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봄의 전령사 박영춘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농부는 땅을 일군다. 땅을 일구면서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새로운 생명을 대지에 불어넣는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자식인양 하루도 쉬지 않고 새로운 생명이 그저 무탈하게 잘 자라기를 기원하면서 온갖 정성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지의 축복을 받은 풍성한 수확물을 거두면 그때서야 하늘을 향해 허리를 펴며 그동안의 고생을 날려버린다. 농부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이가 아니라 자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 생명과 짧은 시간이나마 호흡을 같이하는 창조주인 것이다.
시나 소설, 수필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자신만의 문체를 드러내기 위해 모든 필력과 심력을 기울인다. 원고지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산고의 과정, 아니, 어쩌면 산고보다 더한 과정일 수 있다. 쓰고 지우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그것이. 그리고 마침내 그 결과물을 얻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박영춘 시인은 농부다. 농부이며 또한 시인이다. 그는 땅을 일구면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며 삶을 불어넣는다. 그러면서 거기에 쏟는 이상의 정성을 들여 원고지에 시를 쓴다. 창조주가 되어 하얀 백지위에 그 자신의 분신을 잉태시키는 것이다.
황해도 구월산 기슭에서 태어난 그는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 올라 서산에 정착했다. 피난 중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일까? 그의 글에는 짙은 회상과 회한, 그리고 이별의 아픔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를 승화시켜 새로운 희망과 평화를 노래한다. 그가 자연을 벗 삼아 창작활동에 몰두하는 것도 어쩌면 그러한 아픔을 이기고 싶은 바램일지도 모른다. 죽음이라는 허무의 세계를 새로운 삶의 탄생이라는 희망의 세계로 승화 시키는 것이다.
사실 그는 원래부터 글을 쓰던 이가 아니다.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그는 주무관으로 퇴임하던 시절까지 기관장들의 취임사나 퇴임사를 주로 써왔다. 그러다 퇴임 2년 전인 1996년 뇌출혈로 쓰러진 것이 계기가 되어 시인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병마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의 필력을 배경삼아 매일 책을 읽고 글쓰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투병과 함께 쌓아온 문학 실력이 그를 2000년에 창조문학과 문학세계에 시를 발표하게 한 것이다.
기실 1천여 평에 이르는 땅을 일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한두 종을 심는 것이 아니라 10여종이 넘는 종의 씨앗을 뿌린다. 식물은 종에 따라 생존조건이 다 다르다. 그것을 일일이 맞추어 무탈하게 수확의 계절까지 인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성이라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듯하다. 그의 시 역시 겸손하고 정성이 가득하다. 마치 소중한 이를 다루는 듯 한 그의 시적언어는 단순히 일반 사물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의 시세계에는 식물이 있고 주변환경이 있고 그의 상상이 있다.
그는 언어유희를 좋아 하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그의 글 속에는 미사어구로 남을 유혹하는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며 사유하는 즉, 그의 직관으로 사물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의 글의 특징이다.
“부드럽고 세세한 필체로 자연이 주는 이치와 거기에 지닌 의미성을 천착해 내고 그 속에서 그의 인생관과 철학을 투영화시켜 매사를 긍정과 용서로 화답한다”라는 이재인 소설가의 평처럼 말이다.
지인들은 그를 ‘순수’ 그 자체라고 이야기한다. 수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라면서.
박영춘 시인.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예산 들녘에 어느덧 봄기운이 완연하다. 저 멀리로는 부드럽게 일렁이는 아지랑이다. 어쩌면 박 시인은 벌써부터 들녘으로 향하는지도 모르겠다. 겨우내 시를 쓰듯 자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말이다.
박영춘 시인
. 황해도 구월산기슭 출생, 충남 서산거주
. 한국문인협회, 한국창조문학가협회 회원
. 한국창조문학대상, 국제문화예술대상 외
. 시집 『들소의 노래』, 『아스팔트위에 핀 꽃』외
. 수필집 『마음나들이 생각나들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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