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기자가 고향을 생각하며 떠올린 몇 가지 단상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추석이다. 많은 이가 고향과 집을 오가느라 바쁜 계절이 왔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기자는 부모님의 고향을 내 고향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두 분 모두 돌아가신 후에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부모님을 모신 봉안당 외에는 아무 연고가 없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여기기에는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다.

50대를 넘어가니 명절이면 고향에 대한 상념에 빠지곤 하는데 추석이 다가오니 여러 단상이 떠오른다.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1.

지난 9월 초 부모님을 모신 문중 봉안당을 다녀왔다. 경상북도 상주의 한적한 낙동강 가에 자리한 봉안당에는 아버지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조부모님들의 조부모님들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그곳에 가면 조상님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기자의 부모님은 모두 경북 상주 출신이다. 기자의 형제들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가족 중 기자만 서울 태생이다.

하지만 집안에 경상도 말을 쓰는 사람들만 가득한 바람에 기자는 어릴 때 사투리로 말을 배웠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마치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경북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다. 대구는 물론 안동과 예천의 미세한 억양 차이도 구분할 수 있다.

기자의 국민학교 졸업장. 서울에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버지의 고향을 따라 본적은 경상북도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기자의 국민학교 졸업장. 서울에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버지의 고향을 따라 본적은 경상북도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사투리가 아니더라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에 다닌 기자는 경북이라는 정체성이 항상 따라 다녔다. 어릴 적 졸업장만 봐도 그렇다. 어떤 관행 때문인지 초등학교 졸업장에 기자가 경상북도 출신임을 밝히고 있다.

군대 가기 전 신체검사도 본적지인 상주에 가서 받아야 했다. 본적(本籍)이 왜 필요했을까. 아버지의 고향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그 뿌리를 잊지 말라는 의미였을까. 

이런 관행을 정치인들은 편하게 이용한다. 아버지의 고향이 제 고향이고, 어머니의 고향도 제 고향이 된다. 때로는 배우자의 고향까지 제 고향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뿌리 또는 출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2.

문중 봉안당 앞 표석에는 족보처럼 계보도가 각인되어 있다. 제일 위에는 수백 년 전 상주에 처음 자리 잡은 먼 할아버지의 이름이, 그 아래로는 그로부터 퍼져나온 후손들 이름들이 항렬에 맞춰 돌 위에 파여져 있다. 심지어 상주에서 태어나지 않은 기자는 물론 기자의 아들 이름까지도. 마치"넌 상주 사람이야"라고 세뇌하는 것처럼.

그 표석에 새겨진 기자와 아들의 이름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내 고향이 상주인 걸까?”하고. 

기자의 고향은 어디일까. 부모님과 형제들의 고향인 상주가 고향인 걸까. 아니면 어린 시절에 살았던 서울의 수유리가 고향일까. 혹은 초등학교부터 대학 시절까지 산 강남의 역삼동을 고향으로 해야 할까.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에 의하면, 고향은 “태어나 자라난 곳, 또는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을 의미한다. 보충적으로는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경북 상주가 기자의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이기에 고향이기도 하고, 서울 역시 기자가 태어나 자란 곳이기에 고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자가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은 어디일까.

3.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 계절과 시절을 알 수 있다. 요즘에는 추석을 겨냥한 광고가 여럿 눈에 띈다. 대부분 명절, 귀성, 고향, 선물 등과 관련한 소재와 주제로 광고를 만들었다. 그런데 고향 집과 관련한 몇몇 광고 영상은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영상들을 보면, 고향은 차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곳에 있다. 그곳은 도시가 아닌 시골이다. 도시에서 온 듯한 자녀들과 시골에서 사는 듯한 부모가 풍성한 분위기에서 토속적 음식을 즐긴다. 그리고 자녀들은 다시 도시를 향해 먼 길을 떠난다. 고향은 푸근한 모습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도시로 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곳이다.

추석을 겨냥한 광고. (출처: 정관장 광고 갈무리)
추석을 겨냥한 광고. (출처: 정관장 광고 갈무리)

물론 그 영상들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이 고향인 사람이 많은 만큼 도시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도 많다. 어쩌면 지금 젊은 세대들은 어릴 때 놀던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가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기자도 그렇다. 부모님의 고향 상주를 고향으로 삼기에는 너무 멀다. 거리가 먼 것도 있지만 그곳에 가더라도 물 한 잔 얻어 마실 친척이 아무도 없다. 친척 어른들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자녀들 모두 다른 도시에 나가 산다. 지금 부모님의 고향에는 얼굴 모르는 사람들이 산다.

그런 곳을 고향이라고 찾아가기에는 너무 멀다. 다만 부모님을 모신 봉안당이 있기에 명절을 앞두고 아침 일찍 떠나 잠시 머물다 해지기 전에 돌아올 뿐이다.

기자는 어릴 적 살던 동네들이 간혹 떠오른다. 여러 곳으로 이사 다녔기 때문에 그런 동네가 여럿이다. 지금도 눈에 선한 수유리의 골목길, 친구들과 놀던 역삼동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명절이 다가오니 그 모든 곳이 그립다. 

그래서 간혹 찾아가 본다. 모습이 많이 바뀌었지만 예전 그대로인 동네 구획을 보며 옛 동네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4.

고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것이 있다. 물론 가족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어릴 적 친구들도 함께 떠오른다. 나이 들수록 친구가 그립다더니 기자가 딱 그런 모양이다. 기자는 초등학교 동창들 대부분과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연락이 잘 유지되는 친구들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명절 연휴만 되면 어릴 적 친한 친구들과 만난다. 명절에 친구를 만나니 다들 명절 기분이 난다고들 한다. 어느 지인이 명절이면 고향집 어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어릴 때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던데 아마도 같은 기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친구들과 함께 자란 곳이 고향이지 않을까.

그렇다. 고향은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곳이다. 고향은 지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친구와 함께한 추억처럼 정서를 공유한 곳이라는 의미가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기자는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많은 곳을 고향으로 정의하고 싶다. 물론 부모님의 고향 경북 상주는 기자의 뿌리가 이어져 온 곳이라는 의미가 크다. 다만 고향을 정의하는 조건 중에는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제일 많은 지분을 차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도 어릴 적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 방역 수칙에 맞춰야 하지만 한동안 만남이 쉽지 않았기에 더욱 반가운 모임이 될 듯하다.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마음 편히 만나는 친구가 있는 곳,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그곳이 당신의 고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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