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배 않고 매일 발성 연습으로 자기관리

(사진=가수 설운도 제공)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3월의 황사 바람 속에서도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날씨였다. 여의도 KBS 본관 뒤편의 전통찻집이었다. 약속보다 이른 시간인데 가수 설운도 씨는 미리 나와 있었다. 전혀 분장 없는 맑은 모습으로. 스크린의 모습과는 뭔가 다른 모습이라 조금은 뜨악했다. 꾸미지 않은 수수한 점퍼 차림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생각보다 가볍고 편안한 느낌이라 좋았다. 그간 많은 인터뷰 노출로 언론사가 불편할 것인데 전화 한 통화에 흔쾌히 만남에 응해준 것도 고마웠고. 그러니 처음 생각했던 그대로 트로트 가수로서의 일상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가수의 계기 부산MBC 전속 가수로 활동한 어머니의 영향  

사람을 만나면 늘 첫 질문의 자리에 그 사람을 오늘의 자리에 있게 한 이유였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일행들과의 좌석에서 옮겨 앉느라 다소 부산한 그를 기다려 던진 질문이 트로트의 대부인 그의 가수 계기였다. 그것에 그는 잠깐 침묵을 보이다 자신의 어머니 때문이라고 했다.

 “저희 어머니는 처녀적 교편생활을 하셨어요. 주위의 권유로 노래자랑을 나가셨지요. 그것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부산MBC 전속 가수 곽문희(예명)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셨어요. 고대원 선생님과 옴니버스 판을 내셨는데 반응이 좋았대요. 그런데 아버지와 결혼하시면서 가수를 그만두게 되셨어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하숙했던 집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의 집안에서 딴따라라고 해서 가수의 반대가 아주 심했거든요. 그러니 얼마나 한이 컸겠어요. 어머니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늘 얘기하시곤 하셨어요. '내 못다 이룬 꿈을 이뤄다오. 내 못다 이룬 꿈을….' 그 때문이었는지 난 어릴 적부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크면서는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다행히 어머니의 재능을 받은 탓인지 어릴 적 할머니께서 절 바닷가에 데리고 나가면 꼬맹이가 노래를 잘한다고 사람들이 선물을 주곤 했대요. 거기에 자신감이 생겼고, 또 발판이 되어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 가수의 계기는 어머니죠.”

혼잡한 것은 싫어, 차분하고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

혹 가수가 아닌 다른 직업을 생각해봤느냐는 물음에 그는 부지런한 탓에 뭐든 잘 했을 거라고 했다.

 “사람들이 절 보고 다방면에 부지런하다고 깜짝 놀라요. 그러니 뭘 해도 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 사색을 즐기니 시를 쓰는 작가가 될 수도 있고, 꼼꼼한 성격이라 상업을 할 수도 있고. 또 자연 친화적이라 귀농해서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요. 양평에 작은 별장이 하나 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 나무도 심고 모아놓은 수석도 감상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오죠. 그럼 마음이 아주 편하고 좋아요. 그렇게 자연에 묻혀 에너지를 충전하다 보면 새로운 발상도 떠오르고, 혼잡한 것은 아주 싫어해요. 차분하고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해요.”

(사진=가수 설운도 제공)

짬뽕면의 ‘이름 모를 소녀’ 중장년층에게 향수 선사

화려한 대중음악을 하면서도 차분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는 그가 조금은 뜻밖이라는 생각이었다. 하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를 수 있으니.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를 빤히 봤던 모양이었다.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든지 그가 시선을 들어 창밖으로 두었다. 때 아닌 창밖에 가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봄을 시샘하는 3월의 눈이었다. “눈이 오네예.” 뜻밖의 눈에 불쑥 튀어나온 그의 음색이 소년처럼 맑았다.

투박한 경상도 발음이 그렇게 풋풋할 수도 있다니. 순간, 얼마 전 방영된 복면가왕이 생각이 났다. 짬뽕면의 그가 고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를 불렀던 그 장면이. 유튜브를 통해 몇 번이나 그때의 화면을 돌려봤을 만큼 짬뽕면의 ‘이름 모를 소녀’는 날 사로잡았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호소력 짙은 그의 맑은 음색에 모처럼 향수에 젖어본 것은. 짬뽕면의 ‘이름 모를 소녀’가 진한 울림으로 전해졌다는 나의 말에 그가 조금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이어 말했다.

 “처음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내가 조건을 달았지요. 모두가 신세대풍의 노래만 하는데 나까지 그럴 수 없다. 난 중장년층을 위한 노래를 하겠다 했죠. 그런데 요즘 대중들은 정통 트로트를 부르면 루즈하다고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비브라토를 없애고 락을 가미해 변화를 주었지요. 정통 트로트에 요즘 트렌드에 맞게 변화를 준 거죠. 처음부터 방청객의 표는 의식하지 않았으니 점수와는 상관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나갔어요. 방청객들이 다 젊은 사람들이잖아요. 결과는 내가 4표로 졌어요. 그렇지만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이름 모를 소녀’를 모르는 젊은 방청객들이 대부분인데. 4표차라니. 무엇보다 내가 중장년층들에게 향수를 선물했다는 것에 감사했죠.” 라고

술 담배를 하지 않고 매일같이 발성연습

그의 말에 불현듯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복면가왕의 연예인판정단 대부분은 심사의 평을 꾸며서 한다는 게 느껴지는데 설운도 씨는 툭툭 던지듯 편하게 있는 그대로 얘기하니 오히려 재미있고 차별화가 느껴졌다.”는 친구의 말이. 그 말을 전하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분께 안부전해 달라는 인사를 덧붙였다. 그런 설운도 씨에게 아직도 젊은 음색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죠. 보면 내가 술 담배를 잘하게 생겼지만 난 아예 못합니다. 또 매일같이 발성연습을 하지요. 젊은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는데 나이 먹어 감은 떨어지고 거기에 자기관리까지 소홀하면 되겠습니까. 가수로서 생명은 끝나는 거지요. 프로라는 건 그냥 지켜지는 게 아닙니다. 항상 그만큼의 노력에 있는 거지요.”

잃어버린 30년, 망향의 노래비(사진=가수 설운도 제공)

출세작 ‘잃어버린 30년’ 유네스코에 등재

어느 분야이든 개인이 주목받은 데는 그만한 출세작이 있는 것이다. 설운도 씨는 그것이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했다. 무명가수였던 자신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노래가 바로 ‘잃어버린 30년’이라면서.

“1983년이었어요. 그때 KBS에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특별 생방송으로 대대적으로 진행했는데, 그 생방송에서 ‘잃어버린 30년’을 불렀어요. 그 노래를 부른 하루 만에 빅히트를 쳤어요. 엄청난 히트였지요. 녹음 후 최단기간의 히트한 곡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으니까요. 지금 그 노래비가 임진각에 세워져 있어요. 김영삼 대통령께서 망향의 노래비로 세워주었지요. 유일하게 유네스코에 등재된 노래에요.”

무대는 여전히 긴장과 떨림이다

초심을 유지하는 건 그 사람의 타고난 성품인지도 몰랐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대중의 오랜 사랑을 받고도 무대에 오르면 여전히 신인처럼 떨린다고. “어느 무대이든 항상 긴장 돼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죠. 또 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흡족함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고요. 노래하면서도 객석의 반응이 민감하게 전해지니 긴장의 감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져요. 연예인이라면 누구든 카메라 의식도 하고요. 프로일수록 더욱 그래요.”

하지만 그도 세상의 변화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트로트의 침체로 요즘 그의 마음은 허하고 어둡단다. 트로트가 설 무대를 잃어 생활고를 겪는 가수들을 보면 더욱 안타깝고.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것, 분명 트로트가 다시 사랑을 받을 때가 머지않았다고 믿는다. “한참 아이돌이 대세였는데 지금은 조금씩 시들하다는 느낌이잖습니까. 그러니 트로트가 다시 활성화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보는 거죠.” 그런 그에게 라이벌이 있다면 후배들이란다. “생각해보세요, 젊음 그 자체만이로도 빛이 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고 마음은 아닌데 몸은 따라주지 않고 거기에 예능의 감도 떨어지고, 그래서 나는 젊은 후배들과 늘 교감하려고 합니다. 또 실질적으로 후배들과 방송프로그램도 많이 하고 있고요. 늘 배우는 자세로 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요.”

그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다. 그 중 현재 군복무의 아들(이승현) 루민은 그의 뒤를 이어  가수활동 중이다. 그는 루민의 가수생활에도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따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오히려 아들의 진로에 자신이 마이너스 되는 것이 염려되어 넌지시 지켜보는 것이 아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아들 역시도 아버지가 나서는 것을 절대적으로 싫어한다고.

후배들과 교감할 수 있는 프로 계속, 신곡과 콘서트 준비도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후배들과 교감할 수 있는 프로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얼마 전 tvN ‘빨간 의자’의 토크쇼에서 가수 이진아와 미니 콘서트가 반응이 좋았다고. 새롭게 시작되는 일요일밤의 대행진에 출연할 계획도 있단다. 또 신곡 준비와 콘서트도 열 생각이라고.

“트로트는 어디에도 잘 어울립니다. 화려한 무대면 화려하게 작은 무대이면 소박하게 어디에도 잘 어울리는 게 트로트지요. 작고 소박한 곳이라도 대중들과 함께라면 어디든 언제든 찾아갈 생각입니다.

마지막 그의 신념을 묻자 그는 “무조건 감사하며 살자” 라고 했다. 그래서 하루에 300번 이상 감사기도를 한다고. “종교는 없지만 종교를 떠나서 가정이 화목하고 내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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