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자긍심과 그 맥을 잇는 가교 역할 충실"

한국사립박물관협회 회장 김재환 (사진=뉴스포스트)

[뉴스포스트= 신현지 기자] 우리나라의 최초의 사립 박물관은 1938년 당시 보화각이라 불렸던 간송미술관이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의 오랜 역사와 혼이 담긴 유물들이 약탈, 심지어는 도굴당하는 실정에서 간송, 전형필이 우리 것을 지켜내겠다는 결의로 박물관을 설립하였던 것이다.

그의 이 같은 노력에 많은 유물은 제 모습을 지켰고, 일본의 식민사관을 극복, 우리 미술사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데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해주었다. 여기에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고 그 맥을 잇는데 가교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하지만 오늘날 사립박물관의 입지는 그리 녹록하지 못하다고 한다.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뉴스포스트]는 한국 사립박물관협회의 김재환 회장과의 만남을 통해 오늘날의 한국 사립박물관의 불안한 입지를 조명하기로 했다.

한국 사립박물관협회의 8대 회장이며 강원도 원주의 '무릉고서화미술박물관'을 운영하는 김재환 회장을 만나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광화문이 몹시 어수선했다. 그러나 날씨는 잔뜩 구겨진 시국과는 상관없이 포근했다. 그 때문에 강원도 원주의 '무릉고서화미술박물관'을 찾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에 자리하고 있는 '무릉고서화미술박물관'은 듣던 그대로 전시관에 가득 찬 고서들로 은은한 묵향이 문밖까지였다. 선사시대유물에서 근현대의 유물까지. 석기류, 동기류, 도자류, 서지류, 서화류, 민속류, 민예품 등 1만2천여 점이 넘는 유물들이 전시관을 찾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올해로 20년째 무릉박물관을 운영하는 김재환 회장은 매년 2회 특별전시회를 통해 우리의 유물 알리는 것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다. 한석봉, 성삼문, 김시습, 추사, 송시열, 김삿갓, 신사임당, 영조, 정조, 순조, 대원군 등의 서예작품과 그림들은 언제든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데 그는 낯선 방문객에 익숙할 텐데 설명하는 내내 표정을 풀지 못한 채 무표정이었다. 대체 속을 짚어낼 수 없는 묘한 꼿꼿함이기도 했다. 아니, 그것은 세상을 달관한 그런 서늘함이었다.

한국사립박물관협회 회장 김재환 (사진=뉴스포스트)

역시 나의 그런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좀 뒤에야 안 것이지만 그는 사립박물관협회장이기 전에 치우민족무예연구회장이라고 했다. 또 24무예경당연합회장. 즉, 그는 우리나라 전통무예인 ‘택견, 수벽치기, 현무도‘(내공술) 등을 종합하여 수련하는 무예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긴 머리카락을 넘겨 묶은 김 회장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긴 했다.

그런 그가 박물관을 하게 된 계기는 건강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에서 서울을 벗어나 원주에 정착하면서부터라고 했다. 즉, 그는 흙을 밟고 사는 이곳에서 전통무예를 익히면서 우리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유물들을 한 점 한 점 모으기 시작했고, 또 그것들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박물관을 하게 된 것이라고.

절제된 표정처럼 말을 아끼는 그에게 평소 신조를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손해를 많이 본다며 설핏 쑥스럽게 웃었다. 당장 큰 손실을 본다는 걸 알면서도 옳다고 생각되면 끝까지 제 뜻을 관철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면서. 즉, 불기자심(不其自心).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의 신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툭 부러질 듯 강직한 그도 고구려의 안악묘 벽화그림 앞에서는 한없이 여린 가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특히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신라의 솟대 해시계는 마치 소년처럼 뛰는 가슴을 감추지 못한다고.

간만에 웃음을 보이는 그에게 이 사업과 관련한 보람을 묻자 소장할 수 없을 것 같은 유물을 구입했을 때와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고 구입한 것이 문헌과 자료를 통하여 그것이 소상하게 밝혀졌을 때, 그리고 소실될 유물을 구제하여 소장하게 되었을 때가 가장 보람이 크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언제부턴 가는 유물을 보는 마음이 전처럼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박물관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란다.  박물관으로써 갖추어야 할 전반적인 구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박물관들이 많아진 것이 그 존폐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면서. 어쨌거나 사립박물관이 암초에 걸린 그것처럼 불편하기조차 한 그가 2014년 8대 사립박물관협회장이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건지 몰랐다. 그는 8대 협회장이 되고부터는 존폐위기에 놓인 사립박물관을 회생시키고자 각고의 노력이었다.

즉, 그는 이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박물관이 갖추어야 할 전반적인 구성을 제대로 갖추게 하는 한편 박물관을 운영하는 개인들의 유물 발굴 보존, 또 그 가치를 관람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고 했다.

또 현실과 맞지 않는 정부의 정책과 규정들이 맞물려 사립박물관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기에 관련 부서들을 찾아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박물관협회 측에서도 역사적 정통성을 잃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게 힘쓸 것이며 개인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이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도 잊지않을 것이란다.

딱딱한 분위기를 전환시키고자 그의 여가활동을 묻자 그는 여전히 유물 모으기와 전통무예를 수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을 위해서 특별히 하는 것은 없지만 무예만큼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 때문에 건강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따뜻한 물 한 번 쓴 적 없고 겨울에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습니다."

마지막 새해 포부를 묻자 김 회장은 사립박물관의 공익을 위해서 현실과 불화음을 이루는 정부의 정책과 맞서 현실에 맞게 개선하겠다고 했다. 이 밖에 해외 박물관들과 MOU체결을 통해 박물관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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