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친일청산 프로젝트 기획단 "친일을 말하고 알리는 것이 학교의 가치를 지키는 일"

지난 5일 '이화여대 친일청산 프로젝트 기획단'이 학교 정문에서 '김활란 친일행적 알림팻말 세우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최병춘 기자)

“초대 총장 동상이 부끄럽습니다”

 

식목일이었던 지난 5일 봄비가 내리는 이화여대 정문 앞에는 앳되보이는 예닐곱명의 여대생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이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이날 비속에서 자신의 학교 초대 총장인 김환란의 동상이 부끄럽다고 외쳤다. 초대 총장의 동상이 부끄러운 이유는 김환란 박사의 친일행적 때문이었다.

‘이화여대 친일청산 프로젝트 기획단’(이하 기획단)이라고 소개한 그들은 오는 9월까지 김활란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알림팻말을 세우기로 했다.

기획단은 이날 “김활란은 결코 이화의 큰 스승이 될 수 없다”며 “김활란이 이화의 역사에 오랜 시간 동안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녀의 친일 행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일적 성향이 명백하게 드러난인사를 찬양하는 동상을 유지하고 그 행적을 숨기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위”라며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에 큰 걸림돌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단은 올해 초 초대 총장 김활란 동상 철거를 위해 그의 친일 행적을 알리는 펫말을 세워보는 것이 어떠냐는 두명의 학생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그렇게 2월에 꾸려진 기획단은 대안학교 공동체 ‘청춘과 지성’에서 근현대사 역사동아리 ‘역동’에서 활동하는 이대생 1~2학년들이 주축으로 뜻을 같이하는 이대생들이 모이게 됐다. 주도적으로 참여해 활동하는 학생은 예닐곱 명으로 아직 채 10명이 안된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매주 2번씩 학내 캠페인 활동을 펼쳐왔고 지금까지 200여명의 학우들로부터 지지서명을 받으며 어느정도 성과도 내비치고 있는 단계다.

이들은 캠페인을 6월 안으로 마무리하고 여름 방학동안 제작과정을 거쳐 오는 9월 중슴쯤 팻말 제막식을 갖기로 했다. 팻말의 앞편에는 김활란의 친일 행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뒤편에는 뜻을 같이한 학생들의 이름을 함께 새겨 넣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활동이 학교측에 전달돼 김활란 동상이 교내에서 철거되기를 희망했다.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 동상이 페인트 등으로 훼손된 모습(사진=뉴시스=뉴스포스트)

'친일' 김환란 박사와 이대의 숙제

 

1945년부터 1961년까지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장 겸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한 김활란 박사는  YWCA 창설자이자 한국 최초 여성박사이다. 특히 여성교육의 선구자로 현대 여성주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동시에 친일이라는 멍에도 지고 있다. 김 초대 총장은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으로 지난 2004년 10월에 제정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올라있다.

김활란은 1936년 전후로 친일파로 변절해 일제 말기 전극적인 전쟁 협력자로 활동했다는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친일 칼럼이나 강연 논술활동을 하는 한편 1941년 창씨개명 이후 글과 강연을 통해 일제 학도병과 징용, 위안부 참여를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환란은 광복이후 이대 초대 총장을 비롯해 1950년 공보처장(公報處長)에 올랐다. 그 밖에 대한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 이사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한국여학사협회 회장 등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외교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1970년에는 정부로부터 1등 수교훈장이 추서되기도하며 빛나는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제자를 전쟁터에 보낸 친일파라는 역사의 오점을 함께 안고 있는 인물이다.

1970년대 이대에 설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그의 동상은 친일행적이 알려진 이후 이대생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동상 철거문제는 지난 2005년부터 지금까지 10여년 넘게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지난 2005년 4월 민노당 이화여대 학생위원회는 김활란 동상 앞에서 이화여대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김활란 상’ 폐지와 동상 철거를 요구했다.

이들은 당시 성명서에서 “이화의 자랑스러운 선배는 친일파 김활란 초대총장이 아닌 이화학당의 재학생으로서 독립운동에 자신을 헌신한 유관순 의사가 되어야 한다”며 “한국의 여성운동은 김활란 이화여대 총장을 극복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해 6월에는 유관순 동상 건립 요구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유관순 동상 건립을 위해 결성된 이화여대 학생모임 ‘이구동성’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화여대의 부끄러운 역사로 남아있는 김활란 초대 총장보다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받친 유관순 열사가 이화여대의 자랑스런 선배가 돼야 한다”며 “이화여대의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과오는 철저히 비판하고 공은 높이 사 기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3년에는 이대 학생들이 김활란 총장의 동상 철거 요구를 담은 쪽지(포스트잇)을 붙이는 플래시몹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3m 높이의 동상에는 “당신이 이곳에 있음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김활란 동상 철거를 요구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화에 부끄러운 딱 한 가지” 등의 내용이 적힌 학생들의 쪽지가 동상 얼굴 부분까지 빼곡하게 찼다.

이날 행사는 개교기념일(5월 31일)을 앞두고 이대 학생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를 통한 한 학생의 제안을 시작으로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낸 결과였다. 김환란 박사와 그의 동상은 이대생들에게는 뿌끄러움의 대상이 됐고 종종 학교를 향한 저항의 수단이 되기도했다.

지난해 7월 이대생들이 직장인 대상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에 반발하던 시기 김활란 총장의 동상이 페인트 등으로 낙서가 되는 등 훼손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2월 이대 학생들이 구성원 간 투표 반영 비율 등 차기 총장 선출 방식에 항의 취지로 초대 총장인 김활란 동상에 비닐을 씌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어느세 이대생들에게는 김활란 박사의 동상이 부정과 부당의 상징이 된 셈이다. 이처럼 일부 학생들의 꾸준한 철거 요구가 이어졌지만 학교측의 움직임은 없었다.

 

이화여대 친일청산 프로젝트 기획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정어진 학생(우)과 함께 참여한 장서윤 학생(좌) (사진=최병춘 기자)

'동상 철거' 다시 반복된 목소리

 

그리고 지난주 또 다시 일부 학생들이 동상철거 요구에 나섰다. 포스트잇이 아닌 팻말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동상 철거’라는 의지는 같다.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친일 청산’이라는 가치와 함께 자랑스러운 학교 만들기라는 목표 또한 같았다.

초대 총장의 친일 행적을 알린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알리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학교의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아직 총학생회나 교수 등 학내의 전폭적인지지 아래 이뤄지고 있는 만큼 주위의 시선이 두려울 수도 있는 있는 일이다.

이에 이날 기획단의 단장 정어진 학생과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장서윤 학생은 ‘김활란 친일행적 알림팻말 세우기’ 기자회견을 마치고 <뉴스포스트>와 만난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이자 “학교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당당히 답했다.

친일청산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분명했다. 옳고 그름이 분명히 하지 못한 역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역사선생님이 꿈이었다”는 정 단장은 친일 청산에 대해 “너무 당연한 문제”라며 “분명히 잘못된 친일 행위들이 청산되지 못하고 옹호되는 사회가 유지되고 후대까지 이어진다면 올바르지 못한 가치관을 가진 사회가 만들어 질 것”이라며 “학생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갔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초대 총장의 친일행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이 비단 학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5일 이화 친일청산 프로젝트 기획단이 김활란 초대 총장 친일행적 알림팻말 세우기 기자회견을 가졌다(사진=최병춘 기자)

장서윤 학생은 “학내 ECC 등 기념품 파는 곳에서도 김환란 초대 총장 사진 등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친일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며 “특히 학내 우리와 같인 일제 아픔을 갖고 있는 중국인들이 아무것도 모른체 김환란 동상 주위에서 사진을 찍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많이 난다”고 친일행적 알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장서윤 학생은 “김환란이라는 사람의 가치가 아닌 이화여대라는 공간이 가진 특수한 가치를 지키고 싶은 것”이라며 “친일에 대해 말하고 동상을 철거하게 만드는 활동이 학교의 가치를 절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올바른 역사가 살아숨시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기획단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젊은 학생들은 정치와 역사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라는 일련의 생각들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정 단장은 “이는 선입견”이라며 “알고 있는 지식이 적을 수는 있지만 이들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적은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장서윤 학생도 “역사를 시험보기 위해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은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많이 외워 아는 역사의 정보가 부족할 수 있겠지만 역사 인식에 대한 관심과 공감은 크다”고 말했다.

이들도 학교에서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을 모르진 않았다.

정 단장은 “활동과정에서 학우들의 많은 응원과 지지를 통해 공감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학우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면서 “다만 교수님이나 학교 측에서는 어쩔지 모르겠지만 반대를 한다면 감수해야할 부분”이라고 당차게 답했다. 정 단장은 “설사 반대를 하더라도 동상을 철거해 이화의 가치를 높여나가는게 무엇보다 선행돼야할 일이다. 이로인해 우리가 욕을 먹더라도 이는 이차적인 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학생들의 목소리에도 학교 측은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학생들의 알림팻말 세우기 캠페인을 비롯해 동상철거 요구와 관련해 <뉴스포스트>가 학교측에 공식 입장요구했지만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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