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은 어둠을 밝히는 상서로운 새

김명자 민속학자 (사진=뉴스포스트)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2016년 병신년이 저물고 있다. 혼란스런 정국으로 인해 실망과 좌절을 거듭하며 숨차게 달려온 한 해였다. 그 때문에 해를 보내고 맞는 아쉬움과 기대감은 여느 해보다 크다. 아니,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뜬다는 것에, 또다시 희망을 담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더구나 닭의 기세와 같이 역동적인 정유년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에. 여기에 [뉴스포스트]는 민속학자인 김명자 전 안동대 교수를 통해 정유년 새해의 밝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김 교수와의 약속 시각은 14시. 들어선 약속 장소에 단아한 미소의 김 교수, 첫인상이 후덕해서였을까. 김 교수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대뜸 샤머니즘의 원형과 역사를 물었다. 순간 김 교수가 짓궂은 학생을 보듯 조금은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 약속대로 닭과 관련된 얘기만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도 난 그녀가 샤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라는 사실에 샤머니즘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부탁했다.

솔직히 정국이 굿판으로 술렁였던 한해였기에 당연한 관심이었다. 결국 그녀도 간단한 설명이었다.

“샤머니즘요? 샤머니즘은 오래된 종교죠. 원시 종교하고는 달라요. 원시라고 하면은 미개함과 같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라 우리는 원시종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요. 샤먼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아요.

나라마다 지역마다 샤먼에 관한 발생 기록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샤머니즘을 간단히 이야기할 순 없어요. 너무 방대하니까요. 난 세계 샤머니즘에 속에서 한국의 샤머니즘을 공부했어요. 안동대학에서는 민속강의로 무속과 세시풍속, 민속신앙을 강의했고요. 굿 음식에 관해서도 연구했지요. 굿요? 물론 당연히 많이 봤지요. 제가 공부하는 분야니까요. 정말 신이 내리냐고요? 물론 내리지요. 그래서 무당들은 신이 내리는 그때마다 각각 의복을 달리 갈아입잖아요.

그렇지만 난 아무런 신도 믿지 않아요. 종교가 없어요.” 웃음기 가신 얼굴에 목소리가 카랑하니 강건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것을 지켜낸다는 자부심 때문인지도 몰랐다. ‘한국공연예술’의 전 원장이기도 한 김 교수는 여전히 세미나와 강의로 바쁘다고 했다. 그 때문에 샤먼에 관한 궁금증은 다음의 기회로 두고 본격적인 닭의 얘기로 들어갔다.

“그래요, 내년이 정유년 닭의 해이지요. 닭은 12간지에서 10번째의 자리에요. 시각은 17시에서 19시, 유시라고 하지요. 유시는 닭들이 홰에 오를 시간이에요. 즉 닭은 어둠을 밝히는 상서로운 새에요. 귀신을 쫓는 새라는 뜻입니다. 또 닭은 부지런함의 상징이지요. 시계도 없던 시절엔 온 동네의 새벽을 알리는 것이 닭의 임무였으니까요. 그러니 닭은 우리의 민족과는 아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어요. 신라의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잖아요. 왕이 계정(鷄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국호를 계림국이라고 하였고요.

또 삼국유사의 김알지 탈해왕편을 보면 호공이 밤에 월성을 지나는데 나무의 황금 궤를 발견했고 그 궤 안에서 동자가 나왔다고 전하지요, 즉, 이것을 요약하면 닭은 개국과 위대한 국가 지도자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의 상징으로 쓰였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닭은 입신출세와 자손 번성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한 마리의 닭이 얼마만큼의 알을 낳고 또 얼마나 많은 병아리를 부화 시키는지.

그러고 보니 요즘 달걀 값이 금값이에요. 조류독감이 빨리 잡혀야 할 텐데, 그렇지만 너무 낙담할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늘 위기가 있었고 이 고비를 넘기면 우린 그만큼 대처능력에 탁월해지고……” 자료도 없이 이어지는 김 교수의 말에 난 다시 짓궂은 학생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을까요." 그리고 우린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 웃음에는 남존여비에 대한 씁쓰레한 뒷맛의 웃음이었고 페미니즘이 잉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하는 웃음이었다. 그렇지만 김 교수는 웃음 끝에 한마디 곁들이는 걸 잊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여성의 지위가 그렇게 낮게 절하된 것은 17세기 성리학이 들어오면서였어요. 성리학 이전엔 여자와 남자는 동등했지요.

지금도 안동에서는 음력 정월의 첫 닭날인 상신일에 남자가 먼저 부엌에 들어가 빗자루로 부엌을 쓰는 풍습이 남아있어요.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악귀를 몰아내는 의식이지요. 그러니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나 썼다고 이해해야겠지요.” 라고. 김 교수는 닭이 부부금술과도 관련 있다고 했다. 그래서 초례청에 닭이 올라가고 폐백음식에도 닭이 빠지지 않는다고.

어디 그뿐인가. 정초 대보름에 닭의 울음을 통해 그해 풍년을 점쳤다고. 또 ‘동국세시기‘에는 정월에 항간에서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나기를 빌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잠깐의 시간을 약속했는데 어느덧 김 교수의 맛깔스런 설명에 그 약속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급히 일어나는 김 교수에게 마지막 새해 덕담을 청했다. 그녀는 병신년이 힘들었던 만큼 내년 정유년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닭의 부지런함을 배워 모두가 열심히 살기를 바란다고. 김 교수 역시도 내년엔 우리민속학연구에 더욱 매진할 것이며 또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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