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생 정기선 HD현대 사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절친 사이’
친분 깊은 동년배 MZ세대 총수들, STX중공업 인수 놓고 신경전
주요 계열사 이사회 이름 올리며 그룹 내 입지 강화하는 김 부회장
ESG경영으로 중공업 이미지 탈피해 종합 테크기업 꿈꾸는 정 사장

1980년대 이후 출생한 MZ세대가 조직의 허리를 넘어 머리를 맡는 시대가 도래했다. 톡톡 튀는 개성으로 입사하자마자 이른바 ‘꼰대’들을 긴장시켰던 MZ세대가 스스로 기성세대로 접어드는 아이러니한 시간을 맞이하는 셈이다. 재계도 세대교체로 숨 가쁘다. 재벌 3세 MZ세대 총수들이 속속 경영일선에 등판하며 이재용·최태원·신동빈 등 기성 경영인들과 국내외 비즈니스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뉴스포스트가 MZ세대 총수들의 비즈니스 전략을 조명해본다. - 편집자주 

김동관 한화 부회장(왼쪽)과 정기선 HD현대 사장. (사진=뉴스포스트DB)
김동관 한화 부회장(왼쪽)과 정기선 HD현대 사장. (사진=뉴스포스트DB)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한화그룹과 HD현대의 MZ세대 총수들은 현재 국내 비즈니스 현장에서 가장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그룹 모두 승계 구도가 명확한 데다, 차기 총수가 될 경영인들이 동년배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생인 정기선 HD현대 사장과 1983년생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재계에서 소문난 ‘절친’ 사이다. 정 사장과 김 부회장의 친분은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정 사장과 김 부회장의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장충초등학교 동창이자 친구 사이였다. 

이런 인연으로 김 부회장과 정 사장은 조모상과 결혼식을 서로 챙길 만큼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STX중공업 인수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등 비즈니스 영역이 겹치며 라이벌 구도를 이어가고 있다. 

친분 깊은 동년배 MZ세대 총수들이지만, 경영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정기선 사장이 참신한 몽상가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반면, 김동관 부회장은 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며 그룹 지배력 강화에 애쓰고 있다.


오래된 미래 김동관 부회장...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맡으며 그룹 지배력 강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에너지 기업 최고경영진들과 잇달아 만나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사진=한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에너지 기업 최고경영진들과 잇달아 만나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사진=한화)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그룹 내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와 기타비상무이사 등을 겸직하며 그룹 내 영향력을 확대하고 승계 구도를 굳히고 있다. 선배 총수들이 주요 계열사 임원을 겸직하며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전통적인 전략을 답습한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의 미등기 임원을 맡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롯데지주 대표와 롯데케미칼 대표, 롯데웰푸드 대표 등 6개 계열사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는 등 주요 계열사 임원 겸직은 재계 총수들의 전통적인 지배력 강화 전략이었다.

24일 기준 김 부회장은 지주사 한화를 포함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솔루션 등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또 김 부회장은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뒤 이날 새 사명으로 닻을 올린 한화오션의 기타비상무이사도 맡아 경영에 참여한다. 김 부회장이 한화그룹의 육·해·공 주요 계열사 이사회에 모두 이름을 올리며 그룹 전체 비즈니스를 이끌게 된 것이다. 

지난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에너지세션 기조연설에 나선 김동관 부회장. (사진=한화그룹)
지난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에너지세션 기조연설에 나선 김동관 부회장. (사진=한화그룹)

이에 따라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의 방산부문 사업구조 개편도 가시화됐다. 한화그룹은 한화오션 출범을 계기로 종합 방산업체로 몸집을 키워 ‘한국판 록히드마틴’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숙원이 완성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셈인데, 그 예봉에는 김동관 부회장이 주요 계열사들을 이끌며 창끝을 세우고 서게 됐다.

이에 따라 재계는 김 부회장이 한화오션 이사회까지 참여하며 승계 구도를 더욱 굳혔다고 보고 있다. 지주사 한화와 한화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등 한화그룹의 미래 사업 중추가 모두 김 부회장의 수중에 들어가며 그룹 내 위상이 한층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오지 않은 미래 정기선 사장... “일하고 싶은 회사 만들 것” HD현대 쇄신 박차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 참가해 밸런스 게임을 하고 있다. 소통에 진심인 정 사장은 지난해 12월 경기도 판교 GRC에서 열린 HD현대 50주년 비전 선포식에서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 것”이라며 새 기업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사진=HD현대 공식유튜브 갈무리)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 참가해 밸런스 게임을 하고 있다. 소통에 진심인 정 사장은 지난해 12월 경기도 판교 GRC에서 열린 HD현대 50주년 비전 선포식에서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 것”이라며 새 기업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사진=HD현대 공식유튜브 갈무리)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ESG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 사장의 그룹 혁신 의지는 사명 변경에서부터 엿보인다. HD현대는 지난해 12월 26일 현대중공업그룹에서 바뀐 이름이다. 이날 HD현대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룹 이름을 변경했다. 중공업 일변도 이미지를 탈피하고 ‘테크기업’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정 사장의 혁신 의지가 보인다.

정 사장 취임 후 HD현대는 본사를 서울에서 분당으로 옮기며 새집으로 이사까지 감행했다. 지주사 HD현대와 주요 계열사들은 지난해 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신사옥 ‘GRC’로 입주해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ESG경영에서 HD현대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방향은 ‘가족친화적 기업문화 조성’이다. 이를 위해 GRC에는 ‘드림 보트’라는 이름의 직장어린이집이 올해 3월부터 문을 열고 HD현대 아이들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HD현대가 분당 IT 기업들에 종사하는 젊은 인재들을 끌어오기 위해 기존 중공업 중심의 ‘올드한 이미지’를 탈피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기선 사장은 올해 1월 CES 2023에 참석해 바다를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다.(사진=HD현대)
정기선 사장은 올해 1월 CES 2023에 참석해 바다를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다.(사진=HD현대)

정기선 HD현대 사장의 글로벌 무대 데뷔전도 ESG경영에 방점이 찍혔다. 정 사장은 올해 초 CES 2023에 참석해 ‘바다의 근본적 대전환’을 선언하며 글로벌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올해 1월 4일(현지시간) 정 사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HD현대는 퓨처빌더로서 바다의 근본적 대전환, 즉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인류 영역의 역사적 확장과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성장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이를 위해 그룹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해양, 에너지, 산업기계 기술력을 활용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고, 안전하게 운송 및 활용하는 밸류체인을 구축함으로써 바다를 ‘지속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의 장’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글로벌에 공언했다.

최근 HD현대는 대한해운과 포스코 등과 함께 ‘조선·철강·해운 3자 간 탄소중립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정 사장의 탄소중립 의지의 첫발을 뗐다. HD현대의 오션와이즈(OceanWise)를 기반으로 친환경 글로벌 해상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오션와이즈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술로 선박 운항을 최적화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솔루션이다.

정 사장의 테크기업으로의 그룹 쇄신 의지는 HD현대의 연구개발(R&D) 비용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HD현대의 조선업 계열사인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중공업은 올해 1분기에만 연구개발에 259억 600만 원을 투입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보다 50% 늘어난 규모다. HD현대는 향후 연구개발 인력 채용도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정기선·김동관, STX중공업 인수전서 첫 충돌...‘바다의 왕자’ 경쟁 가속


정기선 사장과 김동관 부회장은 최근 비즈니스에서 첫 결전을 벌였다. 지난해 말 STX중공업 인수전에서 적수로 만난 것이다.

매물로 나온 STX중공업은 HD한국조선해양과 한화그룹의 관심을 받았다. STX중공업의 최대주주이자 사모펀드인 파인트리파트너스도 지난해 말 STX중공업 지분 47.79%인 1356만 3000주 매각을 예고하기도 했다.

조선업계의 큰 관심을 받았던 정 사장과 김 부회장의 첫 충돌은 다소 싱겁게 끝났다. 한화가 STX중공업 대신 HSD엔진 인수로 뱃머리를 선회하면서다. 한화그룹이 인수전에서 발을 빼면서, 단독 입찰에 참여한 HD한국조선해양도 가격을 이유로 STX중공업 인수를 포기했다.

STX중공업 인수가 무산된 이후 재계에서는 인수는 뒷전이고 재벌 3세 MZ세대 총수들의 자존심 싸움이었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두 그룹 모두 STX중공업이 절실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절친인 두 사람이 인수전에 나란히 참전 의사를 타진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STX중공업 인수를 놓고 신경전이 한창일 당시 기자와 만난 조선업 관계자들의 중론도 STX중공업이 두 그룹의 명운을 가를 만큼의 큰 가치는 없다는 것이었다. 

재계는 한화오션 출범 이후 ‘바다의 왕자’ 자리를 놓고 두 총수의 비즈니스 경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한화오션이 출범한 24일 HD현대도 글로벌 친환경 해상 공급망 업무협약 소식과 함께 조선 계열사들의 연구개발 투자 확대 계획을 전하며 맞불을 놓아 전초전을 펼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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