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홀로 오지 않았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페스트)는 인구의 3분의 1을 휩쓸어 갔다. 최초 증상이 나타난 후 빠르면 수시간, 수일 내로 사망하는 전염병은 인류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죄여오는 공포 속에 누군가는 남을 탓하고, 비난했다. 21세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해외에서는 동양인 폭행 뉴스를, 국내에서는 확진자에 대한 조롱을 흔하게 접한다. 하지만 수백년 전과 달리 인류는 전염병과 싸우는 법을 안다.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그래서 누구나 혐오할 수 있는 세상에서 페스트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공동의 선’을 찾아낼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이유다.  <뉴스포스트>는 코로나19 시대 혐오를 넘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지난 8월 13일 유치원 원격수업이 실시되자 교구들과 활동지를 각 가정으로 보내기 위해 분류를 하고 있는 ㄱ유치원 교사의 모습. (사진=김윤지 씨(가명) 제공) 
지난 8월 13일 유치원 원격수업이 실시되자 교구들과 활동지를 각 가정으로 보내기 위해 분류를 하고 있는 ㄱ유치원 교사의 모습. (사진=김윤지 씨(가명) 제공) 

[뉴스포스트=홍여정 기자]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는 교육현장의 급속한 변화를 가져왔다. 친구들과 뛰어 놀고, 교사와 학생들이 마주 보며 대화하던 평범한 일상은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됐다.

특히 미취학 아동의 돌봄 대란은 연일 언론을 장식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긴급 돌봄을 실행하는 등 돌봄 공백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학부모들의 피로감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휴가가 여의치 않은 학부모들은 걱정을 뒤로 한 채 일터로 가야 했고 아이들은 안전은 오롯이 교사들의 몫이 됐다. 당장 원격 수업을 진행하기엔 현장의 인프라가 부족했고, 아이들을 돌보고, 방역까지 이 모든 것을 교사가 담당했다.

재택근무는 ‘그림의 떡’이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도 돌봄이라는 사회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교사들은 감염병 확산 위험이 있는 일터를 지켰다.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보람과 전염병이라는 환경 속에서 받는 불안 사이에 이들의 삶이 놓여 있었다.

<뉴스포스트>는 유치원 교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 시대 달라진 교육현장과 교사들의 고충을 생생하게 담아봤다. 경기도 ㄱ유치원에서 근무하는 이연주 씨(가명‧20년 차), 김윤지 씨(가명‧10년 차), 서울 ㄴ유치원에서 근무하는 박은영 씨(가명‧10년 차), 장혜진 씨(가명‧4년 차)의 이야기다.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면으로 진행됐다.

아이들과의 소통 걱정

“그야말로 패닉이었죠”

교사들은 올해 유치원 교육현장을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3월에 했어야 할 개학이 두 차례 미뤄지더니 5월이 돼서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개학 이후 아이들은 거리두기를 지켜가며 교사와 인사를 나누고 등원했다. (사진=김윤지 씨(가명) 제공)
개학 이후 아이들은 거리두기를 지켜가며 교사와 인사를 나누고 등원했다. (사진=김윤지 씨(가명) 제공)

이연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척 당황했어요. 긴급돌봄 어린이들과 집에 있는 어린이들 간 교육의 형평성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고민도 했고요. 교사들은 차라리 마스크를 쓰고라도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지내고 싶은 심정이었죠”

장혜진 “학기 초에 유아들과 유대관계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개학이 미뤄지면서 유대관계 형성이 늦었죠. 중간에 휴원 등 단절되는 시간이 많아서 학기를 운영하는 데 이도 저도 아닌 기분이 들었어요”

이들은 5월 27일 개학이 확정될 때까지 전화 상담, SNS채널(키즈노트)을 통해 학부모, 아이들과 소통했다. 개학 날짜가 정해지고 아이들이 등원했지만 예전 같지는 않았다. 점심시간을 제외한 모든 활동시간에 마스크를 착용했고, 점심시간에는 서로 말을 하지 못했다. 견학 같은 야외활동은 모두 취소됐다. 우려했던 ‘소통의 부재’를 실감해야만 했다.

이연주 “아이들이 등원할 때 평소처럼 반갑게 맞이하지 못했어요. 열을 제고 소독을 해야 하는 경직된 분위기 속 점심시간에는 가림막을 설치했고, 대화도 못 했죠. 교육적으로 서로의 표정을 보지 못해 정서적인 교감이 어려웠어요”

박은영 “개학 후에는 평소와 같이 계획에 따라 진행됐지만 달라진 점은 유아 간 거리 두기, 마스크 꼭 쓰기, 손 자주 씻기 등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했어요. 점심시간에는 자리를 재배치해서 책상 양 끝에 아이들이 앉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식사 하도록 지도했어요”

마스크를 쓰고 친구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앉아 수업하는 모습. (사진=김윤지 씨(가명) 제공)
마스크를 쓰고 친구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앉아 수업하는 모습. (사진=김윤지 씨(가명) 제공)

▲ “파스를 달고 살아요”...업무는 두 배로

변화된 일상에 조금씩 적응을 할 무렵 또다시 코로나19는 교육현장을 흔들어 놨다. 수도권 확진자 증폭에 지난 8월 13일 교육부가 유치원 내 원격 수업 방침을 발표한 것. 긴급 돌봄에 방역업무, 거기에 원격 수업까지 추가된 것이다.

김윤지 “공문이 오기 전, 오전 뉴스를 보고 원장님과 원감님이 아셨고, 교사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희는 그날 밤늦게까지 온라인 수업 계획을 짜고 아이들에게 보낼 교구, 교재를 준비했어요. 첫날은 바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어서 간단한 활동을, 그다음 날부터는 교사들이 제작한 수업 영상을 통해 가정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활동했어요”

원격 수업 이후 한 교사는 파스를 달고 산다고 얘기했다. 밤늦게까지 유치원 SNS를 확인하느라 백내장 초기 증상이 오거나, 수업 영상을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느라 물리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이연주 “아침에 출근해 교구 놀이 영상을 촬영해 올리고, 출석체크 등 업무를 해요. 동시에 긴급돌봄으로 등원하는 아이들도 돌보죠. 중간중간 놀이방법에 대한 학부모들의 전화 응대, 그리고 수시로 방역도 진행하죠. 아이들이 가고 나면 또 원 구석구석 소독을 하고, 저녁 늦게 아이의 놀이 영상이 올라오면 또 그때그때 피드백을 주고...일이 안 끝나요. 원격 수업은 평소 수업의 100배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수업 준비 시간도 평소보다 오래 걸려요. 그렇지만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하고 배움의 시기인 유아기를 헛되게 보내지 않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어요”

김윤지 “몬테소리 유치원이다보니 몬테소리 교구를 가정으로 보내주고 활동 방법을 교사가 직접 촬영해 키즈노트에 올려주고 있어요. 학부모님들이 가정에서 아이들이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보니 유치원 생활이 그려지고 안심된다며 흡족해하셨죠. 하지만 모든 인원에 맞게 교구가 준비돼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가정으로 배분하는 교사들은 힘든 상황이에요. 주말도 반납하고 영상을 제작하고, 교구도 준비하고 있어요”

박은영 “코로나19 사태 이후 긴급돌봄이 진행되면서 업무가 늘어났어요. 등원한 아이들을 위한 계획안 작성이나 수업 준비 등은 기존대로 진행하면서 등원하지 않은 아이들의 학습 자료도 준비해야 했죠. 또 퇴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주 가정에 전화해야 했어요. 또 열 체크, 방역 등 코로나19 관련 서류들도 늘어났어요”

아이들은 가림막이 설치된 책상에서 친구들과 대화도 나무지 못하는  조용한 식사를 해야 한다. (사진=김윤지 씨(가명) 제공)
아이들은 가림막이 설치된 책상에서 친구들과 대화도 나무지 못하는  조용한 식사를 해야 한다. (사진=김윤지 씨(가명) 제공)

▲ “교사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냐” 물으니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교육현장은 언젠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묘사됐다. 그럴 때마다 교사들을 방역에 대한 무게감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교사들끼리 동선을 최소화하고 공유한다 하더라도 아이와 그 가족의 동선까지는 알 수가 없다. 보육이라는 필수적인 사회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휴가나 연차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교사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자 엄마인데 타인으로 인한 코로나19 확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이연주 “우리가 이 사회의 교사로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기쁜 일입니다. 지금 누구 하나 안전한 근무환경서 일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교사라고 해서 더 힘들다, 위험하다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코로나19로 온몸에 습진이 생긴 간호사나 의사들과는 더더욱 비교할 수 없죠”

다행히 코로나19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했을 때도 유치원 내 대규모 집단 감염사례는 없었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방역지침을 잘 따뤄 준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공을 돌렸다.

장혜진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위생수칙을 정말 잘 지킨다는 거에요. 덥고 답답할 텐데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지내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죠. 그 외에도 손 씻기, 거리두기 등 모든 위생수칙을 철저하게 따릅니다. 물론 현장의 교사들이 환기와 청소, 소독을 수시로 하고 있고 개인위생도 철저히 하고 있어요”

박은영 “아이의 오빠가 다니는 학원 상가에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시며 혹시 모르니 일주일간 등원하지 않고 데리고 있겠다고 하신 학부모도 있었어요. 원을 배려해주시는 마음에 힘이 됐죠”

김윤지 “학부모님들도 아이들이 열이 나면 알아서 가정 돌봄을 하고, 여행을 가거나 외부 접촉을 한 사례가 있다면 3~5일 경과를 보고 유치원에 보내세요. 가정에서도 본인들의 아이뿐만 아니라 원 전체를 생각해 먼저 배려해주기 때문에 감사하죠”

▲ “공동체의 힘 외면하는 언론 안타까워”

코로나19가 불러온 교육현장의 변화로 적잖은 진통이 있었다. 급변하는 정책, 업무의 과중, 부족한 정부 지원, 그러나 무엇보다 부담인 것은 교육현장으로 쏠리는 사회의 시선들이다.

지난 2018년 ‘사립 유치원 비리 사건’ 이후 모든 유치원에 대해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여론이 증가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도 교사들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켰다. 부모와 교사가 서로를 믿고 함께 아이를 돌본다면 교육의 질과 교사들의 처우가 향상될 것이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인 코로나19 상황을 대하는 무게감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감염병이란 나 혼자 잘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당장 숫자로 나타나는 확진자 수에 대한 부담을 떨쳐내야 한다. 언제 자신의 앞에 닥칠지 모르는 확진의 공포에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각자의 입장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단편적인 주장만을 담아 기사화하는 언론에 대해서 한 교사는 이렇게 일갈했다.

이연주 “유치원은 한 공동체에요. 힘들면 함께 힘들고 기쁘면 함께 기쁘죠. 500명 규모의 큰 원에서 원아 이탈을 방지하고자 수업료를 받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리자 연쇄반응으로 다른 작은 원까지 항의 전화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100명 이하 작은 원들이 버티지 못하고 폐원하는 사례가 생겼죠. 원비를 삭감하면 누군가의 지출은 줄어들겠지만, 직장을 잃는 교사가 생기고 그 나비효과로 우리 사회 어디선가는 자영업자가 문을 닫게 돼요. 원장님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자비로 회식도 하고 간식도 보너스도 주세요. 만약 원의 사정이 어려워진다면 저는 희생을 감내할 겁니다. 언론은 자꾸 원장과 교사를 갑을 관계로 묘사해 일부 부정적인 이슈만 보도하는 것 같아요. 언론에서 갑을 구도로 나눠 그들의 불편함만을 강조한다면 이 사회는 더욱 양분화하고 갈등만 조장돼요. 제발 갈등을 확대하지 말고 아름답고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회로 만들기 위한 언론의 역할과 사명에 충실해 주길 바라요. 그리고 우리 주위엔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유치원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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