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대처 매뉴얼 없는 대한민국
스토킹에서 살인까지...전문가들 “강력범죄 예고편”
한국여성의전화 인터뷰...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국 사회에서 스토킹 범죄는 ‘순애보’나 ‘사생활’ 따위로 포장되기 일쑤였다. 오랜 시간 미화된 스토킹 범죄가 처벌 대상으로 인정받기까지 족히 수십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처벌법에는 한계가 있고, 범죄는 나날이 교묘해진다. 사랑과 범죄를 구분하지 못하는 인식 역시 사회 기저에 깔려있다. <뉴스포스트>는 스토킹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기원하며 이 문제를 지면에 할애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지난달 26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20대 남성 김태현으로 세 모녀 중 큰딸을 스토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20대 남성 김태현으로 세 모녀 중 큰딸을 스토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의 범인 안인득, 울산 자매 살인사건의 김홍일, 서울 노원 세 모녀 살해 사건의 김태현, 그 밖에 각종 강력 범죄 사건들의 범인들. 이들은 모두 범행 이전에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스토킹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스토킹 범죄가 단순히 피해자들의 일상과 정신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중대범죄까지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일찍이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를 강력범죄의 ‘전조현상’이라고 말해 왔다. 스토킹 범죄를 막지 못하면 살인과 성폭력 등 강력범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던 것이다. 여성운동가 출신의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위원장은 스토킹 범죄에 대해 “성폭력과 폭행, 살인 등의 전조현상으로 불릴 만큼 심각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경범죄로 취급되며 처벌이 미미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토킹이 강력범죄의 예고편이라는 점은 관련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민경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2019년 발표한 ‘스토킹 피해 현황과 안전대책의 방향’ 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피해가 발생할 위험은 스토킹 피해 경험이 있을 때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13.266배나 높았다. 또한 정도희 경상대학교 법학과 부교수는 2017년에 발표한 ‘스토킹의 개념과 처벌에 관한 몇 가지 제언’을 통해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스토킹 피해 상담건수 총 240건 중 강력범죄로 이어진 사례만 51건으로 무려 21%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스토킹은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명제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적절히 대처할 시 끔찍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행히 지난달 24일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극적으로 통과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스토킹 범죄 근절의 길이 여전히 멀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의 전화는 지난 19일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처벌법의 통과로 스토킹 범죄 근절을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단 해결된 샘이지만, 과제는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회 전반 변화따라야 스토킹 근절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스토킹을 당할 시 피해자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마땅한 매뉴얼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관계자는 “(스토킹 범죄 대처에 대한) 매뉴얼 같은 건 따로 설명드리기 어렵다”며 “법 제정 후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스토킹 범죄를 다뤄야 할지, 피해자들에게 어떤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지 등을 이제 만들어야 하는 단계다. 스토킹 범죄 신고와 이후 처리 절차 자료가 쌓이면서 통계가 만들어지는 단계”라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오히려 피해자의 대처 매뉴얼보다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우선시돼야 한다는데 한국여성의전화의 입장이다. 관계자는 “스토킹이 사회에서 명확하게 범죄로 인식되고 처벌이 돼야 한다는 걸 저희는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수십 년간 요구해 왔다”며 “국가에서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범죄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범죄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결과가 나오게 되기 때문에 법이 만들어지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고 전했다.

사회 전체가 스토킹을 ‘로맨스’나 ‘사생활’이 아닌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가해자에게 ‘스토킹은 범죄이자 폭력’이라는 메시지를 피해자뿐만 아니라 주변인과 사회 전체가 던져야 한다”며 “이 부분을 계속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제 막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된 상황인데다 법 시행은 오는 9월. 당장 스토킹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많지 않다. 다만 주변인들은 스토킹 피해자들에게 직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주변인들이 피해자를 대신해 경찰에 신고하거나 상담소로 동행하는 방법도 있다. 경찰이 피해자가 원하는 조치를 하지 못할 시 주변인들이 나서서 ‘제대로 처리해달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상당히 필요하다.

아울러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조치가 공동체 내에서 이뤄지도록, 피해자의 안전을 위한 제도가 구축되도록 사회에 요구하는 것 역시 피해자들의 주변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관계자는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여성의전화는 스토킹 범죄를 ‘여성폭력’의 관점에서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스토킹만으로 피해를 호소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등 여성폭력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 적극 처벌과 피해자-가해자 분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는 게 어려운 피해자들도 많다. 스토킹이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피해자가 당할 수 있는 2차 피해 등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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