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차원 높은 발성과 애잔한 호소력의 크리스틴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추리 소설가 가스통 르루(1868∼1927)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Le Fantome de l'Opera, 1910)’을 토대로 만들어진 뮤지컬 ‘팬텀’이 지난 11월 26일 첫 개막부터 전석 매진 기록으로 내년 2월 26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된다.

흉한 기형의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오페라극장 지하에서 숨어사는 슬픈 운명을 가진 팬텀 역에는 박효신과 박은태, 전동석이다. 팬텀의 상대역 크리스틴 다에 역에는 김소현, 이지혜, 김순영이 개막부터 전석 기립박수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특히 뮤지컬 무대의 정통클래식 음악을 가미한 김순영의 호소력 짙은 음색은 전석 감동의 물결로 이어졌다.

뮤지컬 배우, 정통 소프라노, 프리마 발레리나 등 최정상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역대급 ‘최고 라인업’으로 개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팬텀을 찾은 [뉴스포스트]는 크리스틴 다에 역의 김순영에게 초점을 맞췄다.

팬텀 공연을 마치고 나온 크리스틴 김순영의 모습은 화장기 없이 청초했다. 화려한 분장에 가려진 순정함이었다. 팬텀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애틋한 감정을 키워가는 그 순수한 여인이 오버랩 되었다.

팬텀의 크리시틴 다에 역의 김순영

스스로가 생각하는 김순영의 모습은 어떠한가

나는 꼭 집어 하나로 표현할 수는 없다. 화려하면서 소박하고, 외향적이면서 내향적이다. 즉, 다양성이다. 내게 이런 다양성이 있어 예술을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관객들도 이런 나를 알아주시고 사랑해주신다. 팬텀 초연 때 많은 분이 사랑을 주셨다. 순크리스라는 애명도 그때 달아주신 것이다. 이번에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도 순영이라는 이름처럼 순수하고 진정성의 모습으로 보답하겠다.

 

음악계의 성공을 위해선 아무래도 주위의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가

아무래도 그런 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면에서는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대학 때도 레슨 선생님이 교수님이 아닌 강사 선생님이었고 유학을 갔다 와서도 끌어주는 사람이 전혀 없이 혼자였다. 그 때문에 난 스스로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오히려 그 점이 내게는 오늘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내가 잘하고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면 다 통한다는 생각이다. 관객도 이런 나의 노력을 정확하게 알아주신다. 그러니까 예술은 본인 스스로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달려있다.

 

정통 클래식 소프라노에서 뮤지컬 배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캐스팅된 것인가.

팬텀의 로봇 요한슨 감독님이었다. 그 분이 팬텀을 무대에 올리면서 기존의 뮤지컬가수가 아닌 정통 소프라노를 찾는 과정에 내 유튜브를 보시게 되었다. 그 전에 난 뮤지컬은 꿈도 못 꾸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정통 클래식만을 고집했다. 또 뮤지컬에서 활동하면 다시 클래식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캐스팅 제의에 선뜻 결정 하지 못했다. 그런데 기회를 놓치면 많은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고민 끝에 크리스틴을 결정했다.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다. 당시 함께 우려해주셨던 분들도 지금은 잘했다고 격려해주신다.

 

크리스틴은 객석의 반응에 따라 공연이 다를 것 같다. 또 두 명의 크리스틴과 비교 혹은 견제로 신경이 쓰일 것 같다.

오히려 각각 색깔이 달라서 좋다. 객석의 반응도 좋다. 초연 때는 여주인공들이 알게 모르게 신경 쓰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어 좋다. 특히 박효신 씨와 호흡이 잘 맞아 공연 내내 즐겁다.

팬텀의 크리스틴 다에 김순영

성악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무엇인가

음악을 좋아했다. 그래서 음악은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그래서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을 타야만 했다. 독일 유학 때는 1년 반을 국립합창단에서 2,000만 원을 마련해 갔다. 그때는 그것이 참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나를 단련시킨 힘이 되어 오늘 이 자리에 있지 않나 싶다.

 

지금껏 많은 공연(연주회)을 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언제인가

호스피스병동과 교도소에서 노래한 적 있다. 그때 난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아주 감동적이었다. 내 노래를 듣는 그 사람들의 표정, 그 눈빛에서 전해지는 그 간절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많은 화려한 무대에 서 봤지만 그때만큼 내가 음악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무대는 없었다.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행복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뮤지컬 전에는 클래식 가수만 고집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게 보이고 클래식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또 시야가 넓어지면서 대중이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 좀 더 융합된 예술세계에서, 다양한 무대 활동으로 성악가의 입지를 넓히겠다는 생각이다.

 

음악을 하는 후배들, 또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전에는 직업에 대해서 생각이 많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후회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내가 너무 행복한 직업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난 앞으로 내 아이에게도 음악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 자리를 통해 후배들에겐 자부심을 가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예술의 세계는 무한한 행복이다. 언젠가 오스트리아를 갔었다. 그때 90세 가까운 피아니스트의 독주회였는데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이었다. 연주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피아노에 앉기까지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순간, 객석은 숨이 멎는 듯 했다. 그 분이 음악을 즐기고 있다는 것, 또 너무너무 행복해하고 있다는 것이 모두에게 느껴졌던 것이다. 눈물이 나왔다. 참으로 음악을 잘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가슴이 뻐근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