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 세 모녀의 비극...스토킹 범죄서 시작
스토킹 살인 낮은 형량에..."최고형 받아야" 목소리

한국 사회에서 스토킹 범죄는 ‘순애보’나 ‘사생활’ 따위로 포장되기 일쑤였다. 오랜 시간 미화된 스토킹 범죄가 처벌 대상으로 인정받기까지 족히 수십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처벌법에는 한계가 있고, 범죄는 나날이 교묘해진다. 사랑과 범죄를 구분하지 못하는 인식 역시 사회 기저에 깔려있다. <뉴스포스트>는 스토킹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기원하며 이 문제를 지면에 할애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15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 폴리스라인이 그어져 있다. 환기구에는 세모녀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국화 꽃이 부착돼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15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 폴리스라인이 그어져 있다. 환기구에는 세모녀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국화 꽃이 부착돼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서울 노원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살인 사건으로 스토킹 범죄 근절에 대한 목소리와 피해자들에 대한 애도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사건 발생 현장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애도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족을 중심으로 일각에서는 피의자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5일 이날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이른 오전인 탓에 지나다니는 주민들은 많지 않았다. 전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던 이른바 ‘세 모녀 살인 사건’이 이곳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여느 평범한 아파트 단지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살인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달랐다. 세 모녀가 단란한 가정을 이뤘을 보금자리는 현재 폴리스라인으로 출입이 원천 봉쇄됐다. 창틀에 사정없이 그어진 폴리스라인은 사건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짐작 가능하게 했다. 주변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문 앞 환기구에는 이웃 주민이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흰색 국화꽃이 피해자들의 넋을 애도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큰딸, 여동생까지 무려 한 일가족이 이곳에서 범인 김태현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안타까운 이웃의 죽음 앞에 주민들은 말을 아꼈다. <뉴스포스트> 취재진이 사건 관련 질문을 던지자 주민들의 표정은 어두워지거나, 일부는 시선을 회피했다. 답변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거나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김태현. (사진=뉴시스)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김태현. (사진=뉴시스)

유족, 스토킹 살인에 “사형 선고해야”

한 가정을 몰살했을 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 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세 모녀의 비극은 스토킹 범죄로부터 시작됐다. 김태현은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된 큰딸을 집요하게 스토킹한 정황이 경찰 조사에서 포착됐다. 큰딸이 실수로 노출한 집주소를 문자메시지에서 보고 집을 찾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주변인들은 큰딸이 김태현의 스토킹에 두려움을 호소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현은 지난달 25일 세 모녀가 살해된 아파트에서 현장 검거됐다. 살인과 절도·주거침입·경범죄처벌법(지속적 괴롭힘)·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침해)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5일 신상정보 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김태현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달 9일 서울도봉경찰서 포토라인에서 모습을 드러낸 김태현은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 송치됐다. 피해자들의 유족들은 이곳에서 김태현의 사형 선고를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관계로 재판은 열리지 않았으나 피의자의 신상까지 공개되고, 여론이 세 모녀 살인 사건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정 최고형이 선고될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언론 매체에서 드러난 스토킹 살인 사건 상당수가 범행의 잔혹성에 비해 턱없이 낮은 형량을 받았다. 이 때문에 김태현 역시 법정 최고형을 받기 어렵다는 예측도 나온다.

울산 자매 살인사건 범인 김홍일의 현장 검증 당시 모습. (사진=뉴시스)
울산 자매 살인사건 범인 김홍일의 현장 검증 당시 모습. (사진=뉴시스)

스토킹 살인, 턱없이 낮은 형량

스토킹 살인사건에서 법적 최고형이 선고되지 못한 사례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김태현과 마찬가지로 스토킹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살해했음에도 사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2012년 울산에서 발생한 자매 살인 사건의 범인 김홍일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교화 가능성 등의 이유로 최종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만큼 수형 생활 태도에 따라 감형될 수 있다.

2019년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불을 지른 후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안인득 역시 1심에서 사형을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심신미약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안인득은 지속적으로 미성년자 여성을 스토킹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여성은 안인득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지난해 경남 창원에서 40대 남성 손님이 60대 여성 식당 주인을 스토킹 하다가 살해한 이른바 ‘창원 스토킹 살인사건’, 2016년 서울 송파구에서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 하다 살해한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은 범인들은 각각 대법원에서 징역 20년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역시 법정 최고형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스토킹 근절을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이에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스토킹 범죄 처벌 한계를 개선하고 피해자 보호 법안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도 스토킹 문제를 주목하는 상황. 김태현이 안인득과 김홍일, 창원 사건 피의자, 가락동 사건 피의자의 전철을 밟지 않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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