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보다는 문제해결책을 내놓는 문인이 되었으면...

사진='예술시대작가회' 유선자 회장

[뉴스포스트= 신현지 기자] 1987년, 1회를 시작으로 30회를 맞고 있는 <예술시대작가회>가 동인지 “타래난초가 핀 까닭”을 발간했다. 그간 30년을 꾸준히 한국문학 발전에 이바지한 <예술시대작가회>를 이끌고 있는 30회 유선자 회장을 통해 문학의 얘기들을 들어보고자 자리를 마련했다.

만남은 늘 은근한 긴장이 따른다. 하지만 이날은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문도文道를 걷는 이와의 만남이라는 생각에 긴장보다는 느슨한 품이 느껴져 그런 모양이었다. 낮 12시의 충정로, 식당을 찾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선자 회장은 로맨틱한 핑크컬러의 모자로 눈에 번쩍 띄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문득 그녀의 수필 한 구절이 떠올랐다.

<비 오는 날의 상념 1>

"칠월 장맛비가 사정없이 내린다.

주인 없는 텃밭 가 물동이에는 물이 넘친다.

고추밭 두둑을 덮은 비닐을 내리치는 비 소리가 드럼 소리처럼 웅장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걸까? 살아 있는 생명들이 빗속에서 침묵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도 호숫가에 버드나무도 고개 숙여 기도하는 듯 안으로 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물동이로 부어대는 장대비 앞에서 외경(畏敬)에 휩싸여 있다. 세상을 침묵하게 만드는 자연의 힘에 주눅 들어 오로지 빗소리만 들려오는 듯하다. 세상 모든 것을 훑고 흘러가는 비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나의 편견도 실려 보내고 싶다. .....(생략)"

칠월의 장맛비가 아닌 정월 시린 바람이 이는 충정로 거리에서 더군다나 지극히 도회적인 모습인데 이상하게 그녀의 수필의 구절과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모자 아래로 한여름 칠월 같은 풋풋한 그녀의 미소 때문인지.

모자가 잘 어울린다는 말에 그녀는 날이 차가워 대충 눌러쓰고 나왔다며 조금은 쑥스러운 빛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은근한 아집이 강한 글쟁이들의 수장으로서 겪는 어려운 속내를 털어내 보라 유도했다. 솔직히 가까이 보는 그녀는 수장으로서 갖는 포스보다는 순한 이미지로 조금은 유약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그것에 그녀는 황급히 머리를 저어 환한 웃음이었다. 마치 내 유도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전혀요. 문학단체라고 고집 내세우거나 특별할 것은 없어요. 그보다 예술시대’는 등단이라는 첫걸음을 내 딛게 한 제 모지(친정집)라서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임원진과 함께 노를 젓고 있어요. 회원들이 힘을 모아주시니 늘 감사하다는 생각이고요. 전국구로 분포되어 있는 문단회원들의 결집력이 상당히 높아요. 작년에는 회원들이 많은 수상과 새 작품집 출간이 풍성해서 일하면서도 정말 행복했어요.

2018년 강원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회원들이 『강원일보』와 『강원도민일보』에 칼럼 기고가 많아 회장으로서 기분이 무척 뿌듯했고요.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그간 고마운 분들에게 감동과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다름 아닌, 얼마 전 혜화동에서 열린 역대 회장단과 원로들 회합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어요. 그중 몸이 불편하신 한00 선생님께서는 새벽 5시에 전주에서 오셔서 진한 감동을 전해주셨지요. 후배 입장으로서 어찌나 죄송하고 감사했는지.

또 안동에 사시는 김00 시인, 대관령에 계신 제00선생님, 과천에 사시는 차00 선생님, 멀리 울산에 사시는 김00 선생님, 부산에 사시는 엄00 선생님 등. 정말 많은 선생님들께서 사랑과 배려로 응원을 해 주셔서 어느 때보다 감동 있는 자리가 되었어요.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우리의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우리를 위무해 주는 곳, 그곳이 ‘예술시대작가회’라고 생각해요. 또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노력하고 있고요. 우리 모두 ‘우리’라는 싱그러운 울타리 안에서 화합과 행복을 추구해가는 회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치 그들이 앞에 있기라도 한 듯 유 회장은 고마운 사람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따뜻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표정에 요즘 이슈로 떠오르는 문학의 블랙리스트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것에 그녀의 표정은 방금과는 다른 싸늘해졌다.

“문학의 블랙리스트요? 전 그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어울림인데 더불어 녹이는 용광로와 같은 것인데 생각이 다르다고 제쳐놓고 불평등한 대우를 한다거나 아예 문학발전기금 수혜자에서 제외하는 등의 행동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학 등 모든 예술은 스포츠처럼 ‘경쟁하는 세계’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발견하는 장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더 이상,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편 가르기식 블랙리스트는 발본색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호한 어조와 눈빛에서야 비로소 <예술시대작가회>을 이끄는 수장으로서의 면모가 느껴졌다. 그런 그녀는 화를 날 때마다 글을 쓰던 습관이 문단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전 살면서 속이 상하거나 화가 날 때, A4용지에 뭔가를 쓰고 나면 화가 가라앉더라고요. 일종의 대리만족 같은 것이지요. 감정을 대상을 향해 전달하지 않고 글로 푸는 그것을 반복하면서 문득 글이란 것이 이런 역할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문학의 등단이라는 길을 택하게 되었고요. 첫 수필집을 내면서도 이런 저의 글 습관들을 그대로 옮기기도 했고요.”

그러고 보니 유 회장의 수필집 <풀꽃에 머무는 바람의 노래>에서는 그녀의 그런 생각들이 잘 담겨 있었다.

"나의 정원에는 밤이면 별들이 내려와 이야기하고 이른 새벽 풀잎에 이슬이 하던 말도 담아 두었습니다. 세련되거나 화려하지 않더라도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나를 사랑한 사람들의 정을 옮겨 놓으려 했습니다."

보편적으로 작가들은 자신이 쓴 글에도 애착이 가는 글이 따로 있는 법이었다. 그녀 역시도 애착이 가는 작품이 따로 있다고 했다. “<풀꽃에 머무는 바람의 노래>의 수록된 작품 중 ‘비오는 날의 상념 1, 2’예요. 산책길에 폭우에 갇혀 고립과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삶이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정성스럽게 살아야 하는 일과, 겸손하게 사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비오는 날의 상념으로 완성이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 작품이 특별히 애착이 가더라고요.”

폭우에 갇혀 겸손과 정성을 생각하게 되는 작품을 썼다는 그녀의 앞으로 계획은 “예술시대의 회장에 앞서 지금껏 여러 교육단체의 강의를 해왔기 때문에 더욱더 강의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전 글보다는 강의 쪽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문화예술기관과 학교, 또 젊은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강의하면서 인생관과 사람에 대해서도 새로운 감각과 시선으로 생각도 많아졌고요. 어느새 결혼 후 강의를 한지 만 15년이 넘었어요. 이제 다른 일을 찾는다는 것은 어렵고요. 적어도 제 나이 60이 될 때까지는 강의를 하려고 합니다. 제 강의가 나이 먹을수록 관록이 붙는 것 같아서요.”

이런 그녀의 평소의 소신 역시도 지금 여기에서 충실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Here & Now죠. 그리고 매 순간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감동받고 감동 주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하자‘예요. 집에 가면 가족에게, 나가면 학생들에게 즉,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이지요.”

바쁜 일정에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는 유 회장을 위해 문단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끝으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문단에 특별히 하고 싶은 얘기요? 글쎄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간단히 말씀드릴게요. 문학은 나 홀로 하는 창작세계예요. 누구와 논의하며 창작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문인들은 뭉쳐서 단체를 형성하고 서로 문학의 감을 체득하려 해요. 문인협회도 그렇고, 예술시대도 그렇고. 문학창작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즉, 단체는 문학창작활동에 자극제가 된다는 거죠. 다른 문인들의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면서 게을러지고 나태하기 쉬운 창작혼을 일깨우는 거예요. 회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학 소재를 얻을 수도 있어요. 창작연수를 갖고 새로운 문학창작기법을 토로하고 체험하고. 그런데 이걸 잘 못 이해하는 것이 있으니 문제죠. 비난하지 않고 문제 해결책을 내놓는 문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는 ‘어떻게’를 제시하여 문단 발전에 기여하는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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