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지난 12월 4일 지구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지구문학 주최로 열린 이날 시상식에서는 ‘내 마음의 지우개’의 작가 신인호 씨가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시인, 수필가 신인호 (사진=신현지 기자)

마음속에 시시때때로 돋아나는 시기, 질투, 교만, 허영, 욕심, 거짓 등 불의한 것들을 차분한 기도의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가며 사는 것이 참된 삶이라고 소소한 일상들을 담아낸 작가의 뛰어난 필력이 이날의 영예를 거머쥐게 했다는 평이다.

이에 <본지>는 시인이며 수필가인 신인호 씨와 잠시 시간을 함께했다.

충정로 한 커피숍에서 마주한 신인호 작가. 그녀는 오랜 교사생활이 몸에 밴 듯 흐트러짐이 없는 단아한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숭의, 혜화, 창덕여고 등) 정년퇴임에서 옥조근정훈장을 받았을 만큼 한눈에도 교육자의 풍모가 느껴지는 자태였다. 그런 작가에게 지구문학상 수상소감을 묻자 설핏 수줍은 미소와 함께 짧은 소감을 전했다.

“먼저 졸작을 선정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인생이라는 대리석을 문학으로 조각하며 간다는 것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되고요. 니체의 말처럼 ‘ 피로써 쓴 책만이 사람을 감동 시킨다’고 했는데 저 역시 앞으로 더욱 피의 글을 쓰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니체의 말을 인용해 담담히 소감을 전하는 작가에게서 문체에서 느꼈던 간결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물론 그녀의 詩作에서도 그럴 것이었다. 수필가 이전에 시가 먼저였던 시인. 시인이 수필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또 시와 수필, 어느 쪽에 마음이 더 기우는 것인지도. 즉, 두 장르를 함께 아우르게 될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했다.

“글쎄요. 글쓰기가 어려운 건 똑 같으니. 그렇지만 시는 시대로 감동이 있고 수필은 수필대로 감동이 있고 소설은 소설대로 희곡은 희곡대로 감동이 각각 다르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수필집을 늦게 낸 것뿐이지 1970년도 교육자료에 당선된 후 미온적으로 가끔씩 써오다 지구문학에 시와 함께 12년을 글을 실었으니 시와 수필을 꾸준히 써왔다고 해야 하겠죠.

또 두 장르를 놓고 어느 쪽에 비중을 둘 건지는... 시는 함축문학이라 좋아했지만 수필은 외연성으로 쓰기 때문에 어느 것이 쉽고 어느 것이 어렵다고 말할 수 없어요.

둘 다 쓸 때마다 어려움을 느끼니까요. 그리고 수필도 문학일진대 창조적인 상상의 소산으로 비록 사실적인 수필이 아니라 허구도 용납될 수 있는 문학이라면 좋은 수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볼 때도 있어요.”

시와 수필 모두 어렵긴 마찬가지. 그럼에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게 작가들의 어쩔 수 없는 생리라는 걸 공감하며 다음은 그녀의 수필 속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내 마음의 지우개’를 통해 ‘시간의 지우개’, ‘망각의 지우개’, ‘이해의 지우개’, ‘관용의 지우개’, ‘사랑의 지우개’를 준비하여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행복하다 했는데 작가도 이처럼 적절하게 사용이 되는지. 혹 망각의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때는 어찌 하는지를.

“지우지 않으면 인간은 살수가 없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는 지우면서 살아가야 해요. 다 기억하고 산다면 어찌 살아 갈 수가 있겠어요? 저 또한 수필집에 열거한 지우개들로 지우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땐 아름다움으로 고쳐서 되뇌며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요”

뭔가 특별한 답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극히 단순한 짧은 답에 문득 그녀의 수필집을 평한 김정오 문학평론가의 말이 생각이 났다. “그의 수필은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 오직 내면의 소리를 섬세하고 담담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 글월들은 그의 집 가까이 있는 도봉산 자락에서 피어난 화사한 꽃처럼 아름답다.”라고 했던 말이.

그러니 억지로 꾸미지 않은 작가의 답에서 내면의 순수함이 헤아려졌다. 그런 그녀가 글의 소재는 주로 어디에서 어떻게 찾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글의 소재는 제가 살아온 삶과 대자연에서 구해오지요. 인생의 삶 속에서 숨어있는 진솔한 마음의 소리 영혼의 소리, 느낌과 감동을 표현했어요.

그것이 문학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잘 여과된 작품이어야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고요. 미흡하나 열정을 갖고 피의 글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삶 속에서 글의 소재를 찾게 된다는 작가는 어릴 때부터 문학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신학박사인 만큼 종교인으로서 眞 이나 善을 추구하다 보니 문학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문학이 美의 세계이기에 저의 정서에 지극히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시와 수필, 두 장르를 함께 아우르게 되었고요.

하지만 창작의 세계는 죽음을 불사할 만큼 어렵고 고통스럽잖아요. 또 그만큼 감동도 있고요. 물론 감동은 항상 있는 건 아니지만요. 제게 감동을 묻는 거라면 누군가 내 글을 좋게 평가해줄 때 오는 감동보다는 내 스스로 잘 썼다고 생각했을 때라고 말하고 싶군요.”

자신의 글에 만족을 느낄 때 감동도 함께 전해진다는 작가는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며 ‘흔적’이라는 시를 소개했다.

 

흔적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사라지는 것들

 

망각의 뒤안길을

굳이 헤집어

꺼내는 새봄

머리칼 스쳐간

한 올 실바람일 뿐인데

 

목련꽃 필 때마다

거센 회오리로 엉겨오는지

 

늙지 않는 그리움

화석이 되어

서 있는 동구 밖

 

봄 뜰에 노을이

내리는 저녁

산속의 새소리 불러 숨긴

목련 향기로 두고 싶다.

 

지그시 감은 눈으로 암송을 마친 작가는 이 시가 특별히 애착이 가는 건 즉물 詩 사물 詩로서 비유를 통한 암시로 객관적 상관물에 시상의 함축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시와 수필을 아우르는 작가는 생이 다하는 날까지 자신이 택한 문학의 길이기에 절대 후회하지 않고 그 길을 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 인생의 바구니에 명저 하나 담아 놓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 교육에 이바지해 온 사람으로서 지금도 제자들이나 어린이들을 보면 눈물이 글썽해진다는 신인호 작가, 작가는 교육자로서 소임을 다 했나 반성하는 한편 그런 생각들을 늘 글 속에 담아내고자 한다며 말의 갈무리를 지었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지요.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듯 책을 열심히 읽고 반듯하게 자라며 동화나 동시를 쓴다면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앞으로 이런 생각들이 퇴색되지 않게 마음을 다잡아 아름다운 글을 쓰려고 노력할 겁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