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승강기 시장 점유율 1위 ‘현대엘리베이터’, 쉰들러 경영권 흔들기 나서
승강기업계 “글로벌에 인수된 토종업체 中으로 설비이전 전례...생태계 우려”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국내 승강기 산업의 주도권을 뺏으려는 다국적 승강기 업체 쉰들러 홀딩 아게(쉰들러)의 야욕에 대항해 적극적인 경영권 방어에 나서고 있다. 쉰들러가 지난달과 이달 초 15만주가 넘는 물량을 장내매도해 주가가 떨어지자, 현 회장은 3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으로 반격에 나섰다.
쉰들러, 현대엘리베이터 15만주 장내매도...주가 폭락
지난 6일 현대엘리베이터는 공시를 통해 내년 1월 5일까지 300억 원을 투입해 자사주 취득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날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번 자사주 매입은 쉰들러 측의 계속된 주식매도에 대응한 소액주주 보호차원”이라고 밝혔지만, 업계는 그 배경에 쉰들러를 견제하는 경영권 방어 목적이 있다고 보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는 지난달 21일부터 26일까지, 또 이달 4일 등 6거래일에 걸쳐 15만주가 넘는 보유 주식을 장내매도했다. 이후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보유 지분은 16.18%에서 15.81%로 줄었다. 물량이 쏟아진 여파로 현대엘리베이터의 주가도 같은 기간 주당 4만3100원에서 이달 6일 주당 3만9050원까지 하락했다. 주가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자사주 취득을 밝힌 다음 거래일부터 소폭 회복세다.
쉰들러는 지분 매도 사유를 ‘투자자금 회수목적’으로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쉰들러가 40억 원 정도의 시세차익 때문에 지분을 매각했다는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쉰들러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쉰들러그룹의 시가총액은 183억 프랑(한화 약 26조 9114억 원)에 달했다.
국내 승강기업계 관계자 A씨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시가총액이 수십조에 달하는 쉰들러그룹이 겨우 수십억 원의 시세차익 때문에 지분을 매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국내 가장 큰 승강기 시장 점유율을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쉰들러는 지분을 매각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10% 이상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국내 승강기 업계에서는 역시 의도가 있는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날 쉰들러 측은 “현재의 긍정적인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를 고려해 보유한 주식 일부를 매각하고 있다”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10% 이상 보유해 대주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현재 보유 지분에서 5% 이상 더 매각할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돼서다.
글로벌 3위 내수시장 갖춘 한국 노리는 쉰들러, 현 회장 압박 나서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노리는 배경에는 매력적인 국내 승강기 시장이 있다. 국내 승강기 시장은 중국과 인도에 이어 글로벌 3위의 내수시장을 갖췄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내수시장 40%를 점유한 국내 1위 업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난해 매출 2조 1293억 원 가운데 승강기 설치 및 유지·보수 등 엘리베이터사업부 매출만 1조 9296억 원으로 90.6%에 달한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엘리베이터사업부 매출의 80%는 내수시장 매출이다.
국내 승강기업계 관계자 B씨는 “미국과 호주 등 가용부지가 많고 아파트 주거문화가 지배적이지 않은 국가에서는 엘리베이터 수요가 많지 않다”며 “우리나라와 중국, 인도처럼 가용부지가 적거나 아파트 주거문화가 발달한 국가에서는 엘리베이터 내수시장이 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에 욕심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녹록지 않은 상황도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흔들기에 드라이브를 건 요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현 회장이 현대상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2014년 체결한 파생상품(TRS) 계약으로 7000억 원의 손해를 봤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쉰들러의 주장을 대법원이 올해 초 일부 인용하면서다.
주주대표소송 패소 확정판결에 따라 현 회장은 배상금 1700억 원과 지연이자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4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채권을 전액 회수했다. 문제는 주가가 하락하면 대출기관이 담보가치 하락 위험 회피를 목적으로 임의상환하거나 추가 담보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쉰들러는 이를 노리고 주가를 떨어뜨려 현 회장에 압박을 넣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쉰들러 측은 경영권 흔들기 의도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간 수십 건의 기업 인수합병으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한 쉰들러그룹이만, 그 가운데 적대적 인수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 주주대표소송과 주식매도 같은 일련의 과정들이 현대엘리베이터 흔들기가 아닌 주주이익 보호와 시세차익 실현 등 순수한 목적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한편, 국내 승강기업계는 쉰들러의 국내 승강기 시장 잠식 시도를 경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승강기업계 관계자는 “과거 LG산전 엘리베이터사업부와 동양엘리베이터 등 토종 승강기 업체들이 글로벌기업 오티스와 티센크루프에 인수된 이후 일부 조립시설만 남기고 생산설비를 중국으로 옮긴 전례가 있다”며 “국내 1위 토종 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쉰들러에 인수되면 생산설비 이전으로 승강기라는 국내 산업의 한 축이 완전히 무너지는 부작용이 전망된다”고 우려했다.
- [압구정현대 수주전] 현대건설,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로 승부수 던질까
- [GS그룹 승계] 허윤홍 GS건설 사장 ‘신사업 박스권’ 미등기임원 장기화
- [MZ총수열전] 정통파 전략가 한화 김동관, 참신한 몽상가 HD현대 정기선
- 동국제강 형제경영...장훈익·장선익 승계 셈법 복잡해졌다
- 한컴그룹, 위기의 아빠와 기회의 딸...김정실 이사 선택이 관건
- 박정원의 두산에너빌리티 사용법, 이재명 사법리스크 줄타기
- [K-ESG] “HD현대 ‘드림 보트’ 어린이집요? 만족도 100%요”
- [현대차 대해부] ② ‘미래 모빌리티’ 판도라 상자 열었다
- LH “시공사 잘못”...‘순살아파트 2탄’에 화들짝
- [CES 미리보기] HD현대, 해상 넘은 '육상' 비전 선보인다
- 삼성물산·현대엘리베이터, 행동주의펀드 실력행사[2024주총]
- 현대그룹, '비전포럼' 20년째 개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