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발생 1년 2개월 지났는데...수색 작업은 '제자리 걸음'
가족들 "스텔라호 사고는 前정부 과오...文정부는 달라야 해“

왼쪽부터 허영주,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사진=이별님 기자)
왼쪽부터 허영주,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사진=이별님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한국인 8명 등 선원 24명을 태우고 브라질에서 중국으로 향하던 스텔라데이지호. 폴라리스 쉬핑 소속 초대형 화물선인 이 배는 2017년 3월 31일 한국 시간 기준 오후 11시 20분 이후 남대서양 우루과이 인근 해역에서 자취를 감췄다. 필리핀 선원 2명은 사고 직후 무사히 구조됐지만, 한국인 선원 8명을 비롯한 22명의 실종 선원들의 행방은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알 길이 없다.

실패한 초동대처, 지지부진한 수색작업,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 등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의 이면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한다. 실종 가족들 역시 세월호 유가족과 마찬가지로 광화문 광장에 자리를 잡고 1년 2개월이 넘도록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엔 스텔라데이지호 이등항해사 허재용 씨의 누나 허영주, 허경주 씨도 있다. 두 사람은 지금도 남대서양 어딘가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동생을 찾기 위해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참사 발생 1년 2개월이 지난 6월 1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실종자 수색과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하는 허영주, 허경주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1년 2개월이 지났습니다. 현재 실종자 가족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까.

허영주 대표 “실종자 가족들은 광화문 416광장과 청와대 근처 효자동 사무소 건너편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종자 수색과 침몰 원인을 규명하라고 요구 중입니다. 국회의원 한분 한분을 찾아가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해 드리기도 합니다. 또 시민분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 (사진=이별님 기자)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 (사진=이별님 기자)

선박사고는 초기대응이 중요한데, 사고 당시 선사 폴라리스 쉬핑은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허경주 대표 “선사는 사고가 일어나자 즉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선사는 선박이 침몰할 때 긴급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사는 약 12시간이 지난 2017년 4월 1일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해양경찰청에 보고했고, 가족들에게는 16시간이 지나서야 침몰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의 초동대처가 늦어졌습니다.

침몰 지점과 우리나라의 시차는 약 12시간입니다. 선사가 정부에 보고했을 때 사고 지점은 한밤중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외교부가 우루과이 외교부에 연락한다고 해도 받을 수 없는 시간입니다. 이런 식으로 초동대처가 늦어졌습니다. 결국 사고 발생 이후 약 42시간이 지나서야 인근 해역에 수색 비행기가 뜰 수 있었습니다.

선사는 침몰 직후 인근 해역에 있던 자사 선박들에 출동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박들이 사고지점에 도착하는 데에는 수일이 걸렸습니다. 정부에 빨리 보고했더라면 정부가 사고 지점에 있던 인근 선박들에 출동 요청을 내렸을 것입니다.”

허영주 대표 “사고 5일 뒤에는 폴라리스 쉬핑 회장이 우리에게 합의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분노했고, 실종자 수색을 요청했습니다. 4월 중순 정도 지나니까 합의하자며 내용증명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정부는 초기대응을 어떻게 했습니까.

허영주 대표 “선사로부터 사고 소식을 접하고 해양수산부에 전화를 걸었으나, 해수부 측은 사고 지점이 우리나라 영해가 아니기 때문에 외교부 소관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외교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전화 연결이 안됐습니다. 결국 저녁 6시 반 경 외교부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찾아갔더니 외교부 담당 국장은 실종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는 일은 국민안전처가 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화가 나서 ‘외교부는 뭐 하고 있었냐’고 묻자 담당 국장은 ‘황교안 권한대행에 보고할 문서와 언론 대응책을 만들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당시 국장은 선박 안에 구명보트가 몇 척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파악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국장은 구명 보트에 대한 정보를 가족들이 선사에 물어봐서 외교부에 ‘토스’해야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황당해서 항의했더니 외교부는 그제야 선사에 연락해 구명 보트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심지어 외교부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브리핑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항의 농성을 벌이자 사고가 난지 1주일 정도 더 지난 8일에 공식적으로 브리핑을 했습니다. 그전까진 저 혼자서 외교부에 찾아가 물어본 게 전부였습니다. 사고 초기 외교부와 해수부, 국민안전처는 핑퐁만 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탄핵정국이라 청와대도 유명무실했던 상황이라 문제가 더 컸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 대책위 상황실 구석에 놓여있는 스텔라데이지호 모형. (사진=이별님 기자)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 대책위 상황실 구석에 놓여있는 스텔라데이지호 모형. (사진=이별님 기자)

해외 선박사고에 대한 매뉴얼이 외교부에는 없었습니까.

허경주 대표 “외교부에는 선박사고에 대한 매뉴얼은 없었으나 재외국민 안전 보호에 대한 매뉴얼은 있었습니다. 매뉴얼은 대외비이고 가족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합니다. 저희는 매뉴얼의 내용이 정말 궁금합니다. 

매뉴얼이 없었다고 해도 인공위성이나 비행기 및 군함 등을 활용해 실종자들을 찾을 수도 있었는데 외교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가족들이 이를 요구했지만, 외교부는 그마저도 ‘여건이 안 돼 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초기대응에 완전히 실패했네요. 그렇다면 현재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허영주 대표 “우선 설명 드리자면,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한 수색작업은 2가지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남대서양을 표류하고 있을 구명보트 2정에 대한 ‘해수면 수색’입니다. 실종자들이 그곳에 있을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심해 수색’입니다.

사고 초기에는 실종자들을 찾기 위한 해수면 수색이 진행됐습니다. 해수면 수색을 하기 위해서는 남대서양의 해류를 분석해야 하는데, 정부는 ‘결과가 나오려면 1년이나 걸린다’면서 해류 분석도 하지 않고 마구잡이식 수색만 하다가 4월 중순에 사실상 종료했습니다. 해류 분석이 1년이나 걸린다는 정부의 말은 거짓말로 드러났죠. 민간전문가도 2박 3일 만에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공식적인 수색 중단은 5월 10일 새벽 4시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말이죠.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당선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수색 작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심해수색은 물론 구명보트에 대한 수색도 아무것도 제대로 된 게 없습니다. 시간만 흐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황교안 권한대행에서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진전은 없었다는 말씀이신가요.

허경주 대표 “그렇습니다. 해수부에서 침몰 초기 이 사건을 담당했던 과장이 현재에도 그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이 사건을 맡았던 해수부 과장과 국장, 외교부 과장과 국장은 작년 10월 말까지 그대로였습니다. 외교부 담당자가 바뀐 것도 작년 국정감사에서 스텔라데이지호 문제가 다뤄진 이후였습니다. 이마저도 영전해서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무원은 자기들이 사고 대처를 잘했다는 식으로 이른바 ‘페이퍼 작업’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4월 8일에서야 브리핑을 시작한 것을 ‘4월 1일부터 가족들에게 브리핑을 시작했다’라고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엉터리로 보고하면 윗선에선 담당 부서가 사건 대처를 잘하고 있다고 오해하기 마련입니다. 머리만 바뀌고 그 밑에 실무자들이 바뀌지 않았으니 이전 정부와 다를 수가 없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대책위 상황실. 원래는 세월호 유가족 '아빠방'. 유가족들이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마련해줬다. (사진=이별님 기자)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대책위 상황실. 원래는 세월호 유가족 '아빠방'. 유가족들이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마련해줬다. (사진=이별님 기자)

다소 아픈 질문일 수 있습니다만, 사고 발생지점은 남대서양이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일각에서 수색작업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영주 대표 “우리나라가 70년대만 해도 정말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평균적인 생활 수준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2015년 미국에서 ‘엘파로’호 화물선이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곧장 수색기가 수색해 구명보트를 다 찾아냈습니다. 안타깝게도 생존자는 없었지만, 미 정부는 심해 수색을 결정해 배 안에 있던 블랙박스를 회수했습니다. 미국을 찬양하는 건 아니지만, 미국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선진국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7, 80년대 사고방식을 가지고 이 사건을 대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구명보트 2척을 못 찾았는데, 수색을 중단한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물론 사고 발생지점이 남대서양이고, 사고 발생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어디에서 사고를 당했든 간에 국가에서 확인을 해줘야 합니다. 지금은 국민 한명 한명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 돼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실종자 가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선사나 정부 또는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인가요.

허영주 대표 “가장 힘든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부모님들이 너무 힘들어하십니다. 부모님들은 실종자들이 구명 보트에 의존해 살아있다면 질병에 걸리거나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하고 계십니다. 정부는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게 놔두면 안 됩니다. 생사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시간만 흐른다고 가족들이 실종자들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등한시하는 것만 같아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종자 가족들이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허영주 대표 “안타이오스라는 배의 구명정이 남대서양에서 14개월 만에 발견된 바 있습니다. 구명정의 문이 다 열려있는데도 불구하고 상태가 너무 깨끗했습니다. 사람들이 입다 벗은 구명조끼, 마시다 버린 페트병까지 있었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구명보트도 이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경주 대표 “파도나 바람이 거셌다면 구명정 안에 있던 구명조끼나 페트병은 모두 날아가서 없어지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남대서양의 바다는 매우 잔잔해 구명정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태평양과 비교해 볼 때 남대서양의 바다는 ‘잔잔한 호수 같다’고 표현하더라고요.

또 엘살바도르의 한 남성이 태평양에서 어선을 타고 홀로 표류하다 438일 만에 살아서 온 사례도 있었습니다. 남대서양보다 훨씬 거센 태평양에서 일반 남성이 쪽배에서 표류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태평양이 아닌 잔잔한 남대서양에서 침몰했습니다. 게다가 선원들은 엘살바도르 남성과는 달리 평소에도 생존 훈련을 받은 전문 항해사들입니다. 이들이 잔잔한 남대서양에서 안전한 구명보트를 타고 살아있을 가능성이 제로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구명보트에는 낚시도구는 물론 비상식량, 응급의료품, 식수 등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만들어 선물해준 스텔라데이지호 구명보트 모형. (사진=이별님 기자)
고등학생들이 만들어 선물해 준 스텔라데이지호 구명보트 모형. (사진=이별님 기자)

스텔라데이호 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실종자 가족들이 현재 집중하고 있는 사안은 무엇입니까.

허경주 대표 “정부가 심해 수색 장비 검토를 위한 테스크포스(TF)를 결성하자고 우리에게 먼저 제의를 했습니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와 시민대책위원회, 정부 담당자들로 구성된 회의가 현재 제9차까지 진행됐습니다.”

허영주 대표 “가족들은 지난 5일 심해수색 장비 투입 검토 제9차 회의를 하고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4월 열렸던 국회 공청회에서도 여야 합의로 심해 수색 장비를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진 바 있습니다. 심해 수색 장비 투입 여부를 6월 초까지 정부가 답변해주기로 했으나 북미회담 등 각종 이슈 때문에 늦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현안을 이유로 이 문제에 집중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됩니다.

사실 심해 수색 장비를 투입해 스텔라데이지호 안에 있는 블랙박스나 CCTV를 회수하는 게 수색의 목적은 아닙니다. 실종 선원들의 생사확인과 침몰원인 규명으로 재발 방지 하는 게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체 사진과 영상을 찍고 블랙박스와 각종 증거자료를 회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허영주 대표 “초동대처를 잘못한 시기는 분명 황교안 권한대행 때였습니다. 그리고 노후한 스텔라데이지호를 개조할 수 있게 승인한 것은 이명박 정부였습니다. 전 정권의 잘못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스텔라데이지호 참사는 문재인 정부의 1호 민원인 만큼 첫 단추를 잘 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북미회담 등 현안들도 중요하지만 1호 민원조차 1년이 지났는데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현 정부가 이 사건을 늘 인지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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