 10년 차 이득규(가명·67), 2년 차 송승준(가명·66) 씨를 만나 코로나 팬데믹 속 아파트 경비원의 근무 환경 실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씨와 송 씨가 근무하는 아파트는 3,500가구 이상의 대단지로, 근무하는 경비원의 수도 90명에 달한다. 대부분 65세 이상의 고령 근로자로 백신 접종을 마무리한 상태다. 하지만 1, 2차 접종 날도 전혀 쉴 수 없었다. 

이 씨는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오른쪽 팔이 아프다. 어떤 사람들은 근무를 못 할 정도로 몸이 안 좋았는데, 일단 출근해 반장에게 허락을 맡아야 한다”며 “여름휴가도 없는데 백신 휴가라고 있겠느냐”고 말했다. 

송 씨는 “백신 접종도 눈치 보인다. 오늘 주사 맞는다고 얘기했을 때 ‘푹 쉬어라. 몸조리 잘해라’ 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초소 뒷편에는 화장실이 있지만, 경비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휴게실은 따로 없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초소 뒷편에는 화장실이 있지만, 경비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휴게실은 따로 없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선풍기 두 대로 버틴 여름… 휴게실도 없어


초소 환경도 열악했다. 올여름 에어컨 한 대 없이 선풍기만으로 기록적인 폭염을 견뎠다. 그마저도 벽에 걸려있는 기본 선풍기 한 대와 분리수거장에서 주민이 버린 선풍기 하나를 주워왔다. 

송 씨는 “단층짜리 2.5평의 경비실은 단열재도 해놓지 않아 열기가 올라오면 그대로 내부가 달궈진다”며 “경비원들끼리 후끈하게 찜질 잘하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버텼다”고 전했다. 

이 씨는 “기본적으로 온도계가 38도에 가 있다”며 “우리는 햇빛을 아침부터 직접 받으며 일을 하는데, 한여름은 종일 달궈진 상태에서 일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파트에서 낮이고 밤이고 종일 돌아가는 실외기 소리를 들으면서 경비 근로자들의 인권은 어디 있나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명목상 경비원들의 휴게실이라고 칭해놓은 공간도 실상은 미화원들의 사무실이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에는 경비실 지하에 휴게실을 마련해 주는 것이 추세지만, 해당 아파트 근로자들은 2.5평짜리 초소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모든 것을 초소에서 끝낸다. 

송 씨는 “구청에서 점검을 나올 때면 경비원들의 휴게실이라고 소개하는 공간이 있다”며 “실질적으로 미화 여사님들이 아침마다 회의하고 점심도 먹고 퇴근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한 번도 이용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층간소음·분리수거 등 코로나19로 노동 강도 세져 


코로나19로 인해 노동의 강도는 더 세졌다.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등으로 주민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증가하자 층간 소음 분쟁은 더욱 늘어났다. 또한 택배와 배달음식의 증가로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나 분리수거 양도 증가했다. 

송 씨는 “코로나 사태로 배달 음식과 택배가 증가해 분리수거 양이 40~50% 정도까지 늘었다”며 “분리수거 날은 최소 8시간에서 10시간을 서서 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동에 보통 90~100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제대로 분리수거를 하는 가구가 거의 없다. 70~80%는 다시 우리의 손을 거쳐야만 한다. 매번 뒷바라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층간소음이 문제 되면 우리는 낮에든 밤이든 상관없이 가봐야 한다”며 “가서 아랫집이 이렇게 힘들다는 사정을 설명하고 결국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숙이는 건 우리다”고 말했다.  

초소 뒷편의 화장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초소 뒷편의 화장실. (사진=뉴스포스트 이해리 기자)

 


‘법의 사각지대’ 최저임금도 못 받아


두 경비원이 근무하는 아파트는 지난해 급여를 한 달 약 200만 원에서 180만 원으로 20만 원씩 깎았다. 아파트 측은 경비 근로자들의 저녁 수면 시간을 늘리기 위한 취지라고 얘기했지만,  임금 삭감이 목적이었다고 송 씨는 설명했다. 

송 씨는 “동 대표 회의에서 이러한 의견이 나왔으면, 실제 근무자들의 목소리도 들었어야 하는 게 맞는데 우리는 한 달에 20만 원이 삭감된다는 일방적인 통보만 받았다”며 “경비원과 관련한 ‘감시·단속적 근로자’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180만 원은 작년도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다”며 “야근을 시키던 밤을 새우던 잠을 안 재우던 아무런 법적 제재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이 마음대로 횡포를 부린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급여를 깎기 위해 내세울 명목이 없으니까 잠자는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우리는 긴급 상황이 생기면 대처하기 위해 초소에서 간이형 침대를 펴놓고 자는데, 사실상 대기 상태로 수면 시간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고 얘기했다. 

경비 근로자들에게 무엇보다 힘든 것은 동 대표의 갑질이다. 경비원들의 소속은 따로 있지만, 아파트와 경비 근로자들 중간에 낀 업체일 뿐 실질적인 우산의 역할이 되지 못한다. 동 대표의 한 마디에 직장 생활의 목숨이 달려있어 그들은 절대적인 권력자로 통한다. 

송 씨는 “우리의 업무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편리를 도와주고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그들은 가끔 우리를 감시하고 상명하복식으로 인격적인 모욕감을 주며 하대한다”며 “이런 부분도 그들의 권한이고, 직장이니 감안하자 넘어가는 만큼 경비 근로자에 대한 올바른 처우도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당장의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보다도 지역 주민의 관심을 통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씨는 “경비원들은 인생의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한다. 자주 보는 주민들을 내 가족같이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며 “세상이 완벽해질 수는 없지만 우리가 바꿔나갈 수 있는 것들은 실천해서 조금씩이라도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송 씨는 “불공정 문제는 어느 한 지역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약자들의 말을 들어주는 사회 분위기가 돼야 한다고 본다”며 “당장 개선되길 바라는 것보다 이런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구나를 알고, 함께 고민할 부분들이 있는지 관심을 갖는다면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