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새 서울 상가 2만 곳 ‘증발’
정부 정책은 ‘깨진 독 물 붓기’...근본 대책 시급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몇 년 전부터 이어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과 지난 2월 창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악재로 자영업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4~6월 영업난으로 문을 닫은 서울 상가 점포 수는 2만 개를 넘어섰고, 올해 8월까지 폐업지원금을 신청한 자영업자는 이미 지난해 전체 신청자 수를 뛰어넘었다. 정부는 고사 위기에 처한 영세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일회성에 그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산한 명동 거리. (사진=이해리 기자)
한산한 명동 거리. (사진=이해리 기자)

영업 포기 자영업자 늘어...서울 폐업 절반 ‘음식점’ 

지난 7일 부동산 114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의 상가 수는 37만 321개로 1분기(39만 1,499개)보다 2만 1,178개 줄었다. 특히 음식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음식업 상가는 1분기 13만 4,041개에서 2분기 12만 4,001개로 1만 40곳이 문을 닫았다. 석 달간 감소한 상가 2만여 곳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음식점인 것.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오랜 기간 자영업을 이어온 방송인 겸 외식사업가 홍석천 씨는 지난달 30일 마지막 식당의 문을 닫았다. 젠트리피케이션부터 코로나19로 사태로 가게 운영의 어려움을 지속 토로해왔던 그는 폐업 전날 SNS에 “금융위기, 메르스, 기타 위기란 위기를 다 이겨냈는데, 이눔의 코로나19 앞에서는 나 역시 버티기가 힘들다”라는 글을 남겼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점포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이해리 기자)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점포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이해리 기자)

서울 중구 명동으로 직장을 다니는 윤 모(33세) 씨는 “관광객들로 북적했던 명동 거리가 죽었다”라며 “곳곳에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리고, 음식점들도 몇 달째 문을 닫아 점심 먹을 곳도 마땅치 않다”라고 말했다. 

지역 상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영업 조치 탓에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전국적으로 늘고 있다. 

추경호 국민의 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소상공인진흥공단에 폐업지원금을 신청한 자영업자는 7,596명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신청자 수 6,503명을 넘어선 수치다.

앞으로의 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부 업종들은 사실상 휴업 상태로, 손해가 누적돼 폐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자영업자들도 많다. 

서울 노원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조 모(58세) 씨는 “처음에는 방역을 위해 어느 정도의 금전적인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정부의 행정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영업 재개가 언제 될지 알 수 없어 애가 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업 금지로 수입이 없어 한계에 다다랐는데, 500만 원에 달하는 임대료는 그대로다”라면서 “10년 동안 해온 사업을 당장 접을까 생각도 했지만,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로 폐업도 힘든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14일 휴업 상태인 서울 중구 명동 점포들. (사진=이해리 기자)
14일 휴업 상태인 서울 중구 명동 점포들. (사진=이해리 기자)

코로나19 이전 ‘젠트리피케이션’부터 몸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지금까지의 정부 조치로 인한 어려움이 가중돼 경제적 타격이 크다며 이들을 위한 세제, 임대료 혜택 등 다각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상인들은 코로나19 이전에 골목 경제를 실질적으로 위협했던 근본적인 원인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호소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지역이 활성화된 후 주거비용과 상가 임대료 등이 급격히 올라 기존의 원주민이나 세입자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종로구, 이태원 경리단길, 망원동, 성동구 등이 꼽힌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여전히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대다수다. 실제로 소상공인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임대료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상공인의 경영상황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업장 경영비용 중 가장 부담이 되는 것’으로 69.9%가 ‘임대료’를 꼽았다.  

금위 위기 직후보다도 높은 상가 공실률

임대료와 대출이자 등으로 영업난을 겪는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이어지며 상가 공실률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2분기 전국 상가 공실률은 금융위기 직후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전국 중대형 상가(3층 이상, 연면적 330㎡ 초과) 공실률은 12%로 전기(11.7%)보다 0.3%포인트 상승했다. 중대형상가 공실률이 12%를 넘은 것은 2002년 통계 작성 후 처음이다. 

하지만 임대료는 요지부동이다. 서울 강서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임 모 씨(38)는 “건물주에게 월세 인하를 요청했지만 ‘장사가 잘 됐을 때도 월세를 올려 받지 않았는데, 코로나 상황이라고 해서 임대료를 깎아주기는 어렵다’라는 답변을 받았다”라면서 “세금과 인건비, 재료비 등을 내고 나면 월세를 낼 돈이 없어 계속 적자가 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일각선 ‘강력한 임대인 보호 정책’ 필요 목소리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정부의 영업 제한으로 인해 생계의 위험에 직면한 만큼 지원금을 더 높여주거나 임대료를 깎아주는 등 피해액의 일정 부분을 정부가 보조해 주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지난 10일 정부는 4차 추가경졍예산(추경)을 발표하고 3조 원가량을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매출 손해를 입은 영세 자영업자 지원에 쓰기로 했다. 뷔페, 노래연습장, PC방 등 9개 업종 소상공인에 최대 200만 원을 지원하고 오후 9시 이후로 영업이 금지됐던 수도권 음식점, 커피전문점 등에도 현금 15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조치도 3월부터 누적돼 온 손해를 만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고, ‘착한 임대인’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는 결코 골목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직접적으로 임대료를 지원해 주거나, 임대료 인하에 강제성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임대료 직접 지원은 ‘건물주 배불리기’로 전락할 수 있고, 정부의 규제는 ‘과도한 개입’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임대료 지원책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8월 중순 이후 코로나가 재확산하면서 다중이용시설의 운영이 한시적으로 중단되거나 제한돼, 매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라며 “대다수의 자영업자는 대출을 끼고 창업을 하므로, 자영업자의 폐업 증가는 사회·경제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다방면의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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