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성과주의 중심의 변화 택한 건설사
연공서열 중시 문화서 탈피해 젊은 인재 발탁
주요 건설사, 40대 젊은 수장 요직에 앉히다
[뉴스포스트=최문수 기자]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전례 없는 한파를 극복하기 위해 '40대 기수론'이란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존 50대, 60대 임원이 주를 이루던 보수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젊은 리더를 경영 전면에 배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의 결정에는 단순히 임원진의 나이가 어려진 것을 넘어,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과 미래 성장 동력 확보라는 절박함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과감한 쇄신 택한 건설사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단행된 10대 건설사를 포함한 주요 기업의 정기 임원 인사의 핵심은 '새대교체'와 '성과주의'로 요약된다. 과거 연공서열과 경륜을 중시하던 문화에서 벗어나,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젊은 인재를 과감히 발탁한 것이다. 50대 임원급 직원이 다수를 차지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게 주된 시선이다.
대우건설은 최근 인사에서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40대 임원을 발탁했을 뿐만 아니라, 과장급 직원을 AX(AI 전환) 데이터 팀장으로 앉혔다. 연공서열에서 벗어나 기술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내부에서는 성과와 역량 중심의 인재를 고르게 선임했다는 평가다.
이 밖에도, GS건설은 2023년 허윤홍 대표 취임 이후 성과 중심의 인사 원칙을 내세우며 40대 임원을 발탁, 조직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플랜트, 안전품질 등 주요 사업부에 젊은 40대 임원을 전진 배치하며 실무 역량을 강화했다. SK에코플랜트는 일찍이 40대 임원 발탁이 자연스러운 조직 문화를 구축해 다수의 40대 임원이 현재 활약 중이다.
나아가 일부 기업은 최고경영자(CEO)급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GS건설 허윤홍 대표는 1979년생이며, 현대건설도 1970년생인 이한우 대표이사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맞이하는 등 1970년대생 CEO 시대를 열었다. 이 젊은 리더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주택 사업 외에 신사업, 해외 플랜트, 디지털 전환(DT)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입증한 인물들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생존 불가
건설사들이 이렇게 '젊은 피'를 수혈하는 이유는 업계가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수년간 이어진 부동산 호황기가 끝나고 고금리, 고물가, 원자재 가격 급등이라는 삼중고가 업계를 덮쳤다. 특히, 국내 주택 사업에 편중됐던 사업 구조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건설사들을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다.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은 급증했으나, 주택 시장 침체로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건설사가 늘어났다. 정부의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태영건설 사태에서 보듯, 자금 경색은 업계 전반의 뜨거운 화두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은 공사비 증가로 이어져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켰다. 이미 계약한 공사에서도 손실이 발생하는 현장이 속출했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안전 관련 규제 강화도 경영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의 안정 지향적이고 관록을 중시하는 리더십만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국내 주택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결국 '40대 리더' 등용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의견이다.
젊은 리더에게 주어진 과제는?
40대 젊은 수장이 짊어진 역할은 명확하다. 첫째는 위기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속도와 유연성이다. 전통적인 건설업의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 대신, 빠른 의사결정과 수평적 소통을 통해 당면한 리스크를 관리하라는 주문이다.
둘째는, 새로운 성장 동력의 확보다. 포화 상태인 국내 주택 사업을 넘어 해외 시장 개척, 친환경·에너지 플랜트, 데이터센터, 모듈러 주택, 도심항공교통(UAM) 인프라 등 차세대 먹거리 발굴이 시급하다. 이러한 신사업 분야는 기존 50~60대 임원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한 40대 리더들이 비교적 강점을 보일 수 있는 영역이다.
실제로 최근 임명된 40대 임원들은 스마트 건설 기술 도입, AI 활용 현장 관리, 친환경 건축 기술 개발 등 디지털 전환과 ESG 경영을 주도해 온 이력으로 주목받는다. 보수적인 건설 현장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생산성을 높이고 안전 사고를 줄이는 것 역시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마지막으로는 성과주의 문화 확산이다.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 관행은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변화에 둔감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40대 리더를 전면에 내세운 것 자체가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성과를 내면 보상을 받는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셈이다. 이는 조직 내부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는 효과를 노린 포석이다.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공존
이번 세대교체 바람을 두고 업계는 '젊은 리더십'이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과감한 혁신을 통해 위기 극복의 발판을 마련할 거란 점에서 기대감이 크다. 관성에 젖은 기존 사업 방식을 탈피하고, 시장 변화에 한발 앞서 대응하는 전략적 움직임이 가능해질 거란 풀이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건설업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으며, 장기간에 걸쳐 사업이 진행되는 고유의 특성이 있는데, 경륜과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산업이라는 점에서다.
일각에서는 40대 리더들이 풍부한 현장 경험과 위기관리 노하우를 갖춘 50~60대 고참 임원 및 현장 소장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하고 복잡다단한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자칫 경험 부족으로 인해 중대한 의사 결정에서 실수를 범할 경우, 회사가 더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