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스토킹 범죄는 ‘순애보’나 ‘사생활’ 따위로 포장되기 일쑤였다. 오랜 시간 미화된 스토킹 범죄가 처벌 대상으로 인정받기까지 족히 수십 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처벌법에는 한계가 있고, 범죄는 나날이 교묘해진다. 사랑과 범죄를 구분하지 못하는 인식 역시 사회 기저에 깔려있다. <뉴스포스트>는 스토킹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기원하며 이 문제를 지면에 할애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매우 역사적인 장면이 탄생했다. 스토킹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근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몰래 다가가다’라는 의미의 영단어 ‘Stalk’에 명사형을 붙여 명명된 스토킹(Salking)은 특정인에게 지속적으로 접근하거나 연락함으로써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주는 행위를 말한다. 명백한 범죄 행위지만, 한국에서는 개인 간의 갈등이나 사생활로 치부돼 왔다.
스토킹 범죄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골자의 스토킹 처벌법이 상식이 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 사회에서 스토킹 범죄가 공론화 된 것은 1990년대다. 1999년 김병태 의원이 최초로 스토킹 범죄 처벌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단계에서 스토킹 처벌법이 본회의 문턱을 넘어설 리 만무했다. 임기 만료로 원안은 폐기됐고, 22년 동안 비슷한 이유로 폐기 처리된 스토킹 처벌 관련 법안만 20건이 넘었다.
그 사이 스토킹 범죄로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이 지난해 경찰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스토킹 범죄 검거 건수는 2013년 312건, 2015년 363건, 2018년 544건, 2019년 583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하지만 스토킹 처벌법이 없었던 당시에는 경범죄 중 ‘지속적괴롭힘’ 항목으로 범칙금 10만 원 수준의 경범죄로 처벌됐다.
스토킹 처벌법이 좀더 빨리 통과됐다면, 무고한 희생을 막았을 거라는 가정도 있다. 경남 진주에서 사상자만 22명을 낸 안인득 사건과 지난해 경남 창원에서 40대 남성에게 살해당한 60대 여성 사례, 최근 서울 노원구에서 세 모녀가 20대 남성에게 한꺼번에 살해된 비극 역시 스토킹 범죄와 연관됐다.
스토킹 처벌법 내용은?
기대를 한몸에 안고 통과된 스토킹 처벌법의 정식 명칭은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법안은 스토킹 행위를 ▲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기 ▲ 주거지나 직장 등 일상생활 공간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기 ▲ 통신매체를 이용해 연락하기 ▲ 물건 보내거나 훼손을 통해 공포심 조장하기 등으로 규정했다. 이를 지속적, 반복적으로 하면 형사 처벌 대상이다.
지속적, 반복적으로 스토킹을 하는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이용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 벌금형으로 가중된다. 경찰은 스토킹 초기 단계에서 행위 제지나 처벌 경고 등의 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100m 이내 접근금지나 통신매체 이용 접근금지 등 긴급 조치도 가능하다. 검사는 스토킹 범죄 재발 우려 시 행위자를 구치소에 유치하는 조치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법안 내용에 여성계 분노
22년 만에 드디어 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됐으니, 이제 안심할 수 있을까. 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강하게 주장했던 여성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 ‘반복적’, ‘지속적’ 단서 조항 ▲ 피해자 주변인 보호조치 미흡 ▲ 반의사 불벌 조항이다. 반의사불벌이란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협박 등으로 원치 않는 합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시되고 있다.
경남여성단체연합은 성명문을 통해 “법안에는 스토킹 행위 대상 규정 범위에 가족과 동거인을 포함했으나 실질적 보호조치에 대한 부분이 없다”며 “법안의 범죄 구성 요건으로 나열된 ‘지속적’, ‘반복적’, ‘불안감 및 공포’는 스토킹이 횟수와 관계없이 피해자와 주변인의 일상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범죄임을 이해 못한 부분”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의사 불벌 조항 포함으로 법안이 피해자 보호와 인권보장 실효성을 담보하는지 염려된다”고 덧붙였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논평을 통해 “법안에 따르면 스토킹 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행해질 때만 ‘범죄’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단 한 번의 행위만으로도 피해자는 공포나 불안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포와 불안을 느껴야만 피해로 인정하는 것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피해자의 입을 막는 반의사 불벌 조항의 존속,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신청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명령의 부재,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지원제도 미비 등 현재 법률안으로는 피해자 보호와 인권 보장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이번 법안이 언뜻 동거인과 가족을 피해자의 범주에 포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을 스토킹 ‘행위’의 대상으로만 규정할 뿐 실질적인 보호조치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22년 만에 극적으로 통과된 스토킹 처벌법은 분명 의미가 크나 한계점 역시 명확해 보인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하지만, 한계점을 그냥 두고 가기에는 법안 제정에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렸을 뿐만 아니라 무고한 희생자 또한 너무 많다. 오는 9월부터 시행될 스토킹 처벌법이 스토킹 범죄로부터 피해자들을 좀더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향후 보완이 매우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