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늘 배움의 자세 필요

임성민, 김현숙, 조선아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예능계의 당찬 세 여인이 모였다. KBS 전 아나운서의 임성민, 뮤지컬계의 독보적인 음악감독 조선아, 굵직굵직한 뮤지컬 공연 앞에는 어김없이 그 이름이 내걸리는 배우 김현숙. 삼총사로 맺어진 그녀들의 행복한 웃음에 사람의 관계 맺어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껴졌다. 차가운 이미지의 그녀들이 순한 웃음으로 똑 닮았다. 좋아하면 서로 닮는다더니 각각 자신만의 도드라진 강한 색채가 모였는데도 전혀 이질감 없이 부드러운 단색으로 빛났다.

 세 여인이 삼총사로 맺어진 것은 어느새 올해로 14년째. 삼총사의 아지트는 서래마을의 나폴리 피자전문점의 볼라레였다. 약속 시각은 오후 3시 30분. 겨울치고는 제법 따뜻한 날씨였다. 나른한 겨울 햇살이 볼라레의 유리창을 뚫고 재즈 색소폰과 어우러진 그곳에 제일 먼저 도착한 건 배우 임성민 씨와 그녀의 남편. 예상치 못한 그의 출현이라 아니, 그윽하게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어 조선아 음악감독과 배우 김현숙 씨. 그녀들은 그들 부부를 보자 어린아이들처럼 깜짝 반가운 비명이었다. 놀랍게도 임성민 씨의 남편도 그녀들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형부라 부르며 안겨드는 아내의 절친들에 그도 어느새 4총사의 자리를 예감하게 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고 세 여인의 수다가 시작되자 슬쩍 자리를 비켜주는 센스는 상당한 배려남이라는 것에 인상이 깊었다.

배우 임성민

그런데 임성민 씨의 표정이 평소 같지 않게 어둡고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논산에서 밤새 영화 촬영을 마치고 온 때문이라고 했다. 현재 찍고 있는 작품은 ‘천사의 시간’이라고. 뇌종양에 걸린 아이의 엄마역이라서 우는 씬이 많다고. 또 그녀는 오는 4월에 세월호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고 했다. 뜻밖의 소식이었다. 세월호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더구나 여주인공 역에 임성민 씨라는 것이. 당연히 세월호 여주인공의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소감요? 글쎄요. 소감을 말하기 전 우선 이 영화의 내용을 먼저 소개하는 것이 순서겠네요. 인간과 인간의 돈독한 관계성을 풀어놓은 휴머니즘 영화예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정치권의 얘기가 아니라는 얘기죠. 죽음의 순간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인간의 절박한 심리와 사제지간의 정, 부모자식 간의 뜨거운 사랑, 친구와의 우정.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인간의 비열한 잔인성. 즉 인간의 총체적인 모습을 이 영화에서는 보여준다고 보면 돼요. 남자주인공은 이창훈 씨고 전 여교사 서진희 역이죠. 한마디로 똑 부러진 캐릭터라 누가 봐도 딱 임성민 제거에요. 다부진 배짱으로 자기의 일은 철저하게 해내는 캐릭터라 작년 9월에 대본을 받자 곧바로 오케이 했어요. 진짜 나와 똑 닮은 성격이라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고요”

 그녀의 대답에 앞에 앉은 두 여인이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정작 임성민 씨 본인은 웃지 않았다. 여전히 가라앉은 표정 그대로였다. 방금까지도 울음장인 촬영장에 있었으니 그 몰입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더욱이 오일권 감독으로부터 세월호 여주인공 제의를 받고 부터는 생각이 많아졌다고. 그간 세월호를 보던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저 아이의 엄마였더라면, 저 아이 아빠였더라면, 내가 저 선생이었더라면, 내가 배에 갇힌 저 아이였더라면. 인물 하나하나를 탐구하게 되더라고요. 이것을 접신이라고 하겠지요. 정말 이 영화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껏 잊고 살았던 인간의 돈독한 관계성에 대해서, 동방예의지국이라 칭했던 예의, 정의, 사랑 그런 것들에서 회복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세월호 영화로 터닝포인트가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임성민 씨의 말에 자리는 숙연해져 화덕에서 갓 구워 내놓은 마르게리타가 차갑게 식도록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아니, 어린 영혼들을 잠재운 세월호는 시간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여전히 그렇게 아픈 것이었다. 그래도 애써 그 침묵을 깨고 분위기를 전환한 것은 조 감독이었다.

“임성민 씨가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창작극 한 건 아시죠?”

뮤지컬 음악감독 조선아

그 목소리는 영락없는 제자 자랑하는 스승의 목소리였다. 역시나 그 말에 임성민 씨의 굳은 표정이 펴지며 선생님 덕분이라고 했다.

 “아, 그거요. 여기 선생님 덕분이지요. 조 감독하고는 사제지간으로 만났어요. 아마도 3년은 될 건데, 공부하는 중에 2014년, 또 2016년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창작 뮤지컬 ‘그린카드’를 공연했어요. 그것도 영어로. 진작부터 노래를 배우고 싶어 많은 선생님을 전전했지요. KBS 시절 아나운서를 하면서도 노래를 배우고 싶어 약 20년 넘게 선생님을 찾아 헤맸으니. 어느 날 배우 구혜령이 소개를 해주더라고요. 음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있다면서. 그래서 만나게 되었는데 정말 티칭법이 최고였어요. 그러니까 사람마다 보이스가 다른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사용하고, 선생들도 그러고요.

그런데 조 감독은 그것을 정확하게 찾아내어 그 사람만이 가진 보이스로 발성할 수 있게 가르치더라고요. 그것도 소리자체를 과학적으로 연구해서. 자신의 분야에 철저하게 공부하는 사람이에요. 중앙대에서 연극영화를 했으니 배우로도 손색없고요. 엄청 학구파에다 거짓이 없어요. 솔직히 전 12살 무렵부터 세상의 일에 너무 많은 걸 생각했어요. 인생은 한 번 산다는 것도. 그러니 정직하게 살자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잘 사귀지 못했어요. 그런데 조 감독은 정말 가식이 없더라고요. 그날그날을 최선을 다하고, 척 하는 게 없고, 현숙이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서로가 통하게 된 것 같아요.”

이처럼 임성민씨가 극찬하는 조선아 음악감독은 93년 리허설 피아니스트로 예능계에 입단해 서울 예술단에서만 13년간이라고 했다. 서울 예술단에서 입지를 다진 음악감독 실력으로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역이기도 했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와 무대를 가득 채웠던 음악은 많은 뮤지컬 매니아를 몸살 앓게 했으니. 2016년에는 광주와 목포에서 유인촌 전 문광부장관과 톨스토이의 <홀스또메르>로 또 한 번의 족적을 남겼다.

그런데 정작 조 감독은 자신이 이 일에 능력이 있는지를 가끔은 의심한다고 했다. 창작은 창의성이 생명인데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정말 있는 것인지. 예술이란 논리적 사고나 혹은 그 어떤 체득을 통해서 얻는 게 아닌 직관적 깨달음을 통해서 얻는 시선과 사고의 확장인데 자신에게 그런 직관이 있는 것인지를. 직관도 없는 사람이 20년 넘게 이 일에 매달리는 건 아닌지. 이렇게 반문하며 스스로를 검토한다고. 이런 그녀는 책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이 많다고. 늘 학생들과 생활하는 만큼 학생들의 고민 역시도 자신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고. 그러고 보니 삼총사의 막내인 김현숙 씨도 조 감독과는 한양대 대학원의 사제지간으로 만난 거라고 했다.

 물론 본격적인 만남은 김현숙 씨의 2003년 뮤지컬 페임 때이긴 하지만. 김현숙 씨의 공연을 본 조 감독이 만나자는 연락을 취해 왔을 때 김현숙 씨는 엄청 떨렸다고 했다.

뮤지컬 배우 김현숙

“뮤지컬 배우들 간에 래전드로 통하는 분이 저를 만나자고 했으니. 더구나 평소에 엄청 만나고 싶었던 분이었는데, 그러니 진짜 영광이었지요.”

이렇게 그녀들의 만남은 올해로 14년 차. 여기에 2012년 임성민 씨가 합류해 삼총사가 결성 된 것이고. 처음 여배우 셋이 뭉친 날은 여기 볼라레에서 4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고 했다. 그만큼 서로의 코드가 맞았던 것이라서. 셋 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였기 때문에 또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서, 그것이 공통점이 되어 자연스럽게 뭉치게 된 그녀들의 최근 관심은 삼총사의 막내인 김현숙 씨의 아기소식이었다. 일에 빠져 40이 넘은 나이에 결혼을 했으니, 두 언니까지도 새식구는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두 언니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김현숙 씨는 막내답게 싹싹하고 애교가 많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예술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것은 어릴 적 김성녀, 윤문식 선생의 마당극을 본 것이 계기였다고. 94년 극단 <미추>를 통해서 극단<신시>까지. 한국무용, 판소리, 성악 발레로 오늘의 뮤지컬극단에 입지를 탄탄하게 다진 그녀의 끼를 일찍이 알아본 사람은 <미추>의 윤문식 선생이었다고. 그가 <미추>에서의 뮤지컬로 진출을 적극 권유했던 것이니. 하지만 그녀가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셀 수 없는 오디션 통과를 거쳐야만 했다. “오디션 최종심까지 가서 떨어진 것도 11번이 넘지요. 그래도 한 번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뭐든 될 때까지 해보자는 게 제 소신이죠.” 그런 그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한국 초연의 <미스사이공>의 지지역이란다.

 “제가 브로드웨이에서 <미스사이공>을 봤을 때가 99년인데 그때 지지 역에 완전히 매료되었어요. 그때 꼭 한번은 지지 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무비인 마이 마인드(The Movie in My Mind)’가 환청으로 들릴 정도로 그것은 절대적인 소망이었어요. 그런데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2005년에 ‘미스사이공’의 오디션이 떴더라고요. 그때가 우리나라에서는 초연이었는데. 대단했어요. 몇 번인지 길고 길었던 오디션 관문을 뚫어야 했으니까요. 결국 제가 지지 역을 따냈지요. 그리고 1년간 공연을 하면서 최고의 행복한 순간을 맛보았어요.”

 이렇게 그녀가 꿈을 이룬 <미스사이공>은 대단했다. 그녀가 오랫동안 열망했던 만큼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많은 지지 팬들을 만들어냈으니. 그러던 그녀가 2007년엔 거듭되는 불운이었다. 오디션 최종심에서 떨어진 것만도 열 번이 넘었을 정도였다. 그 충격에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뮤지컬계를 떠날 결심까지도 해야만 했었다. 그때 그녀를 바로 일으켜 준 사람이 남경읍과 최지연 선생이었다. 좌절하는 그녀에게 이 기회에 다시 공부를 하는 건 어떠냐고 대학원을 권유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 그 두 분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고.

세 배우들의 이야기는 끝이없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그녀들 올해의 계획을 듣는 것으로  마치기로 했다. 앞서 얘기했던 대로 임성민 씨의 올해의 계획은 세월호 영화의 성공었다. 그리고 그것이 터닝포인트가 되어 미국 무대의 진출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이어 조선아 감독의 답은 소박하면서도 조금은 심오했다.

“돌아보니, 그동안 난 어쩌면 산이 바다가 되고 바다와 하늘이 뒤집혀서 각기 하는 일이 다른 큰 기적이 있을 거라 믿고 살진 않았는지, 그래서 되는지 안 되는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그 커다란 뭔가가 이루어지기를 믿고 살았던 건 아닌지……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현재 주어진 삶이 기적이란 걸 깨닫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작은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거지요. 앞으로 매 순간순간을 그런 깨달음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건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두려움인데 감각을 잃을까봐 늘 그것이 걱정스러워요. 기성세대가 아니고 싶은데 우리는 기성세대가 분명하고 그렇다면 옛 기성세대의 모습은 아니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커다란 과제라는 것이죠.”

그녀의 말에 임성민 씨 역시도 다시금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죠, 우리가 하는 건 대중예술이고 그래서 늘 대중보다 한발 앞서야 하고 그런데 여배우 나이 40이 넘으면 기성세대이고 그래서 이즈음에서 사라지는 여배우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늘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죠. 감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서 우린 지금도 늘 배우려는 자세이고. 헌데, 아직은 우리 셋 다 감각들이 살아 있어서 서로 그것을 보완해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거죠.”

막내인 김현숙 씨의 계획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결혼이 늦은 만큼 올해는 새식구 탄생을,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이 마무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아울러 언제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배우로서 자세는 잊지 않겠다고. 그러니 두 언니의 고민에도 깊은 공감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로 보면 저 역시 여배우로서 딱 중간에 끼인 나이라 언니들 고민이 제 고민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아요. 그런데 언니들은 솔직히 잘 해나가시는 것 같아요. 버릴 것은 버리고 받아들인 것은 받아들이는 것에 철저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언니들을 보면서 아직은 제 페이스를 잘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 진짜 좋아요. 아, 그런데 우리 간만에 모였는데 너무 심각한 얘기만 한 것 같아요. 모처럼 화장도 예쁘게 하고 나왔는데. 그래서 말인데 오늘 이렇게 모인 김에 우리 선아 언니 올해 꼭 결혼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짜보는 건 어떨까 해요. 일만 열심히 하느라 혼기를 놓쳤는데, 괜찮겠죠? 올해는 선아 언니 꼭 시집갈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좀 보태는 계획요. 크 큭.”

 애교 많은 막내의 제의에 또다시 터지는 웃음이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임성민 씨의 남편도 슬쩍 아내 곁을 차지하며 함박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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