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홀로 오지 않았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페스트)는 인구의 3분의 1을 휩쓸어 갔다. 최초 증상이 나타난 후 빠르면 수시간, 수일 내로 사망하는 전염병은 인류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죄여오는 공포 속에 누군가는 남을 탓하고, 비난했다. 21세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해외에서는 동양인 폭행 뉴스를, 국내에서는 확진자에 대한 조롱을 흔하게 접한다. 하지만 수백년 전과 달리 인류는 전염병과 싸우는 법을 안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그래서 누구나 혐오할 수 있는 세상에서 페스트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공동의 선’을 찾아낼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이유다.  <뉴스포스트>는 코로나19 시대 혐오를 넘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정부의 집합 금지 행정 명령으로 문을 닫고 있는 노래연습장. (사진=이해리 기자)
정부의 집합 금지 행정 명령으로 문을 닫고 있는 노래연습장. (사진=이해리 기자)

[뉴스포스트=이해리 기자] # 직장인 오성광(31) 씨는 퇴근 후 쓸쓸한 동네 길을 마주하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고 말한다. 집 근처 먹자골목에 자리 잡은 식당들은 손님이 없어 일찌감치 불을 꺼버리고,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들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 버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사람 간 직접 마주하는 대면 활동이 제한을 받으면서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빠르게 정착돼 가고 있다. 새로운 언택트 라이프 스타일은 결제, 배송 등 다양한 시장의 발전으로 이어졌지만, 반대급부로 서민 경제의 근간인 자영업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더욱이 비대면 문화가 급격히 진행될수록 자영업자들이 받는 충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난 14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에서 2단계로 완화됐지만 올초부터 누적돼 온 손해는 자영업자들을 한계에 다다르게 했다.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음식점, PC방, 카페, 등 대부분의 자영업이 영업 제한 조치를 받았고, 특히 뷔페나 노래연습장과 같은 고위험 시설에는 집합 금지 조치를 내려 해당 업종은 영업이 금지됐다. ‘대한민국 자영업의 소멸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우려도 나왔다. 

<뉴스포스트>는 서울 노원구에서 노래 연습장을 운영 중인 조점순(58세)씨,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권순정(49세)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 19로 인해 어려움에 빠져 있는 소상공인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 ​  서울 노원구에서 3년째 마카롱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권순정씨. (사진=이해리 기자)
​ ​  서울 노원구에서 3년째 마카롱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권순정씨. (사진=이해리 기자)

▲코로나가 휩쓴 골목상권 ‘벼랑 끝’ 

올해 상반기 여러 경제단체의 조사 결과는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의 위기를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휴게음식업, 외식업, 숙박업 등 22개 골목상권을 대표하는 협회(조합)를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실적과 하반기 전망’을 조사한 결과, 상반기 매출액과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7%와 3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하반기 골목상권의 순익이 지난해와 비교해 40%가 넘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조점순 “코로나19 이후 매출은 작년보다 40% 이상 급감했어요. 7월부터 전멸이었고 지금은 아예 문을 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올해 3월 초에도 서울시의 조치로 문을 닫았다가 영업을 재개한 적이 있었는데, 손님들에게 이미 노래방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박혀 매출이 뚝 끊겼어요.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 노래방을 갈까 하다가도 3~4번 중의 1번만 방문한다고 얘기한 손님도 있었어요”

권순정 “매장에 직접 방문하는 손님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어요. 대신 배달이 늘어 다른 업종처럼 매출이 절반 이상 줄지는 않았어요”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배달 수요가 증가하면서 새롭게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는 외식 업종도 늘었다. (사진=이해리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배달 수요가 증가하면서 새롭게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는 외식 업종도 늘었다. (사진=이해리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 생태계의 변화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문화가 확산하면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거나 장을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상반기중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자금융업자와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전자지급결제대행 이용금액은 하루 평균 6,769억 원으로 전기보다 15.3% 증가했다. 일평균 이용 실적은 전기보다 32% 증가한 1,782만 건이었다.

권순정 “자영업 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 같아요. 배달되는 업종과 안 되는 업종의 매출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 카페를 폐업하고, 새로운 업종을 개업한다고 하면 무조건 ‘배달이 되는 업종’을 1순위로 할 예정입니다. 치킨집을 하는 지인이 있는데, 그곳은 매출이 엄청나게 뛰어서 배달 주문을 꺼버릴 정도라고 해요. 저희 매장도 배달을 해 그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특수 상황에 맞는 추가 정책 절실

앞서 서울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3월 21일부터 4월 5일까지 노래연습장이 감염 확산 고위험 시설이라며 업주에게 총 14일간 집합 금지 명령을 내렸다. 5월 22일부터 7월 10일까지 2차 집합 금지 명령이, 지난달 19일부터 현재까지 3차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영업이 정지된 기간은 100일에 가까워, 사실상 매출이 없어 폐업 위기에 처했다. 

조점순 “처음에는 방역을 위해 어느 정도의 금전적인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정부의 행정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영업 재개가 언제 될지 알 수 없어 애가 타요. 영업 금지로 수입이 없어 한계에 다다랐는데, 월 500만 원이 넘는 고정지출비는 그대로고... 10년 동안 해온 사업을 접을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임차인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예요. ‘영업 하지 못해 손해 본 부분에 대해 보상받고 싶다’라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 조치로 장사를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라에서 100%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차 재난지원금 200만 원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누적된 손해를 만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에요”

권순정 “주변에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당구장, 음식점 등을 하는 자영업자들이 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이후 음식점은 인건비도 안 나와서 모든 아르바이트생을 잘랐다고 들었어요. 힘들 거 뻔히 아니까 연락도 잘 못 해요”

정부의 집합 금지 행정 명령으로 문이 닫힌 노래연습장. (사진=이해리 기자)
정부의 집합 금지 행정 명령으로 문이 닫힌 노래연습장. (사진=이해리 기자)

업주들은 자영업자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 정책으로 ‘임대료 지원’을 꼽았다. 실제로 소상공인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임대료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상공인의 경영상황에 대한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사업장 경영비용 중 가장 부담이 되는 것’으로 ‘임대료’를 꼽은 소상공인이 70%에 달했다. 

조점순 “건물주들은 세입자가 흥하든 망하든 똑같은 돈을 받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특별하잖아요. 장사가 그냥 안되는 것이 아니고, 정부가 문을 닫게 했으니 건물주들에게 ‘임대료의 몇 프로를 삭감해 줘라’라고 제안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월세가 100만 원 이하만 돼도 부담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권순정 “저는 확실하게 강도 높은 조치를 해서 하루빨리 이 사태가 진정됐으면 좋겠어요. 지금과 같은 조치는 오히려 기간을 더 길어지게 하고, 영업이 금지돼 피해를 받는 업종만 계속해서 피해를 받는 것 같아요. 확실히 방역한 뒤에 재개하는 게 오히려 자영업자들을 위한 조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울 노원구에서 3년째 노래연습장을 운영 중인 조점순 씨. (사진=이해리 기자)
서울 노원구에서 10년째 노래연습장을 운영 중인 조점순 씨. (사진=이해리 기자)

▲ 자신도 모르게 끼게 된 ‘색안경’...“함께 극복하자”

발열 체크와 출입 명부 작성, 매장 소독 등 코로나19로 변화된 일상에 조금씩 적응할 무렵 8월 중순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 등을 기점으로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재확산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자영업에 대한 영업 제한 조치가 더욱 강화돼 매출 피해가 불가피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신천지 대구교회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특정 종교에 대한 시민들의 비난이 확산되고 혐오와 갈등이 생겨났다. 

권순정 “일부 종교나 단체로 인해 전체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도 모르게 인식이 좋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저희 카페의 경우 프랜차이즈 전문점이 아니어서 2.5단계 시행 시에도 매장 이용이 가능했지만, 매장 내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음식이나 음료를 섭취하는 게 불안해서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래도 단골들은 먹고 가면 안 되겠냐고 묻는데, 제일 먼저 ‘교회 안 다니시죠?’라고 물어보게 되더라고요”

문제는 이러한 재확산 사태가 정치적 공방으로까지 번졌다는 점이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8·15 광화문 집회를 강행한 교회와 참석자들에게 왜 진단 검사를 권유하지 않느냐며 야당인 미래통합당을 공격했고, 미래통합당은 광화문 집회 세력과 관계없다고 선을 그으며 정부의 방역 실패를 꼬집었다. 자영업자들은 감염병을 정쟁 수단으로 삼는 정치권의 행동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권순정 “사실 ‘코로나 재확산이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기보다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 등 개인적인 위생을 철저히 하면서 정부의 방역수칙을 성실히 따르는 모두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점순 “우리와 같은 자영업자들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은 사람들,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 등 ‘누가 제일 힘들다’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 감영증 종식에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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