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이어 미국도 탈원전 기조
K-원전, 미국 SMR 시장 '정조준'
주력 사업 중심으로 실적 안정화
원전‧가스터빈, 동시 선점 노린다
[뉴스포스트=김주경 기자] 최근 원전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오랫동안 탈(脫)원전 기조를 이어왔던 독일이 친원전 기조로 선회하는 등 유럽에서도 규제 완화에 나섰으며 미국에서도 원전을 신산업으로 키우려고 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외신 보도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최근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법률적으로 동등하게 취급하기 위한 프랑스 정부의 노력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전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국내 원전 사업도 수출을 염두에 두고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기존 대형원전 사업 참여사와 대형 건설기업 및 엔지니어링 분야 기업들도 잇따라 참여하는 양상이다. 기업들이 원전을 둘러싸고 잰걸음을 내딛는 이유는 수십 조 단위의 대규모 사업인 데다가 국가 단위의 컨소시엄이 굳건해 건설‧제작 경험이 없는 기업들은 진입장벽이 높다.
반면 SMR은 전력 용량이 적어 사업비 규모가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다수 SMR 개발사들은 투자금 유치가 필수적이다. 이에 SMR을 차세대 유망사업으로 낙점한 국내 대기업 입장에서는 자금 확보와 함께 엔지니어링 기술과 및 포트폴리오 시공 역량을 보유한 해외 개발사들과 파트너십이 절실하다.
두산에너빌리티, 스코다파워로 확보한 재원 투입해 'SMR' 확대
이 가운데 두산에너빌리티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1조3000억원을 투자해 가스터빈과 소형모듈원전(SMR) 생산능력 확충에 나선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이번에 투자할 재원은 최근 두산스코다파워가 체코에서 상장하면서 구주매출을 통해 회수한 약 1100억원으로 충당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 분야 팀코리아 핵심 멤버이자 다양한 기기설비 경험을 보유한 '원전 주기기 제작사'다. 지금까지 원자로 34대, 증기발생기 124대를 제작해 납품했고 이들 주기기들은 현재까지도 국내외 원전에서 문제없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그동안의 다수 시공 경험을 통해 인증받았다.
실제로 소형모듈원전(SMR) 부문의 실적은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 선두주자인 대만 TSMC처럼 다양한 SMR 설계사들과 협력해 주기기를 제작·납품하다 보니 SMR 분야의 파운드리 기업으로도 평가받는다. SMR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파운드리 기업인 셈이다. SMR 설계에 대한 이해도가 경쟁사 대비 높은 데다가 제조 전문성 확보와 공급망이 견고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손꼽힌다.
소형모듈원전(SMR)에 공들이는 이유
최근 SMR이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전력수요의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주 물량은 당초 수립한 5년 간 SMR 주기기 62기 수주 목표를 초과할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연 20기 규모 내에서 SMR 제작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으며, 향후 물량이 확보되는 대로 투자 계획을 실행할 예정이다.
해외 국가들의 관심도도 높다. 두산은 SMR 초도호기 제작을 위해 시제품 제작, 전용 제조 장비 도입 및 설비도 함께 구축 중이다. 실제로 SMR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루마니아의 클라우스 요하니스 대통령은 지난해 4월에 두산 창원공장을 방문해 이러한 두산의 제작 준비 현황과 신규 설비를 직접 시찰한 것으로 알려진다.
올해 하반기 'SMR 프로젝트' 추가 수주 가능성 유력
SMR도 2030년 상용화를 앞두고 시장이 커진 만큼 두산에너빌리티의 추가 수주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원전 업계 내부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의 파트너사인 미국 뉴스케일 파워가 77㎿(메가와트) 모듈의 표준설계 인‧허가를 승인받으면 이르면 올해 하반기 미국 빅테크 등과 SMR 프로젝트를 최대 2개까지 수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체코 프로젝트향 주기기 공급 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소형모듈원전(SMR) 설비 확충도 논의 중이다. 현재 원전 공장 내에서 8기의 모듈을 생산할 수 있는데, 전용 공장을 건설해 최대 20기까지 생산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2029년까지 영업이익 '1조 클럽' 입성 목표
하반기부터 미국발 SMR 수주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자 생산능력(CAPA)을 확대해 선제적으로 시장 선점을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스터빈과 SMR 부문의 글로벌 진출을 발판 삼아 지난해 7조4000억원이던 매출을 2029년까지 11조 3000억원까지 늘리고 영업이익도 2436억원에서 1조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허민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SMR 프로젝트는 12기 모듈로 구성될 것"이라며 "하반기 SMR 주기기 12기, 소재 6기 수주를 계획하고 있는데 추가 발주가 나올 경우 전용 공장 증설이 필수적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두산에너빌리티는 K-원전의 체코 프로젝트 주기기 공급 외에도 웨스팅하우스의 미국·중국용 AP1000에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를 공급한 바 있다"며 "현재 웨스팅하우스가 이미 수주한 폴란드 원전 3기, 불가리아 원전 2기에 필요한 기자재 공급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라고 설명했다.
주력사업이었던 '가스터빈 생산능력' 대폭 확충
두산에너빌리티는 원래 주력사업이었던 가스터빈에 대한 생산능력도 끌어올릴 방침이다. 하반기가 되면 북미 시장의 수주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설비 확충 등 생산능력을 확대하고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두산에너빌리티는 기업설명회를 열어 미국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따른 가스터빈 수주가 증가할 것에 대비해 추가 증설을 통해 연간 가스터빈 생산능력을 기존 6대에서 8대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회사측은 설비 확충에 1조 30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원자력과 가스 사업에 3년간 7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지만 설비 확충 필요성이 커지자 6000억 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탄소중립 사업 전략을 구상 중인 만큼 석탄발전 관련 자산을 매각해 투자재원을 확보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구축을 서두르면서 가스터빈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커졌다. 빅테크 업체들이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려면 필요 전력의 3~4배 규모의 발전 설비를 구축해 전력 안정성 확보가 시급하다. 이에 회사는 우선 가스터빈 생산능력을 기존 6대에서 8대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현재 대형 가스터빈 공급사는 GE(제너럴일렉트릭)를 포함해 MHI ·두산에너빌리티·지멘스 등 4개 회사에 그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는 2029년까지 글로벌 가스터빈 20기의 부킹 피(예약 요금)을 지불하면서 2029년까지 선발업체인 GE·지멘스·MHI 생산능력은 포화 상태다.
미국發 AI 데이터 센터 구축으로 반사이익…가스터빈 수요 급증
이에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가스터빈 확보가 절실한 만큼 두산에너빌리티의 제품을 일찌감치 선점하는 것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해부터 터빈 입구 온도가 1500도 이상인 고효율 H급 가스터빈 양산을 시작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67%에 달한다. 2% 수준이던 H급 가스터빈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10%까지 끌어올렸다. 하반기가 도래하면 미국 중서부 2.5GW(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에 가스터빈 5기를 수주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다. 미국 남부 지역에도 2GW급 데이터센터 구축에 가스터빈을 10기 이상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기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세계적인 탄소감축 노력에 AI/데이터센터 발 전력수요가 더해지면서 SMR은 매우 유망한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국제 원자력계에선 대규모 SMR 수요를 만족시킬 공급망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을 우려하지만 한국은 원자력 기기 제작과 시공에 있어 탄탄한 공급망을 갖추고 있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SMR 유수 개발사들과 호흡이 잘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낙관했다.
마지막으로 "당사는 SMR 파운드리로서 다양한 SMR 설계사들과 협력해 핵심 기자재를 제작 중이며, 혁신적인 제조 기술 개발과 견고한 공급망 구축을 통해 SMR 제작의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미국 엔비디아와 대만 TSMC처럼 미국 SMR 개발사와 한국 기업들이 상호 윈윈하는 관계로 향후 전세계적 젼력 공급난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