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원회 ‘LNG 운반선 지배적 위치’ 우려로 불허
현대중공업 “EU 결합심사 항소 등 결정된 것 없어”
포스코·한화·SM그룹 등 인수 후보 물망
한화그룹 “전혀 관심 없다” SM그룹 “계획 없어”
7대 핵심 사업에 ‘조선·해운’ 없는 포스코도 가능성 낮아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결합이 사실상 좌초되면서, 재계에서는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의 승계 작업이 더욱 힘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들어갈 수조 원대의 자금이 정기선 사장이 추진하는 미래 신사업에 투입되면서 ‘정기선 체제’를 공고히 할 것이란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EU 집행위원회,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불허


지난 13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허했다. 양사의 결합이 글로벌 LNG 운반선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형성해 경쟁을 저해한다는 게 이유였다. 2019년 12월 결합심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나온 결정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019년 3월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체결한 뒤 한국과, EU, 중국, 싱가포르, 카자흐스탄, 일본 등 6개국으로부터 합병 심사를 받아왔다. 이 가운데 중국과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등은 ‘조건 없는 승인’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최근 EU가 양사의 기업결합을 불허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 등 나머지 심사국의 판단과 무관하게 기업결합이 무산됐다. 


현대중공업그룹, 인수 공식 중단...정기선 체제 강화 계기 전망도


EU 집행위원회의 불허 결정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은 14일 이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공식 중단한 상태다. 이날 현대중공업지주는 한국과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에 양사의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한다고 통보했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이 CES 2022에서 그룹의 미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이 CES 2022에서 그룹의 미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지난 17일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EU 집행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 항고하는 등의 계획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며 “현물출자, 투자계약 등 관련 계약들의 해제 여부와 향후 처리 방안 등은 결정되는 시점에 추후 공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에 대한 EU의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인수 불발이 오히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사장의 승계와 리더십을 공고히 할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사용하려던 6조 원 규모의 현금자산을 신사업에 투자하는 호기를 맞았다는 설명이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및 한국조선해양 사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2’에서 글로벌 무대 데뷔전을 가졌다.

이날 정 사장은 CES 2022 현대중공업그룹 부스에서 연 프레스컨퍼런스에서 “다가올 50년은 세계 최고의 Future Builder가 돼 더 지속가능하고 더 똑똑하며 더 포용적인,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 사장과 그룹 관계자들은 △아비커스의 자율운항기술 △액화수소 운반 및 추진시스템 기술 △지능형 로보틱스 및 솔루션 기술 등 혁신기술로 세계 무대를 주도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자금이 최대 6조 원으로 예상됐는데, 이 자금을 정 사장이 추진하는 신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 혁신기술 투자가 이뤄진다면, 정 사장의 그룹 내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한화·SM그룹 등 새 인수 후보 물망...가능성은 낮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2019년 2월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뒤 “산업은행 회장으로서 마지막 미션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겠다”고 양사 기업결합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말에는 “인수가 무산되면, 플랜B, 플랜C, 플랜D를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17일 정부와 재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조만간 대우조선해양의 새로운 인수 후보를 선정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정부는 EU의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불허 결정 직후 유감을 표명하고 “대우조선해양의 근본적인 정상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새로운 민간 인수 후보로 포스코와 한화, SM그룹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실제 이들 기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M그룹은 지난 2013년 대한해운 등 굵직한 조선·해운 부문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바 있지만, 이번 인수합병에 나설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는 입장이다. SM그룹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관련해 논의되고 있는 바가 전혀 없고, 공식 입장도 없다”고 전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선 전례가 있는 한화그룹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에 나선 바 있다. 당시 한화-한화건설-한화석유화학 등 한화컨소시엄은 대우조선해양 인수가격으로 6조 3000억 원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후 산업은행과 인수 자금 분할납입을 놓고 이견이 생겨 결국 인수에 실패했다.

이날 한화그룹 관계자는 “현재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전혀 관심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스코 측은 새로운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포스코가 지난해 12월 공식 발표한 ‘7대 핵심 추진 사업’에 ‘조선·해운’ 부문은 제외된 까닭이다. 

당시 포스코는 △철강 △이차전지소재 △리튬/니켈 △수소 △에너지 △건축/인프라 △식량(Agri-Bio) 등 7대 핵심 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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