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로 무너진 故 이건희 선대회장 꿈 ‘삼성자동차’
자동차·전자 총체 ‘모빌리티’ 삼성전자 전장·로봇 승부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설에 앞서 인사말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그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돼 지난 15일 복권 1년을 맞았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설에 앞서 인사말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그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돼 지난 15일 복권 1년을 맞았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지난 15일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 1년을 맞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신수종(新樹種) 사업을 찾기 위한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낙점한 신사업을 놓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완성차 시장진출의 꿈이 간접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이 미래 사업 분야 가운데 하나로 모빌리티의 핵심인 ‘전장’과 ‘로봇’에 방점을 찍으면서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삼성자동차’, 외환위기로 물거품


故 이건희 선대회장은 재계의 대표적인 자동차 매니아로 알려졌다. 완성차 시장 진출에 관심이 컸던 이건희 선대회장은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오른 직후인 1987년부터 삼성의 자동차 사업 관련 TF에 시동을 걸었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1997년 5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설비가동식에 참가해 개발 중인 자동차 시제품(KPQ)을 시승하고 있다. (사진=르노코리아자동차)
이건희 선대회장이 1997년 5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설비가동식에 참가해 개발 중인 자동차 시제품(KPQ)을 시승하고 있다. (사진=르노코리아자동차)

이 선대회장은 지난 1995년 부산 신호공단을 근거지로 한 ‘삼성자동차’를 설립해 마침내 승용차 사업에 진출한 바 있다. 자본금 1000억 원으로 출범한 삼성자동차는 ‘SM5’를 선보이며 삼성의 완성차 시장 포석을 다지는 듯했다. 

이 선대회장이 당시 완성차 신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자신감의 배경에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이끌었던 반도체 혁신이 있었다. 삼성이 이병철 창업회장의 1983년 반도체 분야 진출 결단으로 90년대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도약한 전례가 있어서다. 창업회장 시절부터 ‘위험한 투자’라고 비판받은 신사업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DNA가 있는 것이다. 이 선대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창업회장이 이룬 신사업 성공 DNA를 ‘삼성자동차’로 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고, 이어 기아차 도산 사태 등을 맞으면서 이건희 선대회장도 평생의 꿈이었던 삼성자동차를 정리해야 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성자동차는 2000년 외국계 완성차기업 르노가 인수해 르노삼성자동차로 사명을 바꿨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르노삼성차가 ‘삼성’을 지우고 르노코리아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해 ‘삼성자동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2017년 인수한 하만 매출액 우상향...그룹 ‘효자’로 떠올라


삼성전자가 지난 2017년 인수한 글로벌 전장기업 하만은 매출이 우상향하며 그룹 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부진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DS(반도체)부문에서 4조 36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9조 원을 투자해 인수한 하만은 지난해 매출액 13조 2137억 원을 기록했다. 2017년 매출액 대비 86% 증가한 수준이다. 하만의 영업이익이 삼성전자 전체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0.1%에서 지난해 2.0%로 늘어났다.

하만은 글로벌 지점 통폐합으로 체질 개선에도 나섰다. 2017년 하만은 △미주 15곳 △유럽 33곳 △아시아(중국 제외) 9곳 △중국 11곳 등 지점을 운영했지만, 하지만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미주 지점 2곳과 유럽 지점 4곳, 아시아(중국 제외) 4곳, 중국 3곳 등 지점들을 통폐합한 바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그룹 내 ‘효자’로 떠오른 하만 사업 챙기기에 나섰다. 이 회장은 지난해 6월 유럽 출장 후 귀국 자리에서 “하만 카돈을 갔었다”며 “자동차 업계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불황에도 DS투자 증액하는 삼성...전장·로봇 모빌리티 시너지 낼까


업계는 삼성전자가 올해 하반기로 전망되는 반도체 업황 반등에 앞서 대대적인 설비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17일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보유 중인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지분 일부를 매각해 3조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재계는 삼성전자가 ASML 지분 처분으로 얻은 총알을 경기 평택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등에 짓는 반도체 생산라인에 투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올해 하반기 반도체 업황 반등에 대비해 선제적 ‘초격차 베팅’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에도 23조 2473억 원을 DS 신·증설에 투자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이 투자를 위해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 원을 빌리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에도 D램과 파운드리, 패키징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하만이 'CES 2023'에서 선보인 미래형 모빌리티 솔루션 '레디 케어' 서비스를 참관객들이 체험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와 하만이 'CES 2023'에서 선보인 미래형 모빌리티 솔루션 '레디 케어' 서비스를 참관객들이 체험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업황 반등을 계기로 글로벌 전장 사업의 성장세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삼성전자 DS부문과 하만부문의 본격적인 시너지가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창사 이래 최초로 오는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자동차 산업 전시회인 ‘IAA 모빌리티 2023’에 참가한다.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 제품군’ 전반을 소개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도 모빌리티 전략을 내놓고 있다. 모빌리티로 재편되는 완성차 시장의 수요에 맞춰 고부가가치 차량용 반도체 기술 시장을 선점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디스플레도 페라리와 BMW, 아우디 등 세계 주요 완성차기업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며 모빌리티 시장진출에 나섰다.

한편, 올해 초 삼성전자가 M&A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밝힌 만큼 삼성의 모빌리티 전략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월 6일(현지시간) ‘CES 2023’에서 “삼성이 인수합병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보안 문제로 자세한 부문은 밝히지 못하지만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한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로봇 사업 진출도 공식화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로봇 개발업체 레인보우로보틱스에 590억 원을 투자해 모빌리티 경쟁력을 높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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