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인 서울대 교수 “관치 우려가 문제...KT 대표적 사례”
이상훈 변호사 “KT 사태, 국민연금이 가이드라인 내린 것”
원종현 기금위 위원 “‘비공개’ 조율로 자본시장 우려 없어”
김정묵 한국노총 부장 “국민연금 개정안, 정부 코드인사 우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국민연금, 경찰·검사·판사 합친 ‘갑질’”
이수원 대한상의 팀장 “법적 근거 없는 수책위 활동 제한해야”
손석호 한국경총 팀장 “국민연금 권한·책임 떠넘기기 중단해야”

국민연금공단 본부에서 개최된 창립 35주년 기념식에서 김태현 이사장이 창립기념사를 연설하고 있다. (사진=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본부에서 개최된 창립 35주년 기념식에서 김태현 이사장이 창립기념사를 연설하고 있다. (사진=국민연금공단)

[뉴스포스트=이상진 기자]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거수기’라고 조롱받던 국민연금이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수탁자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금융지주·KT 등 민간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들어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 상황이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뉴스포스트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및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과 재계, 노동계, 학계, 법조계 등의 의견을 들어봤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전년 대비 7.1%p 증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입각한 의결권 행사가 늘었다는 사실은 수치로 확인된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공시한 ‘수탁자 책임 활동 내역 등과 관련한 통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국내 기업 1143개 주주총회에서 3439개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이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은 2625건, 반대는 803건이었다.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이 지난 2021년 16.25%에서 지난해 7.1%p 늘어 23.35%에 달했다. ‘거수기’ 오명을 확실하게 벗어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주총 안건 반대율은 △2009년 6.06% △2010년 8.43% △2011년 7.89% 등이었다가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10%를 넘어섰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의 대표적인 사례로 대한항공과 지주사 한진칼(KAL)이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2019년 3월 전체회의를 열고 한진칼에 대해서는 경영 참여를 위한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대한항공 지분의 11.7%를 가진 2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의 반대로 조양호 전 회장은 연임에 실패한 바 있다.

향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사례는 더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도 “KT와 포스코, 금융지주 등 최고경영자 선임 과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주주이익에 부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KT는 구현모 전 대표가 연임을 공식 발표한 뒤 국민연금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자 연임을 포기했다. 또 국민연금이 반대 또는 중립으로 의결권을 결정한 KT 사외이사 후보 3인도 주총 직전 줄사퇴했다. 이후 윤경림 전 KT 사장이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선정됐지만,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반대표가 예상되자 그 역시 후보자 자격을 내려놔야 했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더 활성화 해야” vs “민간기업 경영활동 위축”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바라보는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둘로 나뉜다. ‘더 적극적이고 투명한 절차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해야 한다는 측과 ‘민간기업 침해 우려가 큰 까닭에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시각이 맞서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포스트 이상진 기자)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조양호 전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한 대한항공-한진칼 사례는 스튜어드십 코드라고 볼 수도 없는 소극적 주주 활동에 불과하다”며 “재계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연금사회주의’라는 프레임으로 매도하는데, 이는 매우 부적절한 행태”라고 했다.

이어 박 교수는 “문제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가 관치로 흘러가는 것”이라며 “최근 KT 차기 대표 선임을 둘러싼 논란이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관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 활동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비공개’로 활동하는 수책위 특성상 기업의 경영 활동이나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향후 주주 이익에 악영향을 끼칠 문제를 사전에 해소할 수 있다는 이유다. 수책위는 연금기금의 책임투자와 주주권 행사 등 주요 사항을 검토·심의하는 외부 위원회다.

원종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상근전문위원은 “국민연금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던 건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이라며 “당시 변호사와 회계사 등 외부 전문가들로 이뤄진 수책위만 있었어도 그런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원 위원은 “수책위는 기본적으로 기업명을 비공개로 하면서 경영활동 개선을 위해 활발한 물밑 작업을 하기 때문에 주가 하락 등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항공과 남양유업 등 사례는 사전 작업으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기금위와 수책위의 ‘중점 관리’가 들어간 특수한 케이스”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사진=뉴시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사진=뉴시스)

수탁위 활동의 독립성이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지난 3월 기금위가 의결한 ‘수책위 운영규정 개정안’을 두고서다. 당시 기금위는 산하 수책위 위원 총 9인 가운데 3인에 대해 전문가 단체로부터 추천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규정 개정 전 수책위는 △사용자(대한상의·경총) △근로자(한노총·민노총) △지역가입자(한국공인회계사회·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세 부문 가입자 단체가 각 1명씩 추천한 상근전문위원 3명과 각 2명씩 추천한 비상근위원 6명으로 구성됐다. 

이상훈 금융경제연구소 소장 및 변호사는 “대표성 중심에서 자산운용 등 전문가들을 폭넓게 위촉해서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 그렇게 운영될지는 의문”이라며 “9명 중 위원 3명을 교체하는 건 정부 입맛에 맞는 결정을 내리기 위한 의도가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2월까지 수책위 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전문가 3인을 수책위 위원으로 선임하는 이번 규정 개정안 이전부터 수책위 활동을 제한하려는 국민연금의 의도가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소장은 “KT 구현모 전 대표 연임과 관련해서 수책위에서 반대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국민연금에서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수책위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소장은 “향후 수책위 독립성 강화와 함께 자본시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스튜어드십 코드 활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수책위 위원 추천 권한이 있는 노동계도 기금위 개정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수책위 독립성을 해친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정묵 한국노총 정책본부 부장은 “이번 개정안은 절차상으로, 내용상으로 하자가 있다”며 “가입자 단체가 추천하는 위원들로 구성하는 수책위에 이름만 전문가 단체지 사실상 정부 추천 인사들이 온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 부장은 “결국 수책위가 정부 입맛에 맞춰 개별 기업의 주총에서 입김을 대신 행사하는 기구로 전락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명분 아래 기업들에 '갑질'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명분 아래 기업들에 '갑질'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뉴시스)

반면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가 ‘민간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행태’라는 의견과 함께 수책위가 행사하는 권한에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로 대한항공 사례를 드는 데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같은 일”이라며 “조양호 전 회장의 한진칼 경영원 박탈은 ‘땅콩 회항’이나 ‘물컵 갑질’ 등에 대한 일종의 ‘괘씸죄’ 성격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이 경영성과나 능력과 상관없는 사적인 일을 놓고 경영권을 박탈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했다는 지적이다.

이어 최 교수는 “국민연금이 정부와 국민, 기업의 돈으로 마치 경찰처럼 수사하고, 검사처럼 기소하고, 판사처럼 판결하는 ‘갑질’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최근에도 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놓고 시장과 다른 엉뚱한 의결권 행사로 기업 활동을 위축하고 자본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수책위에 전문위원 3인을 포함하도록 한 규정 개정안이 그나마 향후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에 전문성을 갖추게 하는 요소”라고 평가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수책위 활동 자체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공단이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수책위에 권한을 떠넘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수원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 팀장은 “수책위는 자문기구에 불과한 외부 위원회”라며 “기금위의 자문기구인 수책위가 모법 법령 위임 규정도 없이 책임투자와 주주권 행사 등을 검토하고 결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수책위 위원들 자체가 연금의 운용과는 관련이 없다”며 “국민연금공단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려면 법적 근거에 맞게 스스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석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 팀장도 “수책위 설치 규정은 2021년 6월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생겼고 같은 해 12월 개정법이 시행됐다”며 “문제는 법에 수책위가 기금위의 안건을 사전에 전문적으로 ‘검토·심의’만 하는 기구로 규정됐는데 ‘결정’까지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손 팀장은 “원칙적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해야 하는 주주권 행사 방향, 의결권 행사, 비공개 대화 기업 선정, 주주제안, 대표소송 등을 수책위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금운용본부는 기금운용의 권한과 책임을 외부 기관인 수책위에 떠넘기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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